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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호 Sep 09. 2018

강경의 느린 구름 아래에서 1

 

 바다를 닮은 푸른 금강이 마을의 오른쪽  어깨를 짚고 지나가는 곳.

산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낮아서 구름도 걸리지 않는 채운산이 왼쪽에 멋쩍게 서 있는 곳.

붉은 벽돌 건물 들과 올망졸망한 집들이 도토리 키재기를 하는 작은 마을.

기찻길이 읍내를 길게 가로질러 늘 기차 경적 소리가 귓전에 머무는 곳.

누군가는 떠나고 또 누군가는 남는 곳.

그리고 언제부터인지 시간이 멈춰버린 동네.

그곳을 사람들은 강경이라고 부른다.

 


강경은 조선시대에 개성, 대구와 함께 3대 상업도시 중의 하나였기 때문에 크게 번성했던 도시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 경제적 기능을 잃은 지 오래되어서 도시가 점차 작아지고, 또 일제 강점기 때의 모습이 아직도 남아 있어서 이른바 과거가 살아있는 묘한 도시가 되었다.


 파스텔 톤으로 탈색된 강경 시내에서 흙먼지 나는 자갈 신작로를 따라 십오 분쯤 걸어 들어가면 채운산 너머 채운리 223번지가 있다.  서노는 그곳에서 태어났다. 물론 지금은 깨끗한 아스팔트 도로로 바뀌어서 예전과는 사뭇 다른 길이다. 당시 이 길에는 소방서와 읍사무소가 있었고, 철길 건널목을 지나면 드넓은 곡창지대가 이어진다.


서노네 집은 이층 집이었다. 그 마을에서 공공건물을 제외하고는 이층 집이 딱 두 채 있었는데 그중 하나. 1934년 그의 부친이 태어난 것을 기념해서 지어진 집이라고 한다. 대지는 대략 천 평 정도이고, 건평이 한 이백 평쯤 되었으니 시골에서는 정말 보기 드문 큰 집이다. 어찌 보면 그는 요즘 말하는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것은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평생 경제활동을 하시지 않고 한량으로 원 없이 사시다 귀천하신 아버지 덕에 금수저에서 급전직하해서 흙수저로 돌아가게 된 것은 뭐 그리 오래 걸리지도 않았다는 사실. 차차 이야기할 기회가 또 있겠지만 말이다.

 

백두산 홍송을 압록강과 서해를 통해 뗏목으로 공수해서 기둥으로 썼기에 그 집의 기둥은 약간 붉은 끼가 있는 촘촘한 나이테가 인상적이다. 그 나이테를 손톱으로 꼭 누르면 시간이 그 사이에 멈추어 선다. 또 이층의 전면 위쪽은 유럽풍의 아치 형태로 모양을 냈으며, 벽은 테라코타 방식으로 오돌토돌하게 무늬를 내서 비교적 특이한 모양을 하고 있다.


서노는 이 집에서 유년시절을 보냈기 때문에 잊지 못할 많은 이야기가 바로 이곳에서 나온다. 뿐만 아니라 사춘기 초기의 사랑 이야기까지 비롯된 곳이기도 하다.


집의 뒷부분 구조는 이렇다. 집 뒤로는 넓게 어둑어둑한 대나무 숲이 있었고, 아름드리 팽나무가 두 그루, 서노네  어머니가 시집오셔서 심으셨다는 밤나무 네 그루가 병풍처럼 울타리 역할을 하는 모양새이다. 가끔 뒷집의 어린애 우는 소리가 대나무 숲을 넘어오기도 한다.


 서노는 어릴 때 녹이 벌겋게 슬고 이빨도 듬성듬성 빠진 톱을 컴컴한 광에서 찾아내 대나무를 자주 잘랐다. 그리고 그 대나무를 결대로 쪼개 아궁이 불에 대고 휘어서 활을 만들거나 대나무 마디를 잘라 물총을 만들기도 했다. 또 불에 노랗게 그을려 휜 후, 썰매를 만들기도 했고, 뿌리를 캐내서 마디마디를 주머니칼로 아주 잘 다듬어서 멋진 채찍을 만들기도 했다.


