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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호 Nov 05. 2017

아름다운 타투

2호선 전철

초록 열차 / 김선호


전철역 계단에서 죽은 매미의 부스러진 투명한 날개를 밟고 지나간다 날개에는 운명을 이야기해 주는 크고 작은 갑골문이 바싹 마른 채로 나열되어 있다 스크린도어에 반사되는 아파트 창문은 늘  닫혀있고 청바지가 유난히 더워 보이는 그림자는 그 사이를 지나가고 있다 가끔 은제 주각같은 다리도 광택을 내며 반사된다 흐르는 시간은 탄력과 광택을 먹고 산다 그래서 결국 매미의 날개가 된다


초록색 문이 열리고 담배 냄새가 찌든 승객의 허튼 눈동자가 들어온다 돌아 앉아도 니코틴 쩔은 내가 진동한다 고개를 돌리면 타투가 아름다운 발목이 묘한 유혹을 보내지만 어쩌다가 이해하지 못하는 나비가 되기도 한다 사실 타투의 아름다움이 꼭 몸의 전체와 비례하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그것은 영혼과 육체가 대화하고 싶은 이야기를 그려놓은 것인지도 모른다 허벅지에 피어나서 물감이 번진 넝쿨 장미는 계속 자라서 보이지 않는 허리로 올라가고 있다


전동차의 손잡이를 젖히면 음습한 검은 동굴의 길로 이어지고 전철은 비상정차등이 들어올 것이다 전철로부터 도망가고 싶은 충동은 가끔씩 현재라는 이상한 너절함으로부터 탈출하고 싶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손잡이를 당기는 순간부터 한참 동안은 아주 불편한 곳에 잡혀서 살아야 한다 그것은 늘어진 양말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양말의 목에 있는 가느다란 여러 줄의 고무줄이 보이지않게 끊어져 복숭아뼈 아래로 줄줄 내려오면 발뒤꿈치에 겹쳐지면서 씹다가 말고 잠든 아이의 밥알처럼 흘러내려 불편하다


전동차의 이마에는 외선순환이라는 윤회의 글자가 붙어있다 이 초록 열차를 타면 끝없이 윤회한다 푸른 하늘을 여는 고가를 타고 가고 불안한 협곡을 지나고 끝이 어딜까 궁금해하는 컴컴한 터널을 한없이 지난다 그리고 몇 분에 한 번 씩 김밥 옆구리가 터지면서 윤회가 싫은 사람을 내려주고 윤회를 하고 싶은 사람을 태워준다 그러면 그 속에서 무엇을 깨달을까? 무엇을 깨닫는다구? 천만의 말씀 여기 저기 어깨를 부딪히며 그저 더위 먹은 지친 몸을 가누면서 큼지막한 소의 눈을 꿈뻑거릴 뿐이다 그래서 윤회는 그냥 외선 순환의 일종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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