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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호 Nov 02. 2018

풍경 소리에 어제를 버리다 1

풍경(風磬)소리에 어제를 버리다 1

                           김선호


가쁜 숨 앞세우고

허위허위 졸참나무 사이 오른다

일주문 맞배지붕 밑

시간이 쪼개놓은 틈으로 기둥은 숨쉰다

석간주 가칠단청은 누릉지처럼 일어나고

언덕마다 흩뿌려진 샛노란 송홧가루 밟으면

한걸음씩 버려지는 하계(下界)의 기억


굽은 된비알 굽은 나무 사이

풀섶에 머리 내민 졸방제비꽃

아무렇게나 쌓아올린 돌계단 너설올라

노루막이 이르면

늘어선 연등그림자

꽃잔디  위에 올라앉았다

금단청 사래 끝에 매단 풍경(風磬)

하늘이 푸른 녹 올려놓고

풍경그림자는 대웅전 배흘림기둥에 걸려있다

그 소리 어제를 버린다


키 작은 젊은 비구니 아직 털신 신고

흘러내린 촛농 덩어리 자루에 담아

대웅전 뒤켠 운두 옆에 쌓아둔다

하늘에는 촛농에 남은 발원 걷어가는 열구름

꽃살 창호 아래

지며리 묵은지 잘게 썰고 있는

보산의 손


시들어빠진 철쭉 하나 둘 떨어지고

지천에 널린 미나리냉이

하얀 불두화 한 다발 핀다

산사(山寺) 끝 한자리 서서

수굿이 고개 숙이면 난벌과 두물머리 풀등

거기 우리 사는 아름다운 새녘

풍경 소리가 어제를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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