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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란초 Nov 08. 2021

인간실격

아무것도 되지 않아도-

인간이라는 단어 옆에 실격이라는 단어가 나란히 놓일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해 한참을 고민했다. 인간이란 무엇일까. 무엇이 되어야만 인간다울 수 있는 걸까. 인간이 되는 데 필요한 자격이란 게 있을 수 있나.


   부정(전도연)의 우울을 완전히 이해하려 애쓰진 않았다. 서른이 되면, 마흔이 되면 무언가가 되어 있을 거라고 막연히 상상했던 것들이 환상이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지독한 현실만이 내 것임을 받아들여야 하는 순간, 우울이 스며드는 건지도 모르겠다.  


   마음이란 게 그런가 보다. 누가 알아주기만 해도 조금은 살만해지는 듯하다. '같이 살자'는 말보다 '같이 죽자'는 말에 살아갈 힘을 부여받는 건 혼자만의 외로움이 아니라고 느껴져서일 것이다.


   한없이 믿어주는 아버지의 사랑에 고마웠다. '네가 그렇게 착한 사람이야'라고 부정(전도연)을 늘 긍정하는 부정(父情)에 한참을 머물고 싶어졌다. 자식에게 짐이 되지 않으려는 아버지의 힘겨운 열심에 마음이 시큰했다. 아무것도 되지 않아도 무엇을 하고 있는 게 중요하다는 것을 몸소 가르쳐줄 수 있는 건, 자식을 향한 부모의 사랑이 크기에 가능하지 않나 가늠해본다.


   아무것도 되지 않은 사람들의 이야기, 무언가가 된 것 같아 보이는 사람들의 삶에도 존재하는 빈틈의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동굴에 몸을 숨기듯, 작은 방에 숨어 한참을 우는 부정의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아무것도 된 것이 없고, 이룬 것이 없고, 가진 건이 없어 허덕일 때가 있다.


    어쩌면, 우리는 모두 인간실격 인지도 모르겠다. 소유로, 자격으로, 누가 실격인지를 따지는 세상이지만, 사실은 '너'도 '나'도 다 자격 없는 존재라는 것을 인정할 때 우리는 삶에 더 가까워지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는 생이여야 한다고, 시간당 값을 따지며 아등바등 살아가는 인생 속에서도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가 있다는 것을 붙잡게 된다.

 

   별이 가득 박힌 밤하늘을 보고 있자니 아무것도 되지 않아도 내가 되어야겠다는 마음이 든다. 그저 자기 자리에서 빛을 발하는 별처럼, 이 세상에 없지 않고 있음으로, 그 자체로 충분하다고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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