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장

(18) 하이델베르크

by Lanie

이튿날, 이제 마지막 날. 나는 이제 모든 에너지를 소진한 것인지 딱히 나갈 생각이 없었다. 오전을 게으르게 보냈고 엄마는 홀로 산책을 나갔다 왔다.


몸을 충분히 충전하고, 슬슬 준비를 하여 나갔다. 마지막으로 쇼핑을 하러!


내 신발 한 켤레와 동생 줄 기념품만 건지고 딱히 살 게 없었다. 그래서 시내구경만 다시 한번 실컷 하고, 마지막 만찬으로 맥주와 소시지와 아스파라커스 수프를 아주 좋은 위치(카를 교 초입의 강변 레스토랑)에서 먹었다. 서빙하던 아주머니가 꽤 인상적이었는데, 짐을 좀 올려놓으려고 옆 테이블 의자를 끌어 그 의자 위에 짐을 놓았는데 글쎄 "이것들을 위한 자리는 없어!(Kein Platz fuer sie!)"라며 나의 짐을 바닥에 턱턱 내려놓는 것이었다. 참고로 이른 저녁시간이었고 자리는 정말 텅텅 비어있었다. 순간 너무도 어이가 없어 나도 모르게 헛웃음을 친 것 같은데, 나의 반응 때문인지 그곳에 짐을 놓으면 다른 게스트들이 앉지 못하지 않냐며 자신의 행동의 근거를 추가 설명하는 것이었다. 안 그래도 좌석이 너무 비어있는 게 괜찮은 레스토랑이 아니다, 를 반증하는 것 같아 좀 미심쩍었는데 거기에 강압적인 태도까지 더해지니 다른 델 갈까도 싶었지만, 이미 다른 곳 자리가 없어 두 번째로 찾아온 곳이었고 우리는 많이 지쳤으며 그녀의 태도에 딱히 지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도 마지막 경험이 좋았으면 했는데. 그녀는 원래 그런 사람인 것 같았다. 이후로도 어떤 아저씨가 자전거를 끌고 들어와 혼나는 장면을 봤고, 그녀는 융통성은 없을지라도 단지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끝까지 있고 볼 일이다. 후에 어떤 3명의 일행이 들어와 우리 근처의 4인석에 앉았는데 그 남는 하나의 의자를 바로 나에게 주는 것이었다. 이번엔 "이건 당신을(혹은 짐들을?) 위한 거야.(Das ist fuer Sie.)" 하며... 그 후로도 그녀는 나와 눈을 마주칠 때마다 커다란 미소를 선사했다.


마지막 맥주와 만찬 / 문제의 의자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마지막으로 쇼핑을 했다. 나의 여행을 허락해 주고 응원해준 사람들, 또 내가 자리를 비운 사이 그 자리를 채워준 이들에게 줄 선물을 아직도 사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정말 살 게 없었다. 확실히 7년 전과는 느낌이 다르다. 그때는 내가 어려서 그랬던 것인지 몰라도, 질 좋은 독일 제품을 저렴한 가격에 마음껏 쓸 수 있다는 게 그렇게 좋고 또 한국에도 많이 보내주고 사 가고 그랬는데. 지금 우리는 한국에서 확실히 부족함 없이 살고 있어서 그런지, 해외여행이라는 게 그동안도 훨씬 더 보편화되어서인지, 뭘 골라도 그리 특별할 것이 없는 느낌이다. 선물이란 건 확실히 그 실용성에 값을 지불하기보다는 '기분'에 값을 지불하는 것이다. 뭘 골라도 별 것 아닌 느낌에 고르기가 생각보다 힘이 들었다. (그래도 나중에 그걸 받는 이들은 하나같이 크게 기뻐해 주었다.)


숙소로 돌아와 짐을 싸는 데 그 행위가 정말 재미있게 생각되었다. 다시 여행에 가는 것처럼. 한국에서 가져온 선물들의 자리를 독일에서 산 선물들로 채웠다. 쉽진 않았다.


그러면서 앞으로 누군가 나에게 해외에서 뭘 사다 준다거나 하면 정말 소중히 생각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물건 자체의 가치를 떠나 여행 와중에 소중한 시간을 내어 선물을 고민하고 또 한정된 짐에 그걸 굳이 가져오겠다고 공간을 마련하고 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란 걸 확실히 느꼈기 때문이다.


(몇 달 후에 미국 유학 중에 한국에 온 친구가 작은 선물을 하나 준 일이 있었는데, 내가 그게 얼마나 수고롭고 신경쓴 일이었을지 공감해주었더니 그정도로 알아준 친구가 없었다며 기뻐해주었다^^)


프랑크푸르트 공항으로 가는 버스를 엄마의 의견에 따라 아주 이른 것으로 예약하였다. 첫 트램 시간은 생각지 못하고... 7:40 버스를 예약했는데 버스역까지 가는 첫 트램이 7:20에 있었으며 택시도 잡히지 않아 아주 불안하게 그 버스를 잡았다. 그래도 감사하게, 무사히 잘 타고 공항으로 왔다. 비행기는 오후 3시 25분 것인데 무려 오전 9시 10분에 우리는 공항에 도착했다. 공항 스타벅스에 몇 시간째 신세를 지고 있다. 밀린 일기를 쓴다. 이제 여행의 처음부터 다시 일기를 읽어보아야겠다. 이제 가물가물 하면서도 그 첫날의 감동을 잊을 수는 없다.


공항에 너무 일찍와 스타벅스에 몇 시간 째 신세를 지고 있다.


그립던 유럽에 완전히 젖어서 간다. 다시 또 그리워지기를. 그래서 또 설레는 마음으로 올 수 있게. Gauthier가 이방인으로서 한국문화를 즐기는 것에 만족하기로 한 것처럼, 한 때 이곳에 완전히 속하고자 했던 나도 이젠 이방인으로서 이 문화를 즐기고자 하는 것일까.


오랜만에 통장 잔고를 확인한다. 흐음... (뒷말은 생략한다.)


엄마와 함께 한 우리만의 17박 18일 유럽 여행일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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