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팀장'이 된 당신에게 들려주는 오피스릴러 - 10편
핑크 마티니의 노래 중 Sympathique에는 '일하기 싫어요, 밥도 먹기 싫어요, 그리고 담배를 피우죠'라는 매력적인 프랑스어 가사가 있습니다. 일하기 싫은 날에도 밥은 먹고픈 비흡연자지만 노동요 목록에 넣어놓고 자주 듣습니다. 특히 초과근무가 확정된 날에는 더 생각납니다. 근무하다 보면 오늘은 야근이겠다고 예언처럼 확정되는 시간이 있지요. 주로 평일 오후 4시쯤 결정되는데 어린 왕자 아니 야근을 기다리는 여우 꼴입니다.
초과근무에 대해서는 전부터 틈틈이 쓰다 지우다 하였습니다. 야근이 많을 때만 이 주제가 생각이 나는데, 야근을 하고 있으면 뭐라도 쓸 시간이 나지 않는 딜레마 속에서요. 국경일이지만 사무실에 나와서 근무 중일 때, 출장 가서 새벽에 노트북을 켤 때, 늦은 밤에 고요한 사무실에서 홀로 키보드 ASMR을 만들 때 등등. 주중 출장을 또 앞둬 내일 올 야근을 확신하는 주말이니 마침 제목에 걸맞은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야간근무, 휴일근무, 월 소정근로시간을 넘는 근무에 대해서. 가장 흔한 '야근'으로 통칭해 볼까요. 첫 회사에서 평균적인 장기근속자로 분류될 만큼의 시간을 보내는 동안, 초과근로에 절여질 만큼 익숙해졌습니다. 일을 가장 많이 하는 사람 중 하나였지요. 많은 한국인들이 그렇듯 주로 야근을 하였고 결코 동의하지 않으나 일 중독 소리를 들으며 살아왔습니다. 이 글은 그렇게 일만 하며 산 사람이 말하는 야근에 대한 아주 솔직한 이야기입니다.
야근은 개인에게 있어서 무익한 행위입니다. 금전적인 부분에서는 초과수당을 주는 회사면 다행이지만 그마저도 야근보다는 퇴근이 개인의 건강에 좋은 알량한 금액입니다. 특이한 건 여러 나라와 근무해 보면 유독 우리나라가 야근을 많이 하는데, 은근히 괴로워하면서도 나 일 많이 한다고 알아달라는 경향을 보이는 상습 야근자들의 비율도 상대적으로 높습니다. 나도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없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나 이 정도 일한다고 소리쳐도 남들은 큰 관심이 없습니다. 만약 그 사람이 객관적으로 일이 몰려 야근을 많이 하면 좋게는 힘들겠다고, 나쁘게는 지독하다고 생각할 것이고, 남들 기준 그렇게까지 일이 많지 않은데 자꾸 야근한다고 하면 일을 못 한다거나 유난하게 군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렇기에 이미 힘든 경험이 있는 관리자로서는 팀원들의 불필요한 야근을 지양하려 하는데, 부득이 필요할 때는 이 프로젝트를 해야 하는 배경을 이해시키려 합니다. 준 업무량이 많지 않은데 단기적인 야근에 팀원이 티를 내면 그다지 치하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므로 더 효율적으로 업무 하는 방식을 고민하거나 동료에게 일을 나눠줄 방법을 찾는 것이 우선이요, 그럼에도 실제 일이 많아 어차피 야근해야 한다면 묵묵히 하고 따로 인사관리자의 판단을 받는 것이 그다음입니다. 정말 일이 많은데 아무도 같이 못 하고 판단도 받지 못하는 슬픈 사연도 무수히 많지요. 야근은 신성하지 않습니다. 딱 하나, 야근을 스스로 즐기는 날이 있을 수는 있습니다. 혼자 조용히 일하면서 내적 즐거움을 찾는 경우는 가능하지요. 그러나 그것은 개인 성향이나 그날 기분의 문제지 객관적인 '일잘함' 혹은 회사의 '보상'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입니다.
연관하여 야근을 많이 해 승진하지 않았느냐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딱히 그렇지 않습니다. 굳이 야근으로 입증한 것이 있다면 많은 일에도 일관되게 묵묵히 하는 항상성 정도이고 승진의 이유는 절대적 근무량으로 결정되지도 않으니 과도한 업무량을 추천하지도 않습니다. 일단 그러면 나이가 들면서 건강이 상하여 들어가는 관리비용만 늘어납니다. 그러므로 야근은 이 웃픈 이야기 과정 안에 포함된 외전 같은 것일 뿐입니다. 야근의 쓸모가 있냐고 하면 본인이 아닌 대상이 되는 프로젝트의 결과를 앞당기기 위해서지요. 본인이 아닌 일을 위하여. 장점이 있다면 야근을 많이 하면서 오히려 불필요한 업무방식은 걸러내고 나 자신을 돌볼 시간을 배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어느 일에나 교훈이 있다고, 경력기술서에는 못 쓸지언정 그게 나를 만든 이력이긴 할 테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