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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9시 10분 비행기였다. 나는 여유 있게 새벽 4시에 일어났다. 전신 샤워에 메이크업까지 다 한다면 준비 시간이 1시간 반은 족히 걸릴 것이고, 그럼 5시 반쯤 출발하면 김포공항에 6시 도착. 비행기 이륙 시간 3시간 전까지 공항 도착이라면 그리 유난은 아닐 것 같았다. 뭐 일찍 도착하면 가서 커피 한 잔 하며 책이나 읽으면 되니까.
그러나 아침에 일어나니 왠지 화장을 하기가 싫었고 어차피 오늘은 거의 이동만 할 테니 그럴 필요도 없을 것 같았다. 대충 선크림만 바르고 눈썹만 쓱쓱 그리고는 집에서 더 할 일이 없어 일찍이 집을 나섰다. 엄마가 뭐 그리 일찍 가느냐 한 마디 하셨다. 실제로 뭔가 집에 두고 온 것이 있어 가다가 다시 한번 집에 돌아왔다가 지하철 방향을 잘못 탔다가 다시 한번 돌아가도 충분할 시간이다.
그리고 지금은 6시 20분인데 아직 집에서 공항 방향으로 한 발짝도 못 간 상태다.
집을 막 나서려는데 새벽잠을 깨신 교수님께로부터 카톡이 왔다. 지난 학기 기말 페이퍼 파일을 다시 보내달라고 하시는 것이다. 순간 그 파일이 어디에 있는지 기억이 안 나 시간도 있는 겸 다시 집으로 들어가 노트북을 열었다. 교수님께 파일을 다시 전달드린 후 다시 집을 떠났다.
공항까지 늦지 않고 안전하게 가야지, 하는 생각이 아니라 딴생각을 하다 보니 그만 지하철을 반대로 타고 있었다. 아니 지하철을 타고도 맞는 방향으로 탔는가를 다시 한번 곱씹어보기까지 했다. 나는 ‘평소에 타던 방향으로 탔으니 맞게 탔다.’라고 속으로 생각했다. 바보. 공항에 가려면 평소와 반대로 타야 맞지! 어쩐지 캐리어를 끄는 사람이 나밖에 없더라니…
다시 반대 방향 열차에 탔을 때 캐리어를 끌고 나온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집에서 나온 지 50분이 지나서야 나는 비로소 옳은 방향으로 향하게 되었다.
이번 여행 에세이에 조금 더 진전이 있다고 생각된 것은, 일기와 에세이를 분리하기 시작했다는 데에 있다. 저번 유럽 여행 기간 쓴 일기는 아무래도 에세이라고 보기 어렵고 그저 나 말고는 누군가 읽을 가치는 굳이 없을 것 같은 나만의 일기에 불과해 보인다. 그보다도 다녀온 지 두어 달이 돼 가는데도 아직 반도 브런치에 옮기지 못했고 거의 각색도 없이 그냥 옮기는 데도 그 작업이 생각보다 오래 걸리고 있다. 그 어려움을 깨달았는지 이번에는 그냥 바로 컴퓨터에 쓰기 시작하고 있다.
저번 여행에 노트북에 아이패드까지 챙기니 생각보다 그렇게 많이 쓰지 않는데도 짐이 너무 무거워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노트북은 고사하고 아이패드를 챙길까, 말까 고민하다가 결국 챙겼는데 출발하자마자부터 아주 손에 달고 있다. 그것도 처음에는 휴대용 백팩에 넣었다가 어깨가 무거워 캐리어에 옮겼는데 지하철을 반대방향으로 타고 내렸을 때 결국 다시 캐리어에서 꺼내 휴대용 백팩에 옮겼다.
혼자여서 그런가 미친 듯이 더 쓰고 싶었다. 우여곡절 끝에 공항에 도착했다. 30분이면 올 것을 1시간 반이 걸려서. 김포공항역에 내리니 비로소 하품이 났다. 사실 어젯밤 잠을 잘 못 잤다. 먹고 있는 약 때문인지, 호르몬 때문이었는지. 잠에 들었었다기보다는 그저 눈을 감고 누워있었던 것 같다. 딴생각을 하며 반대로 가는 중에도 나름 긴장은 좀 했던 건지 지금껏 아무렇지 않다가 공항역에 딱 내렸을 때 비로소 하품이 나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