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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호 Oct 21. 2017

리스본의 밤은 잠들지 않는다 2

포르투갈 여행기

리스본에서 그리 멀지않은 가장 아름다운 절벽 해변 아제나스 두 마르.


2. 대서양의 시간이 말을 건네는 나라

포르투갈


우중충하고 서늘한 프랑크푸르트 날씨가 공항을 짓누르고 있다. 옮겨 탄 포르투갈 비행기에 까무잡잡하고 탱탱한 모습의 승무원 꾸냥은 한 눈에 봐도 1974년까지 포르투갈령이었던 아프리카 까보 베르데 혼혈 쯤 되어 보인다. 독특한 모습 때문에 사진을 찍었더니 알리바바와 40인의 도적에 나오는 산적 두목같이 생긴 남자 승무원 놈이 찾아와서 사진 찍으면 안 된다고 지랄한다. 그래서 알았다고 하고 다 지웠다. 별 걸 다 지랄이다.

프랑크 푸르트 공항에서 환승했다. 큰 허브 공항에서 환승할 때는 수하물을 찾아서 다시 환승할 비행기에 싣는 것이 안전하다. 특히 분실율이 높은 공항에서는 ...

본래 포르투갈은 켈트계 이베리아인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하는데 워낙 인종의 섞임이 많아서 별 의미가 없을 정도이다. 때문에 포르투갈은 인종이나 피부색에 대해서 다른 어느 나라 보다도 관대하다. 그것은 포르투갈의 역사에 기인한다. 일찌기 바다를 지배하던  대항해시대 때부터 남자들은 바다로 나갔다. 그리고 돌아오지 못 했거나 돌아오지 않았거나 둘 중 하나가 많았다. 그렇지 않았다 하더라도 개척지에서 눌러살아 버린 경우가 허다했다고 한다. 때문에 남자가 항상 귀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남자가 그렇게 귀한데 뭘 따지냐는 것이다. 피부색이든 인종이든 말이다. 아무튼 남아있는 남자들은 좋았겠다. 무지하게...

짙은 먹구름 사이로 가끔 파란 하늘이 고개를 내밀고 그 사이를 비집고 붉은 저녁 노을이 떨어진다.


Pio형한테 배운 두 마디 포르투갈 어를 다시 되뇌이고는 혼자 씨익 웃어본다.  '오부리가두'와 '보니따'이다. '고맙습니다'와 '예쁘다'라는 뜻이다. 그 두 마디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고 한다. 되고 안 되고는 두고 볼 일이지만 말이다. 안 되면 Pio형 다리 붙들고 늘어지면 된다. 될 때까지. 그런데 알고보니 '보니따'는 포르투갈 어가 아니고 스페인어인 것같다. 조금 사기당한 기분이 든다. 제일 중요한 단어인데 말이다.


어느 비행기를 타든 비상 착륙에 대한 이야기는 빠지지 않는다. 노란 구명복이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스피커가  씨부려대고, 모델이 되는 꾸냥은 입었다 벗었다 하면서 애를 쓴다. 고참은 이런 것 안한다. 신참한테 꼭 시킨다. 머리뽕이 나이롱뽕으로 높아진게 아니기 때문이다.

비행기가 천천히 활주로로 향한다. 또 다시 세 시간이 넘는 지겨운 시간을 하늘 가득 늘어놓을 모양이다.  영화를 보면 순간 공간 이동도 잘 하던데 현실에서는 절대로 안 되는 모양이다. 짙은 먹구름 사이로 가끔 파란 하늘이 고개를 내밀고 그 사이를 비집고 붉은 저녁 노을이 떨어진다. 리스본의 투명하고 맑고 또 쪽빛으로 빛나는 하늘이 보고 싶다는 태양의 후예를 위해 이제 하늘을 아껴 둘 셈이다.  A321R 이라는 알미늄 덩어리는 꽤나 시끄러운 소리를 내면서 붉은 노을을 향해 떠오르기 시작한다.

리스본 벨렝지구에 있는 발견 기념비.  포르투갈의 해양 개척과 관련된 대항해시대의 유명 인사는 여기 모두 조각되어 있다.


근묵자흑이요 근주자적이라 했다(近墨者黑 近朱者赤). 생전가야 기내에서 와인을 시켜서 먹어 본 적이 없는데 와인 애호가인 Vincent형  따라다니다 보니 어느새 와인에 길들여진 듯 하다. 벌써 화이트 와인만 세 잔 째 마셨다. 붉그레한 얼굴로 구름 아래 붉은 노을을 본다. 그 어느 때보다도 붉고 아름답다. 그리고 하루가 서서히 암흑 속으로 풀잎처럼 눕고 있다.  


얼마의 시간이 흐른 후, 포르투갈 시간 오후 10시 한국 시간 새벽 6시 리스본의 밤 불빛 아래로 다가간다. 영어로는 리스본이고 포르투갈 어로는 리스보아이다. 늦은 밤 도착이라서 뭐가 보이지도 않는다.  택시가 데려다 주는대로 와서 그저 샤워하고 물 먹은 솜같은 몸을 침대에 털썩 던져 놓는다. 모든 일정을 세심하게 짜고  예약하고 진행하고 또 비즈니스 석의 슬리퍼는 물론 수시로 생수까지 챙겨 주시는 Vincent형의 세심한 배려에 그저 놀랍고 감사할 뿐이다. 역시 나는 가방만 강아지처럼 달달달 잘 끌고 Vincent형 뒤를 졸졸 따라 다니기만 하면 될 것같다.


포르투갈은 본래 뽀루뚜라는 말에서 나온 나라명으로 그 뜻은 '온화한 항구'라고 한다. 이제 비몽사몽의 시간이 지나고 나면 온화한 항구의 나라를 천천히 느껴볼 생각이다.  '온화한 항구'의 언어를 전공했던 온화한 성품의   Pio형은 45년 만에 고향(?)에 온 느낌 아닐까 모르겠다. 택시 안에서 45년 전 기억을 더듬으며 말하는 포르투갈 어가 고향에 와서 고생하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택시 기사는 오히려 영어로 답을 해주고...


서노는 택시 기사에게 요금을 치르고 포르투갈어를 했다.

"Obrigado"


리스본 발견기념비 앞의 요트 계류장. 하늘은 시릴 정도로 코발트빛을 띠고 있다.
알파마 지역의 곳곳을 오르내리는 28번 트램. 이 트램은 꼭 타봐야 한다.
빵집이다. 빵이란 말은 본래 포르투갈 말이라고 한다. Pao에 머리에는 물결 무늬 하나를 얹고 있다. '빠웅'으로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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