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art 2 >
* 푸투마요의 ‘터키쉬 그루브’
이제 본격적으로 터키 음악을 이야기할까 한다. 이상하게도 우리나라에는 터키나 아랍권 음악이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앞서 언급했다시피 25 음계를 사용해서 난해하기도 하고 또 정서에 딱 와 닿지 않아서 그럴 것이다. 하지만 비교적 난해하지 않고 나름 현대적이며 친근하지는 않아도 거부감 없이 들을 만한 곡들이 있다. 마침 세계 음악을 골라서 발매하는 <푸투마요 월드 뮤직>에서 <터키쉬 그루브(Turkish Groove)>라는 음반을 2006년도에 낸 적이 있다. 참으로 대견한 것은 푸투마요 음반회사에서는 이 음반을 내면서 터키의 불우이웃 돕기에 비교적 큰돈을 냈다고 한다. 앞서 푸투마요 음반사에서는 콜롬비아에서도 지뢰에 다친 아이들을 위해 기금을 낸 적이 있기도 하다.
이 음반에는 이른바 터키의 가장 뜨거운 가수들이 총망라되어있다. 터키의 노래를 들어보고자 한다면 잘 알지도 못하는 음반 이것저것 들여다볼 것이 아니라 반드시 이 음반을 먼저 들어봐야 한다. 이 음반에는 터키의 기라성 같은 가수의 노래 11곡이 수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음반을 꼭 사지 않아도 요즘은 유튜브로 검색하면 바로 들어볼 수 있기 때문에 편리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바로 검색해서 들어보고는 “이거 추천한 놈 웃긴 놈이네”하고 비판의 화살이 0.5초도 안 돼서 날아오기 때문에 필자로서는 조심스럽기 그지없기도 하다.
* Bendeniz
벤데니즈는 젊은 층의 취향에 맞는 다소 빠르고 경쾌한 노래를 부르지만 세션은 오히려 전통적인 악기를 많이 사용한다. 특히 이 곡 ‘Kirmizi Biber’에서는 그리스 전통악기 부주키의 조상쯤 되는 류트 바흘라마 (baglama)와, 옆구리에 끼고 두드리는 묘한 모양의 북 다부카(darbuka)와, 다리 사이에 끼고 두드리는 나가라(nagara)라는 중대형 북, 그리고 테프(tef)라는 탬버린 비슷한 악기를 사용한다. 여기서 사용하는 테프는 양가죽이 아니고 투명한 비닐 같은 것으로 제작되었다.
벤데니즈는 이곳저곳 브리지 한 머리카락에, 어찌 보면 선머슴 같으나 나름 귀여운 매력이 있다. 목소리는 약간 허스키하지만 듣는 이를 매료시키는 묘한 감성을 지니고 있다. 그녀는 1973년 생으로 본래는 스위스 취리히(Zurich)에서 태어났다. 성장 후 터키로 돌아와서 1993년 "Ya Ben Ya Hiç“이라는 음반으로 내고 가수로서 크게 성공했다.
* Sertab
터키의 ‘머라이어 케리’라고 하는 세르탑은 달걀처럼 가름한 얼굴에 조금 마른 편으로, 목소리는 목구멍에서 가끔 걸렸다 나오는 듯한 독특한 창법을 구사한다. 그녀의 흐느끼는 듯하면서도 흔들리는 듯한 감정 표현은 나름 재미가 있다. 최근 라이브 콘서트에서 세젠 악수와 같이 공연하는 모습을 보니 세젠 악수는 아주 풍성한 체격으로 변했고 세르탑도 이제 날씬한 것과는 거리가 멀어졌다. 하지만 두 거장의 노래는 역시 빛을 발한다. 터키를 대표하는 디바는 예나 제나 디바이다. 그런데 사실 세젠 악수가 한창 잘 나가던 80년대 말에만 해도 세르탑은 백 보컬에 불과했다. 따지고 보면 둘은 실제 랭킹이 다른 셈인데 조폭 용어로 말한다면
"세르탑 니 마이 컸네!" 뭐 이런 거다.
그런데 세르탑이 커도 엄청 커버리게 된 사건은 2003년 라트비아에서 열린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였다. 당시 ‘Everyway That I Can’으로 그랑프리를 수상하면서 터키 팝의 여왕으로 등극함과 동시에 드디어 세젠 악수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랭킹으로 올라선 것이다.
