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랭릭Langlic Oct 22. 2023

팀장의 은밀한 사생활

'어쩌다 팀장'이 된 당신에게 들려주는 오피스릴러 - 9편

회사에 소문이 돈 적이 있습니다. 내가 퇴근하면 매일 비싼 술을 마시러 가고 밤마다 놀러 다니는 화려한 비혼이라는 이야기였습니다. 이 이야기는 누가 진심으로 믿고 물어봐서 알게 되었는데, 그런 드라마 같은 삶을 살고 있지 못한지라 딱히 억울하지도 않았기에 아니라고만 해주었습니다. 일단 비혼주의는 아니고 함께하고 싶은 사람이 생기면 하겠다는 느슨한 가치관인걸요. 거 소개팅이나 시켜 주고 물어봐줘. 게다가 밤마다 일정이 있긴 하지만 그건 90%가 나 자신과 노는 거라서 장소는 주로 헬스장, 서점, 학원... 뭐 그런 곳들입니다. 밤마다 놀러 다니면 좋겠지만 잦은 술자리는 굉장히 귀찮아하는 편이지요. 비싼 술은 좋아하긴 하지만 주량이 적어서 자주는 못 먹습니다. 이런 소문들은 입사 때부터 지금까지 각색과 편집을 거치며 다양하게 발생하였습니다. 지금까지 있던 소문을 보면 소문이 생기는 원천은 본인이 맞긴 합니다. 다만 아주 사소한 사실의 키워드만 남기고 동사와 부사가 바뀌어 변형되거나 부풀려지는 것이지요. 이래서 사실관계가 확인되지 않은 소문은 불신하게 되었습니다.


회사란 소문이 많은 곳입니다. 비단 회사뿐이겠습니까? 사람이 모이는 집단은 다 똑같습니다. 어딜 가나 소문의 진원지가 있고 소문을 퍼 나르는 사람과 듣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리고 소문의 주제는 대부분 사생활에 관련된 것입니다. 진실이든 거짓이든 날것의 사생활을 사람들 앞에 내놓을 경우 인간미 있게 느껴지거나 시시한 사람으로 비치기 마련입니다. 손바닥 뒤집듯 아슬아슬한 양면인 채. 어떤 사람의 이미지는 너무나 쉽게 결정됩니다.


그런 지점에서 사수이자 관리자로서는 감정과 속사정을 훨씬 덜 드러내려고 하게 됩니다. 단지 회사에서 나의 사생활을 굳이 안 말해야지, 같은 일반론이 아닌 팀의 사기와 팀장의 권위를 위해서요. 여기서 권위는 멋있어 보여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지시를 받는 사람의 입장에서 지시하는 사람에 대한 상향 존중은 어느 정도는 필요한 법이니까요. 거친 표현으로 환상이라고 해도 좋고, 이미지 관리라고 뭉뚱그려 보일 수 있겠지만 그것보단 덜 야비한 고민입니다. 왕조 시대도 아닌데 단순한 직급만으로 타인의 존중과 존경을 살 수는 없지요. 어떻게 보면 나의 윗사람이 나보다 큰 그림을 보지 않고 감정에 쉬이 휘둘리며, 너무 날것의 사생활을 하는 모습이 보일수록 이 사람의 지시를 따르기란 힘듭니다. 그 이면이 좋은 사람이든 나쁜 사람이든 상하관계에서 큰 문제는 안 되지만 최소한 '이 사람은 생각을 먼저 한 후 지시하고 나를 공정히 대한다'는 전제는 팀의 결속에 영향을 미치게 마련입니다. 그 전제를 만들기 위하여, 어려운 임원도 아니고 나이도 팀원들과 큰 차이가 없을 수 있는 애매한 중간관리자로서는 가능한 한 깊은 감정과 사생활을 덜 드러내는 방법뿐이었습니다. 뭘 하고 사는지에 대한 건 별 재미없는 건전한 삶인 데다 직설적인 성격이라 딱히 숨기지는 않으나, 너무 기쁘거나 너무 화가 날 때, 너무 우울하거나 예민할 때는 팀원들에게 거의 티 내지 않습니다. 화가 나거나 힘들고 우울하더라도 나의 상태가 구성원에게 나쁜 영향이 미치는 걸 원하지 않기에 사무실에서는 팀의 상황과 문제 해결을 더 우선으로 대하게 되더라고요. 몇 번 감정적인 상태를 드러냈을 때 굳이 그런 모습을 비추었어야 하는지 후회하였고, 오히려 그 후회를 토대로 쌓아가며 더 신중하게 됩니다.


이것이 팀원에게 모든 나를 드러낼 것인지에 대한 질문에 대한 답변입니다. 모두가 자신을 어느 정도 숨기겠지만, 관리자라면 드러내는 비중이 더 적은 것이 유익하다는 것이지요.  그렇다고 그걸 특별히 하나하나 계산하여 불우하게 여길 필요도 없습니다. 그 편이 더 합리적인 것뿐 나는 나의 사생활을 따로 재미있게 살고 있으면 그걸로 충분하니까요. 이 시리즈를 시작할 때 나는 관리자로서 불행할 확률을 시험하겠다고 하였습니다. 관리자로서 성장하는 것은 확실히 고단하고 때로는 고통스럽습니다. 하지만 나를 더 강하게 만드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 시험은 아직 현재진행형이고, 관리자의 위치와 나 자신 사이에서 균형을 잡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고단하지만 흥미로운 곡예를 배우듯이.



이전 08화 인터뷰와 명함: 명징(明澄)함의 순간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