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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랭릭Langlic Oct 21. 2023

엑셀과 메일과 보고서, 잘한다는 소리 듣는 법

'어쩌다 팀장'이 된 당신에게 들려주는 오피스릴러 - 7편

사원 시절 회사에서 미래에 이곳에서 5년 후쯤 이루고 싶은 희망사항을 각자 써서 모아두기로 한 적이 있습니다. 도무지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엑셀 마스터가 되고 해외 업무를 잘 수행하고 싶다'라고 썼을 겁니다. 아마 자신 있는 분야가 그거였나 봅니다. 그런데 세상엔 말이 씨가 된다는 유서 깊은 속담이 있지요. 이 어설픈 소원은 5년 후 엑셀만큼은 기똥차게 하는 해외 부서 직원이 됨으로써 정확하게 실현되었습니다. 꿈을 적어두고 되새기면 이루어진다는 모 자기 계발서들의 흔한 문장이 생각나는데 이런 것만 딱히 꿈꾼 적 없음에도 이뤄집니다. 그럴 줄 알았으면 부자가 된다거나 더 유용한 걸로 쓸걸 그랬지요. 이뤄져서 무엇이 좋아졌느냐면, 타 부서에서 엑셀 수식 만들기나 각종 통번역 의뢰 등으로 찾아오는 것 외에는 없습니다. 우스갯소리지만 노후대책으로 엑셀 강의를 해야 하나 고민은 해 봤습니다. 엑셀 마스터가 된다는 이야기는, 그만큼 컴퓨터 앞에서 야근하며 엑셀에 많이 시달리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의미였고요. 소설이나 영화 등을 보면 예언과 소원의 좋아 보이는 단어 속에 숨겨진 함정과 희생이 있는 이치입니다. 알라딘이 지니에게 왕자로 만들어 달라고 했더니 진짜 나라는 안 주고 옷차림만 바꿔주는 것처럼요. 물론 그 쪽지 모음은 모두의 묵인 하에 그 후로 영원히 공개된 적 없습니다. 


회사엔 다양한 직무가 있어 주로 쓰는 툴은 각자 다르겠지만, 가장 일반적이고 실용성 높으며 자주 쓰이는 건 엑셀과 메일, 보고서입니다. 이들은 일을 수행하는 목적이 아닌 도구의 성격이나, 그 3가지를 잘하기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잘만 하면 디테일이 빛나는 사람이 될 수 있지요. 본인이 일하기에도 훨씬 편해집니다. 이 3가지에 대해 직원들에게 실제로 가장 자주 들은 질문들을 빌어 그간 일하면서 알게 된 지름길을 소개하겠습니다.


Q. 엑셀은 수학을 잘해야 하지 않나요? 어떻게 해야 쉽게 하나요

A. 의외로 많이 들었던 이야기가 문과라서, 혹은 수학을 못해서 엑셀이 어렵다는 이야기입니다. 엑셀을 할 때 수학적인 감각이 있으면 좋지만, 그건 이미 잘하고 있을 때 더 쉬운 길을 찾아낼 확률이 높다는 정도입니다. 회사에서 쓰이는 엑셀은 생각보다 어려운 수식을 많이 쓰지 않습니다. 정답도 없습니다. 코딩처럼 같은 내용으로 만드는 엑셀도 사람마다 표의 배치와 셀 수식이 다릅니다. 어렵게 여기지 말고 2가지만 잘하면 나머지는 문제없습니다. 다 사족이고, vlookup과 pivot(피벗)만 기억하세요. 그 2가지만 능숙하게 다루면 본인의 업무 시간도 단축되고, 웬만한 문제는 다 해결할 수 있습니다. 업계의 아는 어르신께서 표의 부분합을 늘 일일이 sum을 해서 더하는 방식으로 매번 2시간을 소요하셨는데, 피벗을 배우시고 같은 업무를 5분으로 단축하셨습니다. 


