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을 다닐 때, 한 학생이 상담학 교수님께 상담을 요청했다. 교수님의 반응은 의외였다. “나한테 상담 요청하지 마!!” 상담 교수님께서 상담을 하지 않겠다고 하시는 그 상황이 웃기기도 하고 너무 의외여서 기억에 남아있다. 시간이 흘러 많은 사람들의 삶의 이야기를 듣는 자리에 있게 되었다. 상담가로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때 그 교수님의 마음이 조금은 이해가 간다.
어느 순간, 누군가를 깊이 안다는 것이 부담이 되기 시작했다. 누군가의 존재의 바닥을 함께 들여다본다는 것은 무척 괴로운 일이기도 했다. 그 사람의 감정이 고스란히 내게 묻기도 하고, 영혼이 탈탈 털리는 기분이 들 때도 있다. 누군가의 슬픔과 아픔에 함께 아파하지 못하고 짐처럼 느끼는 지독하게 개인적이고 이기적인 내 마음을 마주할 때면 나 자신이 좀 별로인 것 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30년 넘게 심리상담가로 살아오신 어느 분의 인터뷰를 읽은 적이 있다. “누군가가 저한테 오면 덜컥 겁이 나요. 한 사람이 상담하러 오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일생이 오는 거예요.” 30년을 넘게 사람을 만난 분도 누군가를 만나는 것이 겁이 난다는 사실에 위안이 되었다.
누군가의 일생을 다 듣고 나면 답을 줘야 할 것 같은 일말의 책임을 느끼곤 했다. 그러나, 이제는 나의 한계를 인정한다. 내겐 답이 없다. 인간이 얼마나 단순하지 않은지를 늘 가슴에 새긴다. 그저 조금이라도 감정을 덜어낼 수 있었다면 그걸로 족하다.
삶의 이야기를 듣는 자리가 쉬운 자리는 아니었지만 사람에 대한 이해가 넓어지는 자리였음에 감사하다. 사람을 규정하는 일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를 배워간다. 같은 일을 경험하더라도 사람에 따라 결과는 다르다. 느끼는 강도도, 대처하는 방식도, 삶에 미치는 영향까지도 다 다르다. 수많은 잣대와 틀에 가두어 다른 사람을 재단하는 것을 멈춘다. 그저 그 인생을 끌어안고 싶다.
쓰러져 일어설 수 없을 것만 같을 때 내가 일어설 수 있었던 순간들을 떠올려 본다. 말없이 온기를 나누어주던 사람들 때문이었다. 나한테 바꾸라고 하지 않고 그 쓰러진 자리로 함께 내려와 눈을 맞추던 사람들 때문이었다. 내 삶의 무게를 자기 마음대로 정하지 않는 사람들 때문이었다.
일생을 마주하는 일이 어디 쉬운 일이겠는가. 조금 더 힘이 있는 사람이 잠시 기댈 어깨 내어주는 거겠지. 나 역시도 누군가에게 기댈 수밖에 없는 연약한 존재임을 기억하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