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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호 Nov 02. 2017

일곱 빛깔 웃음이 바다로 간다

파도의 푸념

새벽을 뚫고 낚싯배를 탔다. 밤과 낮이 교차하는 시각의 미묘한 느낌은 새벽의 언어이다.  그 언어를 익히는 것은 살아있음을 느끼는 호흡일지도 모른다.



푸른 웃음이 바다로 간다 / 김선호


푸른 줄무늬는 바다에서 가져온 빨랫줄이다 가지런히 늘어놓고 또 천천히 겹치면 바둑판이 되고 거기 하늘이 산다   날아가던 괭이갈매기는 화들짝 놀라 집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가마우찌의 검은 날개짓이 내려앉아 또 검정색 바둑판 줄무늬를 놓는다 그 사이에는 파도가 만들어 놓은 흰 무지개가 있고 일곱 빛깔 웃음이 바다로 간다 작은 배들은 뭐가 그렇게 우습냐고 퉁퉁대며 흰 꼬랑지를 물 위에 남기고 바삐 작아진다


 사각형일지도 모르는 신발 굽이 또 흰 웃음을 웃을 때 구멍 하나가 짧아져 일회용 반창고를 친구삼아 길을 떠난다 길은 나무 계단 아래 버려진 방파제 끝에 머물고 바위에 붙은 파래가 파랗게 웃고 있다 퇴역한 구축함의 깃발은 바다의 노래를 흥얼거린다 거짓말도 하지 않았는데 함포는 이미 코가 길어져 있다 갯내음을 주머니에서 주섬주섬 꺼내 한없이 뿌리고 있는 바람은 늘 바쁜 길을 떠나고 또 그 뒤에 사는 바람이 줄지어 따른다 지나간 바람은 알츠하이머에 걸려서 제가 왔던 줄도 모르고 또 돌아오기도 한다


흰 모자 사이로 빛이 스며든다 그 아래 검은 리본은 어제 흘린 하얀 눈물을 물방울 무늬로 간직하고 있다 옆으로 비스듬한 모자가 지금의 아름다움이 무엇이냐고 묻는다 아름다움은 하루종일 따라다니거나 쪽빛 하늘을 담은 푸른 바둑판 사이로 하얗게 얼굴을 내밀었다 숨었다 한다고 답한다 그러면 살며시 쓰다듬어 보면서 거기 아름다움이 사는 지 아니면 잠을 자고 있는 지 되물어 본다 좌우간에 아름다움이 거기 살든지 안 살든지 잠을 자든지 안 자든지 사는 건 아름다운 것일지 모른다 그래서 함께 눈을 담은 바다도 아름답다

바다의 서글픈 언어가 아름답지 않다면 죽어버린 영혼일지도 모른다.
옛날 이발소에나 붙어있음직한 바다 사진을 찍어놓고 그 사진에 가슴이 저려오는 것은 그 바다가 삶의 언어를 가르쳐주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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