Q. 메일 잘 쓴다는 게 무엇이며, 어차피 메시지처럼 할 말만 하면 될 뿐인데 잘 써야 하는 이유가 있나요?

A. 메일은 대화의 형태를 띤 글쓰기와 비슷하지만, 편지가 아닌 상호 간의 예의 바른 채팅에 가깝습니다. 인사말-마치는 말, 본인의 소속을 밝히는 기본적인 양식이 1번이고, 그다음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을 간결하고 정갈하게 쓰는 것이 2번입니다. 의외로 중요한 것이 의외로 예의범절인데, 잘못된 호칭, 무례한 말투나 지저분한 메일이 발신인에 대한 호감도를 결정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건 기억에 꽤 오래 남습니다. 그 사람은 별로더라, 하고 단적인 판단도 가능하니까요. 말 한마디로 천냥 빚 갚는다는 말은 더없는 진실입니다. 해외 업무상 친하지 않은 외국인을 상대할 때, 그곳의 매너 문화나 호칭, 정중한 인사말이 무엇인지 찾아보고 보내는 일도 많습니다. 예를 들어 일본의 경우 모모 부장님, 처럼 이름을 부르는 건 무례할 수 있으니까요. 또한 메일에는 수신자와 참조 리스트를 꼼꼼히 체크해야 합니다. 참조는 종종 남용되기도 하는데, 상대에게 수모를 주고 싶어서 불필요한 직원들까지 참조를 걸어 화풀이처럼 보내는 경우도 많습니다. 단톡방을 파서 화를 내는 느낌이죠. 메일에는 희로애락에 대한 감정표현을 강하게 하면 안 됩니다. 이모티콘 남용, 줄 바꿈 적은 자기만의 기나긴 산문, 격정적인 표현은 좋지 않습니다. 회사에서의 역할상 강하게 항의하더라도 정중하게 부정적인 단어를 서술해야지 대놓고 욕을 쓰면 안 되는 것과 같습니다.


Q. 보고서 안 혼나는 방법

A. 그런 왕도는 없습니다. 보고서에는 수많은 이해관계가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잘 써도 어차피 보고받는 상사가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거나, 그 사람이 컨디션이 안 좋거나, 보고자가 마음에 안 들거나, 회사 사정상 반대해야 하거나... 그런 이유들로 잘 써도 혼납니다. 반대로, 개떡같이 썼어도 어차피 통과될 거면 통과되기도 합니다. 그러니 보고 시 혼나는 것과 보고서 자체를 잘 쓰는 건 완전히 별개입니다. 그렇기에 보고서 작성에 추천할 만한 팁만 얘기하자면 우선 두괄식이 좋습니다. 보통 보고서는 [목적 및 배경/이슈(어젠다) - 본론(보고하고자 하는 건) - 그로 인한 영향/효과 - 근거자료/레퍼런스]로 이루어지는데 바쁜 임원들은 모든 내용을 꼼꼼히 듣지는 않습니다. 해당 구조를 완전하게 짜되, 보고서 앞단에 요약을 하여 '임원이 들어야 할' 핵심적인 내용을 먼저 보여줍시다. 그걸 보여주고 세부사항과 질의를 진행하면 편합니다. '커피 구매 건을 보고하고자 하는데(어젠다) 직원들의 수요가 높기 때문에 검토하였고(배경) A, B업체 검토해서 더 낮은 30만 원에 A업체와 협의하고자 합니다(요지)'라는 정도만 먼저 들으면 임원들은 대강 질문 및 확인할 사항과 찬반을 마음속에서 정합니다. 상사들은 비용구조에 민감하므로 지출될 비용이 있으면 30억이 드는 프로젝트이다, 정도로 단적인 숫자를 먼저 보여줘도 좋습니다.


Q. 엑셀/메일/보고서를 잘한다는 소리를 들으려면 가장 중요한 것은?

A. 당신이 만든 자료와 문장을 남들도 한눈에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디자인은 배경에 보노보노를 넣지 않는 이상 깔끔하기만 하면 사실 중요하지 않습니다. 회사마다 정해진 양식이 있으면 그걸 따르면 되고요. 중요한 건 그걸 보는 사람들이 이게 무슨 내용인지에 대하여 헷갈리지 말아야 합니다. 작업할 때 타인의 시선에서 생각하세요. 원래 남의 엑셀 보는 게 제일 어렵다는 말이 있고, 상대가 메일 읽다가 무례한 어투나 난잡한 내용에 화내는 경우, 상사에게 보고를 하다 상사가 초점 잃은 눈으로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냐고 하는 경우가 흔합니다. 남에게 보여주고 말하기 위한 도구이므로, 내 눈에 멋있는 것보단 상대가 최대한 잘 이해할 수 있으면 됩니다. 나는 그걸 '원숭이도 이해할 수 있는' 수준에서, 혹은 '열어보고 3초 만에 요지를 알 수 있게' 쓰라고 말하곤 합니다. 정답은 없지만, 많은 기업의 인재상이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좋은 사람인 이유를 나는 여기서 깨닫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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