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거기서 거기이다
-철학자의 길에서

(17) 하이델베르크

by Lanie

한국으로 가기 위한 공항 안에서 마지막 하이델베르크 이야기를 일기로 쓰고 있다.


나는 지금 한국으로, 내 집으로 가는 것이 마치 다시 여행을 떠나는 것만큼이나 기쁘다. 내가 비로소 있어야 할 곳에서 나에게 주어진 일을 성실히 하고, '이방인을 반기는' 친구들이 주는 사랑에 비할 수 없을 만큼(물론 그들의 사랑도 위대하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는 곳. 진실로 기쁘다. 이제는 일상을 정말 잘 살아갈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렇다면 여행의 목적의 달성이 아닐까! 나는 돌아가기 위해 떠나왔다. 나의 현실을 더욱 사랑하며 더 충실하기 위해서. 이 약효가 오래갔으면 좋겠다.


마지막 2박 3일을 하이델베르크에서 보냈다. 하이텔베르크에서 묵기로 한 것도 좀 막판에 결정됐기 때문에 숙소를 가장 늦게 잡아 괜찮은 가격에 괜찮은 숙소를 잡기가 쉽지 않았고, 이미 다른 호텔들이 돈을 많이 쓰기도 하여 조금 저렴한 에어비앤비를 잡았다. 뚜벅이 여행자라면 반드시 중앙역 바로 근처에 숙소를 잡는 게 가장 현명한 일이라는 걸 너무나 뒤늦게 깨달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숙소를 중심과 조금 떨어진 곳에 잡음으로써 관광객들의 발길이 쉬이 닿지 않는 하이델베르크의 진짜 풍경까지도 감상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다른 숙소보다 50유로 정도 덜 내는 대신 그 대가로 고생을 해야 했다. 총 7명이 함께 쓰는 저택이었는데, 방은 넓고 나름 괜찮았지만 화장실이나 부엌은 공유해야 했다. 그러다 보니... 물이 안 빠져 배수구의 다른 사람의 머리카락을 빼내야 했고, 사용할 수 없을 정도로 더러운 냉장고에다가 캐리어를 갖고 가기에는 꽤 멀었다. 그 노동의 값이 1박에 50유로였다.


KakaoTalk_20230817_211905362.jpg
KakaoTalk_20230817_212010339.jpg
KakaoTalk_20230817_212011929.jpg
문제의 숙소 / 덕분에 본 관광지 밖의 풍경


하이델베르크에서부터 나의 에너지가 갑자기 훅 떨어진 것 같다고 엄마가 그랬다. 단지 밤잠은 버스에서 잤으며, 새벽 5시에 도착해 그때부터 활동을 시작했기 때문이라서가 아닌가? 요인을 더 찾자면, 이제 여행의 막바지라서? 2명의 친구를 더 만나기로 했다. 친구를 만나는 것도 이제는... 뭐랄까 똑같은 이야기를 반복하는 일로 생각되었다. 그동안의 나의 근황에 대해 친구를 만날 때마다 이야기하게 되니까. 정말 반갑고 또 이렇게 볼 수 있다는 게 놀랍지만 만남조차 과유불급인 건 사실이다. 그래도 좋은 일이다.


숙소 체크인 가능 시간이 최소 11시는 되어야 했기에 아침 5시부터 10시까지는 중앙역의 카페에 있어야 했다. 중앙역 안에 드러그스토어도 있어 쇼핑도 할 수 있어 좀 다행이었다. 이제 슬슬 선물 쇼핑도 해야 한다.


시간이 되어 숙소에 들어가 잠시 쉬고 점심 약속을 갔다. 고등학교 친구가 이 근처로 유학을 와 공부를 하고 있었다. 어쩔 땐 둘 다 한국에 있을 때는 생전 안 봐도 그렇게 외국에 있거나 하면 기회를 삼아 꼭 보게 되는 사람들도 있다. 점심을 먹고 철학자의 길을 산책했다.


철학자의 길을 걸으며 이런 대화를 나눴다. 독일인들이 나치즘에 빠진 건 그들의 철학을 너무 많이 해서이기도 하다고. 내적인 숭고함을 추구한다는 자신들의 우월성이 나치즘을 부추기는 데 일조했다. 인간은 내면을 추구하든, 외면을 추구하든 어쩌면 거기서 거기이다. 철학함으로써 겸허해지는 것 같으나 그 겸허함은 또 다른 우월성을 낳아 결국엔 '내가 낫다'라는 걸 끊임없이 합리화하며 살아가는 인간의 행태가 거기서 거기이기 때문이라는 얘기.


아리안 종족의 순수성, 독일국민의 숭고함과 내향적 지향성, 힘이 있는 아름다운, 질서정연한 행진, 숭고하게 느껴지는 권력의 표현 등을 내세우며 독일인들을 우민화 하였고, 키치로서 미화하였다. ...
... 독일은 어쩌면 한편으로는 투쟁의 경험과 정치적 의식이 결여된,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너무나도 지적이었고 정신적이었던 시인과 음악가, 사상가의 나라였기 때문에 선동과 테러에 취약했는지 모른다.
<알고도 몰랐던 독일 사람과 독일 이야기>, 이지은 中


KakaoTalk_20230817_212541733.jpg
KakaoTalk_20230817_211906596.jpg
KakaoTalk_20230817_211910912.jpg
슈니첼 맛집에서 고등학교 친구와 점심식사 / 철학자의 길


저녁에는 터키 친구 Saide와의 약속이었다. 이 친구도 한국의 우리 학교로 교환학생을 왔던 친구인데, 지금은 하이델베르크 근처에서 음악치료를 공부하고 있었다. 사실 Saide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줄 알았는데 바쁜 듯했다. 터키 음식으로 저녁을 먹고(오랜만에 쌀을 먹으니 좋았다.) 젤라또를 하나 먹고 만남을 마무리했다.


KakaoTalk_20230817_211913564.jpg
KakaoTalk_20230817_211912229.jpg
터키 친구와 저녁식사 / 역시 쌀은 맛있어.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