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 좀 잘 써보려고 읽었다가, 삶 전체의 퀄리티를 높이게 해 준 책
이 책은 논문 쓰는 데 도움을 좀 받아볼까, 하여 읽었는데 삶 전체의 질을 올리는 데 도움이 된 책이다. 내가 이 책을 읽고 깨달은 점을 한 마디로 말하자면, 바로 지식노동자에게 있어 지식노동 외의 시간에 뇌를 어떻게 사용하는가를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것은, 운동선수로 하여금 식단관리를 하지 않는 것과 진배없다는 점이다. 즉, 특정 운동을 잘하기 위해서는 몸 전체를 잘 관리해야 하듯, 일하고 공부하는 시간을 잘 활용하기 위해서는 전체 시간에 뇌를 잘 관리해야지, 나머지 시간에는 뇌를 아무렇게나 쓰면서 특정 시간에 갑자기 집중하여 딥 워크에 돌입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내가 주어진 한정된 시간에 논문을 잘 쓰기 위해서는 나머지 시간-집안일하고, 육아하고, 이동하고, 놀고, 쉬고 하는 모든 시간 또한 딥하게, 퀄리티 있게 보내야 했다. 그러니 삶 전체의 퀄리티를 높이는 일이 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이고, 또 그 모든 시간을 퀄리티 있게 보내는 구체적인 방법은 무엇이며, 정말 분주하기 짝이 없어 보이는 나의 삶, 0살의 아기를 키우는 대학원생 엄마의 삶에도 적용과 실현이 가능할까?
먼저, 딥워크에 들어가기 전에 우리는 현재 우리가 시간을 어떻게 보내고 있는지를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즉,
정보통신기술의 발달로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편리한 삶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그것이 진정으로 좋은지는 좀 더 깊게 생각해보아야 한다. 여러 연구들은 인터넷의 발달로 인해 우리는 파편적이고 질 낮으며 자극적인 정보와 네트워크들로 인해 업무 시간과 휴식 시간을 모두 오히려 방해받게 되었다고 밝힌다. 즉, 업무 시간에도 일에 집중하지 못하고 있으며, 그 외의 시간에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일도 휴식도 그 질이 오히려 형편없이 낮아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네트워크 도구의 시대에 지식 노동자들은 자주 딴짓을 하면서 인간 네트워크 중계기처럼 끊임없이 이메일을 주고받으며 갈수록 딥 워크를 피상적 작업으로 대체해 간다. 그래서 새로운 사업 전략을 수립하거나 중요한 기획안을 작성하는 것처럼 깊이 생각해야 하는 더 큰 규모의 작업도 건성으로 처리하는 질 낮은 작업들로 파편화된다.... (p. 12)
"이 열여섯 시간 동안 그는 자유롭다. 더는 월급쟁이가 아니다. 돈벌이를 신경 쓸 필요가 없다. 그래서 자산가와 다를 바 없다." 따라서 이 시간을 귀족들처럼 엄격한 자기 계발, 베넷의 말에 따르면 주로 훌륭한 책과 시를 읽는 일에 할애해야 한다.... 베넷은 100년도 더 전에 이 글을 썼다.... 인터넷 그리고 그에 따라 저급한 주의를 토대로 삼는 경제가 부상하면서 일주일에 40시간을 일하는 일반적인 직장인, 특히 기술 제품을 잘 다루는 밀레니엄 세대에 속한 직장인들이 보내는 여가 시간의 질이 저하되었다. (p. 197)
100년 전 베넷은 이제 산업사회가 되어 하루에 8시간만 일하게 되면서, 각 개인은 나머지 16시간을 귀족처럼 살 수 있게 되었다고 하였다. 그러나 우리는 그 나머지 16시간을 어떻게 보내고 있는가? 퇴근 후 남은 시간을 SNS의 각종 자극적인 콘텐츠를 소비하며 보내지는 않는가?