이 음반에 수록된 곡은 ‘Buda'인데 터키 말로 부처님이라고 한다.
또 하나 세르탑을 세계적인 가수로 만든 곡이 하나 있다. 밥 딜런의 곡 'one more cup of coffee'라는 곡을 아랍식 창법으로 묘하게 부른 것이 있는데, 이것이 아랍권에서 히트한 후 다시 국제적으로 크게 알려지기도 했다.
* Nilgül
pis pisla (나를 망치지 마)는 신나지만 어딘지 모르게 애조를 띤 트럼펫으로부터 시작한다. 이어지는 닐귈의 노래는 즐겁지만 가슴이 사무친다. 애인하고 헤어져서 시원섭섭한 건지, 이혼하고 시원섭섭한 감정을 표현한 건지, 그도 저도 아니면 무 개념의 아름다운 창법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렇다. 목소리는 비교적 투명한 편이다.
서구적으로 생긴 시원시원한 이목구비에 훤칠한 키는 서유럽적인 인상을 풍긴다. 그러나 그녀의 노래는 터키의 전형적인 애잔함이 곳곳에 묻어난다. 그녀의 플라멩코 풍의 다른 곡 ‘Kara’를 들어보면 소리 통도 커서 쭉쭉 소리를 뻗어내기도 한다. 요즘에는 터키에서 꽤 유명세를 타고 있고 또 세계적으로 알려지자 웃기지도 않는 일이 생겼다. 천하의 유통업체 미국의 아마존에서 닐귈의 음반을 짝퉁으로 찍어서 판다. 물론 닐귈 측과 협의는 하였겠지만 표지의 조잡한 인쇄와 어떤 곡이 어떻게 들어있는지도 모를 정도로, 설명은 고사하고 곡명도 없다. 참 어이없다. 아마존이 제작한 음반 세 장은 'Arabesk Gunler' ‘Nar-i Ask' Omursuz Sevdalar'이다.
최근 아마존은 동네 페인트 칠 서비스, 여행, 숙박업을 비롯해서 우유, 시리얼 등 식품 제조 및 판매와 커피, 파스타, 물, 비타민, 개 사료는 물론 세제 종류까지 돈이 되는 것은 다 하고 있다. 이른바 유통 공룡이 된 것이다. 하지만 공룡이 만든 물건치고 닐귈의 음반은 짝퉁도 왔다가 울고 갈 만큼 형편없이 만들었다. 그래도 값은 제 값 다 받으니 환장할 노릇이다.
* Gülseren
‘Sinanay’라는 곡은 본래 엉덩이를 탁탁 쳐올리며 멋진 손동작이 일품인 벨리댄스 곡이다. 아무튼 좀 신나는 음악이다. 이 곡을 부른 귈세렌의 본명은 Gülseren Yıldırım Gomez로 1973년 터키 이스탄불에서 태어난 프랑스계 가수이다. 그녀는 여러 세대를 아우르는 음악을 추구하기 때문에 팝과 라틴 음악, 테크노 음악, 터키 전통음악까지 폭넓게 섭렵하고 있다. 그녀는 7살 때부터 프랑스 파리로 이주하여 지금까지 프랑스에 거주하고 있으나 우크라이나 키예프에서 개최된 2005년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에 터키 대표로 선발되기도 했다. 귈세렌은 프랑스 INALCO대학에서 동양문화를 전공했지만 파리의 카바레 “Les Trois Mailletz” 에서 공연을 한 독특한 경력을 가지고 있다. 사실 그곳은 재즈와 세계 음악을 공연하는 카바레이기 때문에 별로 이상할 것은 없다. 우리나라처럼 아줌마와 제비들의 놀이터인 카바레와는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독일과 터키의 문화가 중복되는 무슨 영화에도 관심을 갖기도 했지만 큰 반향은 없는 듯하다. 그냥 가수는 노래 잘하면 그것으로 되는데 유명해지면 아무튼 돈의 유혹 때문에 해찰을 많이 하는가 보다.
