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샬롬’이라는 히브리어 단어는 제자리에 있는 것이라는 뜻이 담겨 있다. 각자가 있어야 할 자리에 있음으로 모두가 평화를 누릴 수 있다는 것이다. 각자가 지켜야 할 자리가 있다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집안 정리를 할 때마다 ‘샬롬’이라는 단어가 생각난다. 아직은 어린 두 자녀와 샬롬을 이루며 살아가기는 어렵다. 어쩌면 내가 생각하는 질서의 상태와 아이들이 원하는 상태가 달라서 생기는 일일 수도 있다.
결혼을 하고 남편과 맞추며 살아가는 것도 처음에는 쉽지 않았다. 부부상담을 할 때 '물건을 사용하고 제자리에 놓기’가 잘 안 맞는다고 하면 상담하시는 분은 이렇게 말하곤 했다. 각자가 생각하는 제자리가 다를 수 있죠. 그러면 나는 꼭 이렇게 대답했다. 부부가 서로 합의한 자리가 있습니다.
남편과 어느 정도 호흡이 맞춰졌다고 생각했는데 아이들과 이를 맞추는 데는 훨씬 더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아이들을 키우며 가장 힘든 부분은 내 시간과 내 공간을 보호받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엄마의 뱃속에서 나온 아이들은 너무나도 당연히 엄마의 모든 것을 누릴 권리가 있다는 듯이 행동한다.
누군가에게 기꺼이 나를 내어줄 수 있다는 것이 눈부시게 아름답게 느껴질 때도 있다. 육체의 에너지가 고갈되거나 마음의 여유가 조금밖에 남지 않았을 때가 문제이다. 눈이 부신 게 아니라 잠깐이라도 눈을 감고 싶을 때가 온다. 급속 충전을 위해 혼자 종종 화장실에 들어가 앉아 있기도 한다.
오랜만에 집안 대청소를 했다. 버려야 할 것들은 버리고 자리를 잃어 방황하는 물건들은 자리를 찾아줬다. 깨끗하게 정돈된 거실을 바라보며 마음의 샬롬을 누렸다. 내일 아침이면 흐트러질 것을 알기에 잠시라도 마음에 담아두고 싶어 그 자리에 머물렀다.
정리를 하며 곳곳에 ‘엄마 사랑해요’라고 적혀있는 종이들을 발견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장난감을 따로 모아두는 상자 속에서도 쪽지가 나왔고 내 가방 속에서도 쪽지가 나왔다. 아끼는 노트에도 잔뜩 ‘엄마 사랑해요’라고 사인펜으로 적혀 있었다.
‘아니, 언제 이런데까지 낙서를 한 거야!’ 화가 났다가도 웃음이 났다. 적을 수 있는 한글이 몇 개 안되는데 제일 먼저 배운 글이 ‘엄마 사랑해요’라니. 아이들이 느끼는 샬롬의 자리는 엄마를 느낄 수 있는 자리였구나 싶었다.
나의 시간과 공간이 조금은 무질서해지더라도 아이들이 존재의 샬롬을 누리는 것이 더 중요하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여전히 나를 내어주는 것이 버거울 때가 많은 엄마이지만 조금씩 내가 있어야 할 자리를 알아가는 듯하다. 아이들만 자라 간다고 생각했는데 아이들의 사랑을 받으며 엄마인 나도 자라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