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팀장'이 된 당신에게 들려주는 오피스릴러 - 6편
사회초년생 때 직장생활이란 걸 시작한답시고 얼빠진 모습으로 출근해서 직장인 흉내를 낼 때쯤, 상사가 해주신 말씀이 있습니다. 그분은 성격도 무척 독특하고 남들에게 무섭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하며 목소리도 우렁찬 편이었습니다. 하지만 인생에서 쉽게 만나기 힘든 '좋은 상사'의 표본이었습니다. 나에겐 살면서 일정한 시기마다 마음에 남는 말을 해주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별말도 아니고 스쳐갈 수도 있지만 유난히 뇌에 꽂혀 사라지지 않는 말들입니다. 고등학생 때는 학원 선생님이었는데, 성격이 무서워서 거칠 것 없는 남자 고등학생들도 말을 잘 듣는 분이었습니다. 선생님은 수업 때 '사람이 프로다워야 한다'와 '시간 약속을 중요하게 여겨야 한다'라고 여러 번 주장하였지요. '프로다움'은 어떤 일을 할 때나 약속을 할 때 그 책임과 신의를 지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뜻과 가까웠습니다. 그 말 덕분에 나는 책임감만큼은 강한 성인으로 자라났고, 그게 좋은 건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그 부분은 만족하고 있습니다. 꼰대일 수는 있겠지만 본래 기본적인 데서만큼은 꼰대인 게 조직생활에는 좋습니다. 한편으로 앞서 말한 상사는 부하직원들에게 언제나 '갑질하지 마라'는 말씀을 하였습니다. 생각해 보니 두 분은 공통적으로 직설적이고 성격이 강하지만 일을 잘하는 타입인데, 내가 그런 분들과 궁합이 맞는 걸 수도 있겠습니다.
갑질하지 마라. 그 말을 한 배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시 회사 업무의 특성을 먼저 설명해야 합니다. 거래처 상대를 여러 군데 해야 하는 일인데, 계약상으로서는 갑의 위치에 있는 편이었습니다. 문서상일 뿐이고 그저 사회에서는 돈 주는 쪽이 갑인 이치입니다. 그러다 보니 사소하더라도 선물이나 접대를 받을 수 있는 위치라 젊은 실무자가 조금 건방지더라도 크게 지적받지 못할 확률이 높습니다. 그래서 그 상사분은 사회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5년 차 이하의 실무자들에게 언제나 절대로 갑질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농담처럼 하였습니다. 본질적으로는 사람을 대할 때 기본과 예의를 지키라는 말씀이었겠지요. 진지하게 들은 사람의 비율이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일할 때 자주 생각나는 말입니다.
그 한마디는 이후 직장생활을 하며 주변에서 나타나는 반증과 예시를 무한히 거쳤습니다. 내가 알게 된 결론은 갑질은 누구나 할 수 있다는 겁니다. 드라마에 나오는 상사와 거래처의 무리한 요구와 요청은 가장 보편적이며 겉으로 드러나는 예시일 뿐입니다. 동료 간에도, 아랫사람이라도, 혹은 계약상의 갑도 아닌 상대 회사 신입사원이 우리 회사 부장님에게 갑질할 수도 있습니다. 그만큼 내가 본 '갑질'의 영역은 인간관계에서 가히 예술의 영역이었습니다. 본인의 개인적인 의견이나 취향에 억지로 동조시키는 일, 의무나 책임을 떠넘기는 일, 화풀이를 위해 트집을 잡는 일, 상대의 사정을 생각하지 않고 내 사정을 앞에 둬도 된다고 생각하는 일, 음주나 유흥을 강요하는 일, 이건 다 너 때문이라고 뒤집어씌우는 일, 무례함에 웃으라고 분위기를 만드는 일 등등. 요약하면 [나를 너보다 무조건 중요한 사람이라고 직간접적으로 말하는 일]입니다. 갑이라는 단어 자체가 을과 병을 나누는 수직적인 단어이지요. 익숙하지요? 가족과 연인, 친구 사이에서도 흔하게 일어나는 일이니까요. 심지어 이 행위에는 섬세한 층위가 있어 나타나는 형태도 다양합니다.
'어쩌다 팀장'이 된 후 갑질할 기회와 동기는 너무, 정말 너무 많았습니다. 팀장은 욕먹는 자리라는데 욕먹을 짓 하기가 쉬웠거든요. 젊어서 승진하였으니 누가 팀장님, 팀장님 불러주면 무의식에서라도 내가 잘났다는 마음이 들지 않겠습니까? 또한, 팀원의 사소한 부주의를 보고 저 직원이 나를 정말 신경 쓰지 않은 것인지, 일하느라 미처 놓친 건지, 아니면 내가 예민한 건지 언짢음과 객관성 사이에서 판단해야 하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한 걸음 뒤에서 상황을 보며 사람이 얼마나 나약한지 실감하였습니다. 드물게 괜찮은 갑질 중의 하나는 법인카드 결제 정도였습니다. 그렇게 관리자의 일을 하며 종종 실감하곤 합니다. 그 말씀은 정말 어려운 뜻이었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