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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nie Sep 22. 2023

수능의 타당성과 입시 위주 교육에 대하여

IB & KB 교육과정 실제 개선방향 탐구 (2)

미국, 일본, 영국, 독일, 프랑스, IB와 우리나라의 고등학교 졸업 및 대입 시험을 비교해 봤을 때 서논술형이 아닌 선다형 객관식 시험을 시행하고 있는 나라는 오직 우리나라밖에 없다. 정답 찾기보다는 사고력이 더 중요하다고 외치던 시대를 넘어, 이제는 답을 하는 것 자체가 아니라 질문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외치고 있는데 우리의 수능 패러다임은 여전히 그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우리가 수능을 좋아라 하는 이유는 겉보기에 공정해 보이기 때문이다. 


최근 350만 명의 수강생을 보유한다는 수능 스타강사 이지영 선생님이 자신의 유튜브 채널 커뮤니티에 “수능을 공정하다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과 투표를 업로드한 적이 있다. 그러나 질문부터가 잘못되었다. 시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공정성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시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바로 타당성이다. 타당성은 측정하고자 하는 바로 “그것”을 측정하고 있느냐에 대한 문제이다. 타당성이 결여되는데 객관성이나 공정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순서가 맞지 않다. 


앞서 언급한 영국, 프랑스, 독일, IB 등에서는 대입시험이 전 과목 논술형으로 이루어진다. 우리는 이러한 시험에 대해서 2가지에 대해 지레 겁을 먹을 것 같다. 하나는 주관성에 대한 것, 다른 하나는 비용에 대한 것이다. 


주관성에 대하여, 이미 정범모(1993) 선생님께서 우리의 주관성에 대한 불신 자체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측정하고자 하는 대상이 인간의 능력, 행동, 특성 등이라면 주관성에 대한 평가는 주관적 방법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것이 대부분이다. 인간적 특성의 평가에서 주관성을 두려워하는 정도에 따라 타당도에서 멀어져 간다는 것이다. 게다가 객관식 시험이 ‘객관식’이라고는 하지만, 실상은 채점 방식만 객관적이지 출제 시 내용 선정 등은 결국 아주 주관적인 과정이다. 정말로 객관적이라면 한 학생이 시험을 볼 때마다 같은 점수가 나와야겠지만 그렇지 못하다. 객관식 시험도 궁극적으로는 주관적인 것이다. 우리는 주관적 방법에 따른 필연적 오차를 성숙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비용에 대하여, 배종근 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고 한다. “우리 교육의 문제의 하나는 돈 없이 교육을 해보자는 생각이 너무나 강하다는 것이다. 모든 교육을 돈 없이 혹은 싼 값으로 하려는 것이다. 선다형의 문제로 대학입시를 치르고 있는 것은 그 방법으로 고등 정신기능을 재는 데는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가장 단기간에 가장 싼 값으로 가장 객관적으로 해치울 수 있다는 것 때문에 그대로 강행되고 있다는 데에 큰 문제가 있다.”


수능의 시험 형태 자체도 문제지만, 이러한 시험의 형태가 초래하는, 그것을 준비해야 하는 방법도 심각한 문제이다. 현실적으로 고등학교 3학년까지의 교과과정을 시기에 맞게 차근차근 공부한 뒤 그것을 마무리하며 시험을 보는 사람은 없다. 고등학교 1, 2학년에 교과내용의 학습은 모두 마쳐놓고, 그것을 학교에서 해주지 않으면 사교육을 통해 끝내놓고 남은 1, 2년 간은 말 그대로 ‘문제풀이 연습’만을 강행한다. 시험문제 풀이란 단지 이미 배운 것을 되씹어 보는 일로 새로운 것의 학습은 아니다. 따라서 한국 학생들은 시험문제 풀이를 하고 있는 동안 실은 학습은 못하고 있는 것이다(정범모, 1993). 그러나 아예 공부를 시험문제 풀이 연습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교사, 부모, 학생이 많다. 


그나마 수능과 유사한 형태를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는 미국의 SAT의 경우, 그것을 응시하는 데에 있어 커다란 차이가 있다. 수능은 고등학교를 마무리하는 시점에 단 한 번의 기회가 주어지는 반면, SAT는 1년에 7회 시행되며 수험생들은 자신의 페이스에 맞추어 원하는 시기에, 원하는 횟수만큼 응시할 수 있다는 점이다. 원하는 점수를 얻은 뒤에는 AP 심화 과정 학습을 곧바로 시작할 수가 있다. 공부는 마쳐놓고 시험 볼 때까지 오로지 ‘시험 감각’ 유지를 위한 시간 낭비를 하지 않아도 된다. 


게다가 수능의 준비 과정이 대학에 입학하는 것 외에 인생에 도움이 되는 부분이 약하다. 수능시험에서 영어 1등급을 받아도 영어를 한 마디도 못하기도 하고, 수학문제를 모두 풀어도 미적분이 무엇인지, 그것을 왜 하고 있는 것인지 설명하지 못한다.


“이러한 교육 와중에 그래도 창의력이 있고 건전한 뜻과 사회성과 성격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은 학교교육 ‘덕분에’가 아니라 도리어 학교교육에도 ‘불구하고’ 어떤 다른 힘, 예컨대 사람이 본래 타고난 폭넓은 적응의 탄력성에 의해서 길러지고 스스로를 지탱해 온 사람들이 아닐까(정범모, 1993).” 하는 말이 나온다.