그런데 그의 할아버지는 대나무 자르는 것을 아주 싫어하셔서 그는 늘 몰래 작업을 해야만 했다.  그 대나무 숲에는 가끔 팔뚝 굵기만 한 뱀이 돌아다녀서 깜짝깜짝 놀라게 한다. 서노가 젊었을 때 같았으면 생사탕을 해 먹고 요강을 몇 개 깼을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어려서는 그놈들이 그저 몸을 움찔거리게 하는 편치 않은 짐승이었다.


또 바람이 불면 대나무 잎이 바람과 노는 소리가 일품이다. 스산한 소리, 한이 어린 소리, 세월을 보내는 소리, 꿈을 잡으려는 소리, 사랑이 지나가는 소리, 시어머니 흉보는 소리, 인생을 달관한 노인의 숨소리들이 숲에서 서걱댄다.


앞서 잠깐 얘기했듯이 사람 두 명이 서로 손을 잡고 안아야 간신히 안기는 엄청나게 굵은 팽나무 두 그루가 있다. 거북 등처럼 단단한 껍질이 유구한 세월의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고, 그 이야기는 가을마다 작고 붉은 열매를 떨어뜨린다. 그 팥알만 한 열매 속  이야기의 맛은 뭐 그닥 별나지도 않아서 입에 넣고 우물거려 보면 약간 달착지근하면서도 떫떠름하기만하다. 삶이 그렇듯이...



서노 어머니가 시집오셔서 심으셨다는 밤나무는 네 그루였다. 겨울에 눈이 소복이 쌓인 밤나무 아래 시커멓게 색이 죽은 밤송이의 가시들은 눈포단 아래에서 지난여름의 꿈을 나누고 있다. 꿈은 늘 허무하듯이 계절도 늘 시간의 궤적 속에서 허무하기는 마찬가지다. 허무함은 또한 우리가 살아가는 의미와 가치와 희열의 반대 편에 서 있는 떼려야 뗄 수 없는  또 다른 얼굴이기도 하다.


팽나무 옆으로 나오면 하늘과 키를 재는 잣나무 한 그루가 높이 솟아있다. 잣나무는 유난히 송진이 많아서 만지면 늘 뭔가 불편하게 진득거린다. 마치 대판 싸우고 헤어진 여친이 새 애인을 만나고 있는 것을  보는 것처럼. 하지만 열매는 외관상 파인애플처럼 생겨서  그런대로 볼만하다.


 영어 속담에 'No pain No gain'이 있다. 잣을 따는 일도 그렇다. 그것도 열매랍시고 꼴에 매달려 있기는 맨 꼭대기에 매달려 있어서 그것을 따려면 보통 고역이 아니다. 대나무 장대를 길고 길게 이어서 따려 해도 여의치 않다.


하지만 그 풍신 나지도 않은 열매를 따서 바싹 말린 후, 나무 막대로 탁탁 두드리면 새끼손톱만 한 잣 알이 후드득 쏟아져 나온다. 잣은 제사 때 꼭 필요한 제수용품 중 하나이기 때문에 서노는 늘 실컷 먹어보지는 못했다. 게다가 열심히 까 봐야 목구멍에 넘어가는 것이 몇 알 안되니 참 답답하고 코 막히는 견과류라고 생각했다. 또 그 잘나빠진 껍데기 때문에 잣을 까다가 반절은 짓뭉개기 일수이다. 서노가 나이가 들어서 옛 생각에 깡통에 가득 들어있는 잣을 사다가 먹고 싶은 대로  먹어보지만 옛날 그 맛은 아니라는 것을 느낀다. 아마도 기억의 편린 속에 숨은 잣 맛은 지금의 잣 맛과 다른 모양이다. 그리고 살아가면서 때로 오늘이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은 과거의 편린 속에 쌓인 아름다운 기억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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