* Göksel
앳된 목소리로 애잔한 노래를 부른다. 유튜브에 동영상은 있는데, 말만 동영상이고 정지화면만 한두 개 있는데 그나마 컴퓨터로 만진 이상한 버전이다. 좋은 곡을 만나면 앞으로 꽤나 인기가 있을 만한 목소리를 지니고 있다. 괙셀은 1971년 생으로 이스탄불에서 태어났다. Boğaziçi 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했지만 가수의 길을 택했다. 초기에는 세젠 악수와 세르탑의 백 보컬을 했다.
1997년 ‘Yollar(길)’이라는 음반을 내게 되는데 수록된 ‘Sabır (인내)’가 공전의 히트를 치게 된다.
* Tugba ekinci
대체로 투그바의 노래는 벨리댄스를 추기에 적절하게 작곡된 듯싶다. 요즘 나온 ‘kontor’ 같은 곡은 신디사이저로 주물러 놓고 컴퓨터로 디스토션 합성까지 해놓기도 해서 조금 이상해지기는 했지만 본래의 벨리댄스 뉘앙스의 감성은 어느 곡에든 내재되어 있다.
그녀는 동영상마다 노출증 환자처럼 주로 약간씩 벗으려는 노력과 함께 엉덩이와 가슴을 집중적으로 클로즈업을 하는 특징이 있는데 그 이유가 병적인 요인은 아닌 것 같고, 나름 외모가 받쳐주는데서 오는 하나의 부가적 마케팅인 것 같다. 1976년 Kars에서 태어난 아제르바이잔 계이다. 데뷔는 2005년. 목소리는 고음역이 맑고 투명해서 아름답다.
* Nazan Öncel
엄청 튼튼해 보이는 체격과는 달리 애수의 소야곡 같은 애잔한 노래를 많이 부른 가수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빠른 곡도 종종 부른다. 푸투마요에 수록된 ‘Atiyosun'이라는 곡은 비교적 빠른 곡에 속한다. 게다가 랩까지 엄청 중얼대는 것을 보면 요즘 그런 변신을 하지 않으면 어느 나라든 살아남지 못하는가 보다. 아무튼 노래는 상당히 특이하다.
그녀는 기타를 직접 연주하며 노래하는 유일한 가수이다. 나이는 좀 많다. 1956년 생으로 공무원 아버지와 교사인 어머니 사이에서 둘째 딸로 태어났다. 중학교 때부터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불렀다고 하니 아무튼 공부에는 별 취미가 없었는가 보다. 그녀는 1976년 한 라디오 방송국에서 주최하는 송 콘테스트에서 입상하면서부터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그때 부른 곡이 "Annem(나의 어머니)"이다. 이후 수많은 음반을 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 Sezen aksu
세젠 악수는 대표적인 터키의 국민 가수이다. 단지 하층민의 아라베스크적인 음악에 머무르지 않고 유럽의 스타일과 감성적 목소리, 그리고 과거 클래식의 성악을 전공했던 분위기와 터키의 전통음악 분위기까지 노래에 담아 명실상부한 ‘이미자 + 패티김’ 쯤 된 것이다. 세젠 악수는 1954년 터키의 이즈미르(Izmir)에서 태어났다. 우리 나이로 따지면 64살의 적지 않은 나이다. 음악활동을 시작한 지 30년이 가까운 터키의 대표적인 여가수로서 영화배우로도 전성기를 누렸다. 실제로 데뷔하면서 그 영화에서 데뷔 앨범 수록곡을 주제곡으로 불러 일약 스타가 되었다. 물론 외모도 그럴싸하니까 배우도 되겠지만, 더 놀라운 것은 대부분의 곡을 스스로 작사 작곡한다는 것이다.
세젠 악수의 노래에는 보통 20명 안팎의 오케스트라가 등장한다. 우리에게 익숙한 기타, 베이스, 드럼, 키보드 같은 악기는 물론 사즈(saz), 우드(oud), 피리 같은 터키의 악기, 그리고 몇 명의 백 보컬이 나온다. 이 푸투마요 음반에는 마지막 곡으로 세젠 악수의 'Sanima Inanma'가 들어 있다. 영어로 바꾸면 ‘Don't believe in my fame'이니까 내 명성을 믿지 말라는 뭐 그 정도 번역이 된다. 유려한 기타 연주로 시작되는 이 곡은 정말로 세젠 악수의 진수를 보여주는 가장 터키적인 독특한 곡이라고 해도 될 것 같다.
<세계음악 컬럼니스트 김선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