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현리는 침묵하고 있다 / 김선호
자작나무의 다리는 살짝이라도 만져보고 싶을 만큼 예쁜 하얀 스타킹을 신고 있고 그 사이 사이에 며칠 전에 내린 달달한 눈설탕이 흩뿌려져 있다 사각 유리창 너머 볼을 맞댄 키 작은 화분이 한없이 하늘을 보고 있지만 말은 없었다 절여질 정도로 단 빵의 머리에 붙은 아몬드의 기억도 혀끝에 너절한 이야기를 늘어놓고 있지만 그다지 상쾌하지 않다고 겨울 양말은 투덜대기도 한다 아프리카를 다녀온 커피는 구수하기 보다는 신맛이 많다 커피잔 만한 가습기가 왜 없냐고 기분이 상해서 토라진 커피맛은 본래 그럴지도 모른다
날씨가 건조하면 가끔 등이 가렵다 오른쪽 조금 더 아래 아니 아니 그 밑에 거기 손 넣고 긁으면 스웨터가 목을 조르고 기침 나는 목에는 가습기가 더 필요할지도 모른다 이런저런 추위가 어슬렁 다가오면 겨울 해는 피곤한 척 하며 뉘엇뉘엇 자작나무 사이로 일찍도 떨어진다 창날같은 빛이 길고 붉게 바람의 가슴을 찌르다가 고등어조림 냄새가 나는 도로를 지나 이내 성당 첨탑 뒤로 숨어버리고 해를 닮은 이름도 성당 너머 길고 긴 아파트의 그림자로 사라진다 신현리 길은 울퉁불퉁하고 곳곳에 아스팔트는 뜯겨져나가 얼어죽어 있다
겨울에 사람을 그리워하는 것은 꽤나 추운 일이다 특히 밤에는 많이 추워진다 스타킹 색이 하얀 자작나무 다리를 만져보고 싶은 것은 받는 이도 없는 편지를 우체통에 넣는 것 만큼이나 할 일없는 일이지만 추운 일은 아닐지도 모른다 사람이 그립다고 말은 하지 않을 수 있고 또 침묵은 침묵할 수 있다 하지만 정작 생각까지 침묵하게 할 수 있을까 그것은 쉬운 일일까 아니면 쉽지 않은 일일까 날씨는 추워도 가슴이 따뜻해야 사람일 것이다 따뜻한 가슴으로 더운 가슴을 안아보고 싶은 것도 사람일 것이다 신현리는 침묵하고 있고 자작나무 다리만 하얗게 예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