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돌릴 수만 있다면
언제부턴가 익숙함과 편안함에 가려져 당연시되는 것들이 있다. 내 사람의 호의도, 주어진 행복도 모두 그래야만 하는 것처럼 당연히 여기며 살아왔다. 그러나 그 모든것들을 잃고나서야 알게되는 사실은 누군가의 존재마저도 모두 당연한건 없었다.
- 드라마 '고백부부' 대사 중에서
만약에 아이가 없었으면
오늘 우리는 뭘 하고 있었을까?
오늘 오후에 문득 남편이 묻더군요.
저는 "뭐 그냥 소파에 반쯤 드러누워서 넷플릭스 보고 그랬겠지."라며 가볍게 대답하고 넘겼지만 정말 뭘 하고 있을지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일단 핸드폰 사진첩을 열어 작년, 재작년 이맘 때쯤에 뭘 했는지 찾아봤습니다.
퇴근 후 남편과 만나 저녁을 사 먹고 집에 들어가고, 주말에는 노트북이나 태블릿을 들고 카페에 가서 각자 하고 싶은 것을 하기도 했네요. 집에서 해먹은 음식 사진들도 많이 남아있었고요.
만약 아이가 없었다면 오늘은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 때문에 카페에는 못 갔을 것이고, 아마 아침에 느지막하게 일어나서 집에서 뒹굴대며 책도 읽고, 영상도 보고, 무슨 맛있는 음식을 먹을지 궁리도 하면서 하루를 보냈겠죠. 저녁에는 둘이 손잡고, 혹은 말다툼으로 투닥거리며 산책을 하기도 했을 겁니다.
오늘 우리는 뭘 했을까요?
아이가 있는 지금, 1년 전에 아무렇지도 않게 즐겼던 일상이 180도 달라졌습니다.
주말이지만 어김없이 아침 6시 30분에 일어난 아이의 시간에 맞추어 저희 부부의 시침과 분침이 움직였습니다. 먹이는 것을 네 번 반복하고, 틈틈이 함께 놀고, 아기 이유식 재료를 사기 위해 함께 재래시장에 갔다가 일주일치 이유식을 만들고, 재우는 것을 세 번 반복하고 나니 하루가 지나버렸네요.
오늘은 특히 아이를 재우고 샤워를 하는데 아이가 자다가 갑자기 깨서 울더라고요. 남편이 달래 보지만 아이는 울음을 쉽게 그치지 않았고, 저는 결국 씻다 말고 대충 수습하고 나가서 아이를 재우고 다시 샤워를 하기도 했네요. 끼니도 아이가 자고 나서야 먹을 수 있게 되어 오후 2시, 저녁 9시에 점심밥, 저녁밥을 먹었고요.
그 흔한 책 한 줄 읽지 못했고, TV 앞에 앉아있는 건 꿈도 꾸지 못합니다. 때 맞춰 먹는 밥 또한 소중해졌고, 함께 하는 밤 산책은 언제 다시 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아이로 인해 일상이 이렇게나 바뀌었습니다.
시간을 돌릴 수만 있다면
오늘 하루 종일 아이와 함께 있으면서 "아. 너무 예뻐.", "잠투정을 해도 어떻게 이렇게 예쁘지?", "없으면 어쩔 뻔했어."라는 말을 몇 번이고 남편과 서로 주고받았네요.
시간을 돌릴 수만 있다면 좀 더 일찍 아이를 만나기 위해 애쓸 겁니다.
그 때도 그 때 나름대로 행복했고, 지금도 지금 나름대로 행복하지만 시간을 되돌려서 선택을 할 수 있다면 저는 역시 지금을 선택할 것 같습니다.
체력이 떨어져 힘이 들때면 딱 일주일만 아이 없는 곳에 가서 하고 싶은 것 실컷 하고, 먹고 싶은 것 먹으면서 잠도 실컷 자고, 게으름 피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막상 아이 없는 곳을 간다고 생각하니 벌써부터 아이가 너무 보고 싶어지네요.
뒤 돌아서면 아이가 보고 싶은 저희 부부는 아이가 잠이 들면 아이를 찍은 사진들을 서로 공유하면서 같이 웃고 이야기 하는 또다른 취미가 생겨버렸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될줄은 아무도 몰랐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