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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호 Feb 26. 2018

눈을 밟으며...

눈을 밟아 생기는 깊이는 얼마나 될까 /김선호

    

시간이 미끄러져 버린 겨울 끝자락

어느 공간에 하얗게 눈이 쌓이고

우리는 눈 위를 느리게 걷고

누렇게 변한 메타세콰이어는

교육받은 적도 양육된 적도 없지만

반듯하게 서서 오늘도 표정 잃은 인사를 한다

    

보도블록은 사람을 다시 불러 세우지만

눈을 밟아 생기는 몇 센티의 자국은

눈이 남기는 또 다른 언어

그 사이에서

사람들 사이를 돌아 나온 온도는

입김처럼 따뜻해져 있고

태양이 숨어있던 언덕에는

여러 겹의 가슴 아픈 시간들이 겹쳐있다    

 

도시에 흩어져 있는

사납고 어지러운 그림자들

바람의 음성을 듣고 있다

목소리가 가늘고 까칠한 겨울바람은

산을 내려와

또다시 횡단보도 앞에서

휘이 휘이

유난히 가늘고 뾰족한 노래를 부른다  

   

되돌아보는 길에

지나간 과거는 공손히 고개 숙여 인사를 하지만

내일은 여전히 밤을 부르는

강변북로를 달린다

사랑하고 싶은 겨울은

하얗게 덮인 늦은 눈 속에

오늘도 또 느리게 걷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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