위 문장을 쓰고 나서도 어떻게 연상이 됐는지 스마트폰을 들어 쇼핑 앱에 들어갔다가 꽤 긴 시간을 소비하고 나왔다... 갑자기 기저귀와 젖병세정제를 이제 사야 할 때가 된 것이 딱 생각이 난 것인데, 스마트폰 화면을 딱 여는 순간 그 외의 온갖 것을 탐험하게 되곤 한다. 간혹 그러다가 진짜 해야 할 것은 잊어버리는 적도 많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단순히 몇십 분을 빼앗긴 것만이 아니라 그 시간을 통해 나의 두뇌가 황폐해진다는 점이다. 이렇게 일상적 시간들을 산만하게 보내다 보면 본 업무를 수행할 때에도 몰입과 집중력이 점점 더 약화되고 산만한 정신상태로 임하게 된다는 것이 더욱 심각한 문제라는 것이다.
문제는 이 피상적 작업으로의 전환은 쉽게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이다. 산만한 정신상태를 오래 지속하면 딥 워크를 수행하는 능력이 영구적으로 약화된다. (p. 12)
딥 워크 능력의 약화는 일시적인 것이 아니다. 영구적이라는 점이 무섭다. 우리는 이메일을 확인하고, 메신저에 답하고, SNS를 훑어보는 일들이 그저 잠깐의 휴식이나 필요한 소통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런 산만함이 반복되면 두뇌 자체가 변화한다. 깊이 생각하는 능력, 복잡한 문제를 오랫동안 붙들고 씨름하는 능력이 점차 사라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딥워크가 가능한 두뇌를 유지하기 위한 방법은 무엇일까?
인간이 온갖 효율을 달성하기 위해서 이런저런 기술을 발전시키면서 간과한 것이 있다면, 바로 무료함의 가치일 것이다. 무료함을 견딘다는 것은 언뜻 보면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생각보다 우리는 무료함을 견디기 힘들어한다. 예를 들어, 버스나 지하철을 기다리는 10분 동안 스마트폰을 한 번도 보지 않을 자신이 있는가? 유튜브에서 접한 어느 실험에 따르면, 사람들을 두 집단으로 나누어 지루한 조건 집단과 통제 집단으로 나누고 전기충격기를 제공했을 때, 지루한 조건 집단의 전기충격기 가동률이 압도적으로 높게 나타났나고 한다. 다시 말해, 사람들은 심심함을 견디느니 스스로에게 고통을 준다는 것이다. 본능에 충실한 아기들이 조금만 심심하면 징징거리는 모습만 봐도 심심함, 지루함, 무료함을 견디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나스가 발견한 바에 따르면 두뇌가 즉각적인 산만함에 익숙해지면 집중하고 싶을 때도 중독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5분 동안 줄을 서거나 식당에서 친구를 기다릴 때처럼 무료함을 느끼는 모든 순간에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면 나스가 말한 "정신적으로 망가진 상태"로 두뇌가 바뀐다. 그에 따라 꾸준하게 집중할 시간을 정한다고 해도 딥 워크를 할 준비를 갖출 수 없다. (p. 152)
이전에는 딱히 대안이 없어서 사람들이 어쩔 수 없이 무료한 시간들을 견뎌야 했다면, 오늘날은 무료함을 억지로 훈련해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무료함 견디기 훈련'을 다른 말로 하면 '산만함에 의존하는 버릇 버리기 훈련'이다. 훈련 방법은 단순하다. 앞으로 일상에서 조금이라도 무료함을 느끼는 순간마다 스마트폰을 집어 들었다면, 이제 그러지 않는 것이다. 무료한 모든 순간을 무료함 그 자체로 두는 것이다.
