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0월 즈음부터 글을 써봐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2018년 3월 브런치 작가로 승인을 받으면서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본디 얇디얇고, 가늘고 약한 의지력을 가지고 있어서 뭔가를 해야겠다고 생각만 하지 한 걸음도 발자국을 떼지 못한 채 그 자리에서 픽픽 쓰러지죠. 그런 의지를 일으켜 세우고자 글쓰기 모임의 환급이나 네트워크, 인증과 같은 당근과 채찍의 힘을 빌어서 꾸역꾸역 글을 써오고 있네요.
글을 쓰다 보니 생각지도 않았던 일들이 생기더군요. 내가 쓴 글이 포털 메일에 올라가기도 하고, ㅍㅍㅅㅅ라는 온라인 매거진에서 제 글을 큐레이션 하기도 했습니다. 글을 활용하고 싶다는 제안 메일도 더러 받고요. 자연스럽게 구독자 수도 조금씩 조금씩 많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내가 쓴 글이 뭐라고 사람들이 읽어줄까?' 하는 의구심이 먼저 들더라고요. 브런치 플랫폼 내에서 나를 부르는 '작가'라는 호칭이 내 것이 아닌 것 같고, 굉장히 민망했지만 싫지만은 않았습니다.
작가님께 새로운 제안이 도착하였습니다.
2020년 12월 초, '작가님께 새로운 제안이 도착하였습니다!'라는 알림을 받았습니다. 한 출판사에서 출간하는 책에 제가 쓴 글을 인용하고 싶다는 내용이었죠. 2021년 1월 출간 예정이며, 2030 직장인을 대상으로 하고 있는 내용이라고 했습니다. 인용하고 싶은 글은 2018년 9월에 브런치에 썼고, ㅍㅍㅅㅅ에 큐레이션 되어있는 '운동과 직장생활의 공통점 10가지' 중 일부였습니다.
"당연히 인용해도 되죠."
"두 팔 벌려 환영합니다."
"제 글이 뭐라고 책에 인용도 해주시다니 제가 영광입니다."
라고 호들갑을 떨고 싶었으나, 왠지 그 마음이 들키고 싶지 않아 최대한 담담하게 이성적인 척하며 답변을 보냈죠.
내 글이 책의 일부에 인용되는 과정은 공문을 받고, 글이 인용되는 부분의 원고를 받아서 확인하고, 계약서에 서명을 하는 과정을 거쳐서 마무리되었습니다.
공문을 받아보니 원고료도 책정이 되어있더라고요. 비록 치킨 한 마리를 사 먹기에도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었지만, 내가 쓴 글로 생긴 첫 수입에 감개무량합니다. 그리고, 오늘 입금을 받았네요.
그리고 또 한 가지!!
갑(甲)
글로 얻은 첫 수입도 의미 있지만, 계약서의 '갑' 부분에 내 이름 석자가 적혀있는 것 또한 왠지 기분이 좋았습니다. 늘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나는 다시 직업을 선택할 수 있다면 무조건 '갑'이 될 거야"라고 이야기해왔는데 정말 '갑'이 되었네요. 게다가 돈을 받는 '갑'입니다.
제 3자가 보면 그저 작고 귀여운 일종의 해프닝이지만 저에겐 굉장히 의미 있는 삶의 한 장면입니다.
나의 글쓰기를 생각하면 '꾸역꾸역'이라는 단어가 가장 먼저 떠오릅니다.
뭔가를 쓰고 싶고, 잘 쓰고 싶은데 게으르고 재능도 없어서 첫 문장을 시작하기가 그토록 어렵네요. 일필휘지로 글을 써 내려가고 싶지만 한 문장의 마침표를 찍는 것도 때론 시간이 걸립니다. 단어를 썼다 지웠다, 문장을 썼다가 또다시 없애버리고, 적합한 표현이 생각나지 않아 단어 검색을 하다가 인터넷의 늪으로 빠져 삼천포에 다녀오는 일도 부지기수이죠. 그렇게 매번 꾸역꾸역 한 편의 글을 마무리합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나는 혼자 글을 쓸 수 없는 의지박약의 인간이기 때문에 글쓰기 모임에 가입하고 인증을 해야 하는 마감 시간에 임박해서 글을 쓰는 그런 존재입니다.
그런데 이 글은 스스로 쓰는 첫 번째 글이네요. 지난 100일 동안 꾸역꾸역 뭐라도 썼던 게 몸의 일부에 새겨진 걸까요?
다시 생각해보니 오늘은 굉장히 역사적인 날이네요.
글로 수입도 생기고, 마감이 없는데도 스스로 글을 쓴 첫 번째 날이기 때문이죠.
0에서 1이 된 날입니다.
어쩌다 1이 되었네요. 1에서 2가 되는 것보다 0에서 1이 되는 게 훨씬 어려운 일이라고 하죠?
기왕 1이 되었으니 그냥 이렇게 꾸준히 걸어봐야겠네요.
1이 2가 되고, 2가 3이 되고, 3이 4가 되고, 4가 5가 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