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에 만나는 도시의 유령 /김선호
무표정하게 나의 얼굴을 잃은 채
한 해가 몇 시간 남지않은 거리를 걷는다
거리를 헤엄치는 무리들 가운데
취기가 어린 발은
그저 서성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아니면 정체 모를 사람들이 엉겨드는 복잡한 거리에서
하늘을 바라보는 또 하나의 시선은 아닌지
시간이 지난 후 복잡한 전철 속에 파묻힌다
철거덕대는 소리 속에서 완전히 나를 잃을 때
그저 이런 저런 생각은 밤을 관통하고 있다
갑자기 얼굴을 들어 무표정한 사람들을 본다
활기를 잃은 나의 뒷모습은
전철 유리창을 뚫고 어둠으로 사라지고
엇비슷한 얼굴들에서 또 다른 개성없는
나를 발견한다
차가 멎고 안내 방송은 바닥에 흩어져내린다
그 속에서 나는 아주 당황한 나를 찾고 있다
투영된 그림자들 사이에 내가 있고
무표정한 사람들이 그 중간에 산다
내가 너일 것이고 네가 또 내가 된다
설탕이 적당히 들어간 커피는
시끄럽게 테이블의 진동벨을 울리고
거리에는 정신빠진 자동차들이 바쁘다
고요함은 전기줄을 타고 붕붕거릴 때
달력의 마지막 장이 마중을 나간다
술집과 늘어선 불빛들은
자신이 해야 할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하고 있다
여백이 존재하는 것은 가슴에 살고
오늘은 몇 시간 내로 해를 바꿀 것이다
그러면 또 새해에는 낯선 얼굴로 나를
새로 포장하고 살아가야 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