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을 정하지 않은 글

by 랭릭Langlic

이 모든 것은 픽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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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일이 있던 것은 장미가 흐드러지게 피던 5월이었다. 나는 그날 이후로 장미향을 맡으면 아득함을 느낀다. 아니, 이렇게 포장된 겉멋처럼 말하기 싫다. 망상 속 아름다운 이야기처럼 들리니까. 하지만 더 정확하게 설명할 자신이 없다. 회사 근처 무심하게 놓인 플리마켓의 온갖 봄꽃 화분에도 나는 마음이 무너진다. 동료들과 웃으며 꽃 피는 철이라고 말할 때조차. 하필 장미라니. 이것보다 담백한 서론을 쓰고 싶었는데 쉽지 않다.


수학적으로 접근하면 이런 말이다. 만약 15년 동안 잊지 못하는 일이 있다면, 고통은 한 사람의 삶에 꽤 정기적인 노이즈로 작용한다. 조용하게 이제 괜찮구나 할 때, 예상하지 못한 한 순간에 고통은 사고처럼 사람을 치고 과거의 한 지점으로 데려다 놓는다. 사주를 잘못 타고났는지 그 지점은 유난히 많았고 매번 그중 한두 지점이 예상치 못하게 나를 태웠다. 그중 가장 지독한 지점에 닿은 올해 봄 나는 나를 설득한다. 잊고 살면 안 될까? 너무 오래 지났잖아. 이제는 너도 '그런 이야기'를 호소하기엔 나이가 들었다. 스스로에게도 지겹잖아. 그러면 내가 답한다. 지겨워. 하지만 이건 지워지지 않는 악성 프로그램이야. 오감이 그것을 기억하지. 고통은 감각이다.


지독하고 자극적이지만 감각으로 기억하지 않았다면 어느 날 흐려지는 보통의 기억과 같았을지도 모르겠다. 웃는 표정과 그날 하필 맑았던 날씨, 누군가의 입가에서 느껴지는 레몬 사탕 냄새. 냉정한 목소리 톤. 잘 다린 셔츠의 옷깃이 건조하게 스치는 느낌, 영원히 잊지 못할 비겁한 문장들과 그것을 방관하거나 옹호한 자의 대답. 잊고 살면 안 될까. 그럴 수만 있다면 나는 내 모든 것을 내어줄 수 있다. 효율적인 삶을 추구하는 나에게 이건 너무 피로한 부분이다. 필요한 순간에 꼭 방해를 하니까. 단적으로, 나는 아직도 레몬 냄새가 나는 남성을 불편해한다.


나는 장단점을 떠나 효율적이고, 일중독에, 통제가 쉬운 사람이다. 이 노이즈가 발생하지 않을 때는. 하지만 이 변수는 자꾸 감정에서 져 본 적이 없는 나를 이긴다. 평소에 느끼지 못하는 독한 외로움과 동시에 다가오는 모든 사람을 피하고 싶은 마음이 충돌하는 지점. 다만 나는 이 순간에도 내 외로움을 계산하고 다시 풀어낼 수 있는 산식임을 안다. 그리고 나는 오랜만에 찾아온 이 파도에 치어 진짜 바다를 보러 왔다. 해변가에 앉아, 사람 소리 대신 바닷소리가 들릴 정도로만 이어폰 음량을 최대한 올린 채 눈을 감고 모든 소리를 없애려 노력했다. 추천하건대 꽤 효과 좋은 방식이다. 노래 가사와 파도 소리만 머릿속 모든 생각을 밀어낼 때까지.


이것은 피해자의 서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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