이러니 “입시 위주 교육”이라고 하면 부정적인 이미지가 떠오른다. 그러나 “입시 위주 교육”이라는 것은 말 그대로 봤을 때는 부정이나 긍정을 내포하는 말은 아니다. 입시 위주 교육은 “교-수-평-기 일체화”의 관점에서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교-수-평-기 일체화란, ‘교육과정-수업-평가-기술’의 일체화로, 교육과정, 설계, 수업, 평가 행위가 하나의 연속적 활동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의미이다(임영태, 2020). 어찌 보면 당연한 이야기일지 모르지만, 현실적으로 교육과정, 수업, 평가, 나아가 기록까지 일체화되지 않는 경우는 우리나라 교육 현장에서 빈번했다(이수룡, 김일두, 박민재, 2021). 이 개념은 2015 개정 교육과정으로의 전환과 함께 학교 현장에서의 새로운 교육과정 구현 방안, 즉 교육과정 정상화를 위한 하나의 방안으로 논의된 것으로, 이의 실현은 그간 여러 가지 이유로 분절적으로 운영되어 발생한 교육적 문제들을 극복할 것으로 기대되었다(임영태, 2020). 한편 이는 학교급이 높아질수록 실행이 적극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대학입시의 중요도가 큰 고등학교급에서는 여러 여건으로 수용이 어려웠다고 한다(박정호, 강신천, 정종인, 김창석, 김의정, 2022). 교육과정과 평가(입시)가 상이해서 나타난 문제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입시 위주 교육을 시행하는 것은 주어진 교육과정이나 교과서를 벗어나 오히려 교-수-평-기 일체화를 실천적 교육과정 차원에서 구현한 합리적인 교육이다. 


영국의 경우 중학교에 해당하는 5년제 Secondary 학교를 마치면서 GCSE(General Certificate of Secondary Education)라는 국가 수준의 인증 시험을 보고, 이 시험에서 일정 수준 이상의 결과를 보여야지만 고등학교에 해당하는 Sixthform에 진학하게 되고 Sixthform은 A-level 시험으로 마치게 되는데, A-level은 Sixthfrom의 졸업 시험이자 대학 입학시험으로, A-level 자체가 하나의 교육과정이자 시험이 된다. 그런데 이 A-level의 수업에서는 최종 시험 선택 과목이 되는 단 세 과목만 집중적으로 공부하게 된다. 다시 말해 Sixthfrom에서는 2년간 오로지 대입시험만을 준비하는 것이다(김천홍, 홍수진, 2018; 시가자 외, 2018).


IB의 경우, IB를 어렴풋이 알고 있는 사람 중에는 IB를 SAT와 같은 시험으로만 알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그 이유는 IBDP가 IB의 고등학교 교육과정이자 IBDP의 성적이 그대로 대입 성적이 되기 때문이다. IB 또한 평가 및 시험을 굉장히 중시한다. 평가를 중시한다는 것은 교육의 책무성을 중시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좋은 평가라면 평가 중심 교육, 평가 위주 교육도 결코 나쁜 것이 될 수 없다. 좋은 평가는 의미 있는 공부를 이끌기 때문이다. 일례로 IBDP에서 중요한 과목 중 하나인 ToK(지식론) 시험의 경우, 시험 몇 개월 전에 6개의 문제가 미리 공개되고, 그중 1개를 골라서 일주일에 한두 시간씩 있는 해당 수업 시간에 이에 대해 토론하면서 시험을 준비하게 된다. 그러니 수업 따로, 시험 준비 따로가 아닌 수업 자체가 시험 대비가 되는 것이다. 이로써 사교육을 할 필요가 사실상 줄어들게 된다(김나윤, 강유경, 2022; 이와사키구미코, 2020; 이혜정 외, 2019; 후쿠타세이지, 2019). 


IBDP를 채택하여 운영하는 대표적인 충청남도의 S고등학교 관계자는 해당 학교 설립 당시의 슬로건이 “입시 위주 교육의 탈피”였는데, 학교 운영을 정상화하다 보니 결국은 그 방식은 다를지라도 입시를 잘 준비하는 것으로, 즉 극과 극은 닿아 있는 것처럼 360도를 돌아 다시 회귀하였다고 이야기한 바 있다. 


수능이나 입시에 대하여 공정성 담론은 이제 넘어서서, 본질적으로 추구해야 할 것인 타당성을 정말로 심각하게 고려해야 한다. 타당한 시험의 형태와 그 방식에서 교육의 정상화가 이루어질 것이다. 



참고문헌

김나윤, 강유경(2020). 국제바칼로레아 IB가 답이다. 라온북.

김천홍, 홍수진(2018). 영국 대입제도 분석 및 시사점. 교육종합연구, 16(1), 65-94.

박정호, 강신천, 정종인, 김창석, 김의정(2022). 교육과정·수업·평가 일체화를 연계한 온라인 프로그래밍 교육 매체 개선 방안 연구. 한국컴퓨터교육학회 학술발표대회논문집, 26(2), 27-29.

이수룡, 김일두, 박민재. (2021). 초등교사의 사회과 교육과정-수업-평가-기록 일체화 실천 양상 탐색 - 교육과정 문해력을 중심으로 -. 교육논총, 41(1), 109-134.

이와사키구미코(2020). 국제 바칼로레아 도입과 실행. 교육을바꾸는사람들.

이혜정, 이범, 김진우, 박하식, 송재범, 하화주, 홍영일(2019). IB를 말한다. 창비교육.

임영태. (2020). 루브릭을 활용한 ‘교육과정-수업-평가-기술’ 일체화 초등 역사 수업 설계 방안. 사회과교육, 59(4), 83-96.

정범모. (1993). 입시와 교육개혁. 나남.

후쿠타세이지. (2019). 국제바칼로레아의 모든 것(왜 세계는 IB에 주목하는가). 21세기교육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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