뚝섬의 노래 1 / 김선호
1.
늘 그렇듯이 밤이슬 내릴 때 그림자 길게 늘여놓은 그들은 강변에 앉아 파란 소주병을 비틀어 따서 병 모가지를 손가락으로 탁 잘라 소주 몇 방울 튀어 오르면 이내 술잔에 따르고 거기 자신도 모르는 불투명한 미래를 헹구어 마신다 말없이 따로 또 같이 휴대폰과 이야기하다가 벌건 취기가 넝쿨처럼 천천히 얼굴로 타고 오르면 강물은 저 혼자 흐르고 길은 또 길을 잃고 눈동자는 밤의 마천루 불빛을 강물에 또 멍하니 헹군다
2.
물가의 축대를 적시는 잔물결 소리에 흥건한 넋두리를 섞는 낚시꾼의 눈동자는 돌 무지개가 늘 피어있는 오래된 기억의 샛강을 머릿속에서 삽화로 그리고 있고 막걸리 나누어 마시며 길게 내뱉는 담배 연기 속으로 낮에 습득한 언어들을 하나씩 둘씩 버린다 방울은 기척도 없고 초릿대는 그저 바람을 데리고 고개 끄덕이며 무엇인가 알아듣지 못할 이야기를 한참 나누고 있다 간간히 저 멀리서 하릴없이 슬리퍼 질질 끄는 소리가 바람에 눕는 풀잎과 금계국 사이로 들린다
3.
달리는 자전거 사이로 창백한 별들의 노래가 있다 노래는 휘휘 돌아가는 자전거 바퀴를 열심히 따라가다가 지친 몸을 도로 위로 흐트러뜨린다 보도블록을 가지런히 깔아놓은 광장을 지나 보리를 베어낸 자리에 붉은 흙이 배를 내밀 때 길섶 닭의장풀은 쪽빛 얼굴을 숨긴다 어느 한 때 강의 기적을 운운했던 요란했던 전설은 버려져 강물을 따라 흐르고 벼랑 끝에 하루를 매달아 놓은 후예들은 서로 눈이라도 맞추는 낙으로 모인다 그리고 또 파란 소주병을 비틀어 따고 밤은 시커멓게 곰팡이가 핀 하늘 사이로 깊어간다
4.
"안녕 안녕 안녕 보내달라는..." 듀엣으로 부르는 길거리 가수의 흐느끼는 노래는 가로등의 불빛을 뚫고 저리게 바람을 탄다 어디에 살고 있는지 알 수 없지만 지나가는 박수 소리는 절그럭거리는 전동차 굉음이 삼켜버린다 고음을 두드리는 키보드 소리가 들릴 만하면 지나가는 똥개가 짖고 소곤거리는 연인의 목소리와 헤프러 진 웃음이 깡통 맥주 향을 타고 발아래 흩어진다 밑도 끝도 없이 카사블랑카를 떠들어대는 반쯤 정신 붙어있는 행인의 춤사위가 찌그러진 웃음을 웃는다
5.
어느 곳은 때로 아름다운 네 개의 다리가 나란히 길이를 잰다 길이가 긴 다리 위로 반바지 입은 고운 다리가 겹쳐지고 어깨를 견주다가 기댄다 사랑이 아름다운 것은 흔들리는 강물도 알고 지나가다 툭툭 건드리는 바람 따라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는 개망초도 안다 그나마 강에는 소주병 색깔보다 푸르고 예쁜 그들의 언어가 있고 몸짓이 있고 웃음이 있어 아름다울 수 있다 다리 위를 무심히 덜컹거리며 지나가는 전철이 가끔 그들의 사랑을 눈 빼꼼히 내밀고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내려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