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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데기나 달팽이나

by 램프지니

국민학교 5학년 때, 번데기는 나의 최애 간식이었다. 한동안 완전히 푹 빠져 있었고, 용돈만 생기면 곧장 집 근처 시장으로 달려갔다.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번데기 한 봉지를 손에 들고 흐뭇하게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세계적으로 ‘혐오식품’중의 하나라는 타이틀을 당당히 거머쥔 번데기. 하지만 남들이 뭐라든 내가 좋으면 그만이었다. 입안에서 톡 터지며 나오는 고소한 육즙도 좋았고, 작은 번데기들을 한 움큼 입에 털어 넣고 우물우물 씹으면 행복이 따로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친구들과 간식 이야기를 나누다가 번데기 얘기가 나왔다.

그중 한 친구가 인상을 쓰며 외쳤다.


“어머! 그런 걸 징그럽게 어떻게 먹어!!”


나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했고, ‘어머, 누가 그럴걸 먹어!’ 하고 동조하듯 말했다. 잘못 말했다가는 번데기를 먹는 이상한 애가 되기 십상이었다.


그날 이후, 나는 번데기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 예전처럼 거리낌 없이 사 먹지 못했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을 텐데도, 사람들의 시선이 신경 쓰였고, 나도 모르게 번데기를 멀리하게 됐다. 좋아하는 마음은 그대로였지만, 누군가의 한마디가 내 취향을 뒤흔들어 놓은 것이다.




프랑스의 달팽이 요리는 고급이라고 비싼 돈을 내고 먹는데, 생긴 게 벌레 같다는 이유로 저평가된 번데기!

사실 번데기는 단백질과 필수 아미노산이 풍부하며, 칼슘과 철분 같은 미네랄도 함유한 영양가 높은 식품이다. 그런데도 외형 때문에 혐오스럽다고 평가받는다. 사람의 취향과 가치 판단이 얼마나 주관적이고 변덕스러운지 보여주는 좋은 예다.


자신이 아무리 좋아하던 것도 타인의 시선이나 말 한마디에 따라 등을 돌릴 수 있고, 때론 신념조차도 상황에 따라 바뀌곤 한다. 그렇게 변덕스럽고 간사한 것이 인간이다.


한낱 번데기에도 이럴진대, 만약 번데기가 아니라 돈, 명예, 혹은 더 중요한 무언가가 걸려 있다면 사람들은 얼마나 더 쉽게 변할까?


살짝 무서운 상상을 하다가, 아까 사 온 번데기 캔이나 따서 예쁜 그릇에 담아 먹어야겠다. 번데기나 달팽이나 뱃속에 들어가면 다 똑같은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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