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를 키우며 여러 가지 기술력이 상승했다. 멀티태스킹 능력이라든지, 독심술, 복식호흡을 이용한 창법 등등. 육아를 하며 얻게 된 인격은 '오래 참음'이라 할 수 있겠다.
천방지축 아이들을 데리고 하루를 살아내기에 인내력이 부족하면 하루가 삐걱거릴 때가 많다. 여전히 '쓰읍' 소리와 함께 '엄마가 열 센다. 하나, 둘..!'이라고 하거나 '엄마가 몇 번 말했어!'라고 할 때도 많다. 그러나, 요즘 아이들을 대하며 아이들이 사랑을 느끼는 순간은 그 임계점을 넘을 때 엄마의 반응을 통해서라는 걸 깨닫게 된다. 첫째 아이가 '사랑해주셔서 감사해요.'라고 말하는 순간들을 떠올려봤다.
자기 전, 한 시간 가까이 책을 읽어줘도 '한 권만 더 읽어주시면 안돼요?'라고 묻는다. '그만 자자'라는 말을 꾹 누르고 한 권 더 읽기 시작할 때 '엄마, 사랑해주셔서 감사해요.'라고 한다.
운동화를 신고 나갔는데 불편하다며 운동화 끈을 계속해서 다시 묶어달라고 한다. 세 번까지는 괜찮다가도 네 번째가 되면 '불편해도 좀 참아봐'라고 말하고 싶지만 꾹 참고 소리 없이 운동화 끈을 고쳐줄 때 '엄마, 저를 사랑해주셔서 감사해요'라고 한다.
놀이터에서 '5분만 더 놀게요'를 이미 수차례 반복해도 마지막 한 번을 참지 못하고 다그치면 그날의 외출은 행복한 결말을 맺지 못할 때도 있다.
첫 째는 정말 가만히 있지 않는 아이였다. 돌 무렵, 걷기 시작하며 한시도 가만히 있지 않고 돌아다니던 때가 있었다. 따라다니기 너무 힘들었는데 한 어르신이 지나가며 그런 말씀을 하셨다. '오 리를 가자하면 십 리를 가줘야지.'
그 말의 뜻을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아이들도 어느 정도가 엄마의 한계인지를 안다. 그 이상을 내어줄 때 아이들은 그걸 '사랑'으로 느낀다. 한 번 더 수용받을 때 아이들의 마음이 커진다고 생각한다.
근력 운동을 할 때와 마찬가지다. 정말 한계라고 느낄 때 '한 번 더' 동작을 하면 운동이 되는 것처럼, 내 인내심의 한계를 넘어 '한 번 더' 참고 아이들의 마음을 채워줄 때 내 마음의 근육이 자란다. 수용받는 경험들을 통해 아이들의 마음도 한 뼘 더 자라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