강한 집중력을 기르려면 훈련이 필요하다....... 산만함에 의존하는 버릇을 버리지 않으면 집중력을 기르기가 어렵다. 운동선수들이 훈련 시간 외에도 몸을 관리하지 않으면 안 되듯이 나머지 시간에 조금만 무료해도 견디지 못하면 가장 깊은 수준의 집중에 이를 수 없다. (p. 151)
이렇게 생각하니 좀 더 이해가 잘 되었다. 조금이라도 무료할 때마다 바로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것은 운동선수들이 훈련 시간 외에 정크푸드를 몸속에 마구 집어넣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그러면 몸은 금방 망가지고 말 것이다. 운동에 유리한 몸이 유지되지 않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지식노동자가 딥 워크 외의 시간에 자신을 산만함에 내던지는 것은 두뇌를 망가뜨려서 딥 워크 수행을 어렵게 만드는 일인 것이다.
나는 그래서 이를 실천에 옮기기 위해 노력하기 시작했다. 가령 나는 양치할 때, 화장할 때 유튜브를 틀어 놓는 적이 많고, 좀 더 오랜 시간을 요하는 요리 및 설거지를 할 때는 넷플릭스를 틀어놓았고, 침대에 누워 잠이 드는 순간까지도 오디오북이라도 틀어 이어폰을 귀에 꽂아놓곤 했다. 그러면서 나는 나름 효율적으로 시간을 쓰는 사람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스스로를 돌아보니 그 행동들은 바로 내가 지루함을 견디지 못해 하는 행동들이었다.
몇 년 전, 직장에서 나보다 어려 보이는 직원이 화장실에서 양치를 하면서도 유튜브를 보는 것을 본 일이 있다. 그때까지만 해도 '양치를 하면서도 저런 걸 보네...'라고 속으로 생각하며 그 모습을 조금은 생경하게 여겼었는데, 몇 년 동안 세상도 나도 그런 행동이 좀 더 당연한 일이 되어버린 듯, 내가 바로 그 행동을 하고 있던 것이다. 그런데 나의 그런 행동은 내가 논문을 쓸 때의 집중력까지도 파괴하고 있을지 몰랐다. 왠지 시간이 낭비되는 것 같아도 그냥 양치하는 것 자체에, 화장하는 행위 자체에, 요리하는 것 자체에 집중하는 것이 논문 쓸 때는 논문 자체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하는 훈련이라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요즘 꼭 보고 싶은 콘텐츠가 있으면 그런 시간을 이용해서 보기도 하지만, 굳이 그 시간에 볼 콘텐츠를 찾지는 않는다.
이는 일전에 읽은 <기쁨공식>에서도, 또 교육학 글에서도 다룬 내용과도 일맥상통한다. (역시 진리는 하나로 통한다.) 사실 아래 글들에서는 어린 시절이나, 자라나는 학생들에게 삶의 여백이 필요하다는 내용으로 다루었는데, <딥 워크>에서는 무료함이나 여백이 꼭 성장기뿐 아니라 성인이 되어서도 마찬가지로 필요하다는 점을 알려준다.
https://brunch.co.kr/@lanie/340
https://brunch.co.kr/@lanie/178
이와 관련하여 최근 육아와 관련하여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는 내용도 생각났다. 요즘 영미권에서 유행하는 육아 표현이 있는데, 바로 "아이를 썩게 놔두세요(Let the child rot)"라는 표현이다. 현대 만연한 육아 패러다임의 특징 중 하나는 징징대는 아이들을 잠재우기 위해서, 그리고 부모들의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서, 또는 자극에 의한 뇌발달을 돕는다는 명목으로 아이들에게 끊임없이 자극과 프로그램을 제공하곤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로 인해 아이들로 하여금 무료함을 견디는 기술을 익히지 못하도록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교육자 및 학부모들이 점차 늘고 있다. 임의의 사람들과 대화를 나눌 줄 알고, 사람을 사귀고,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하는 기술들은 사실 무료한 시간을 보내면서 길러지는 기술들이었다는 것을, 우리는 그 기술을 모조리 잃어버리고 나서야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그러나 이 "아이를 썩게 놔두세요(Let the child rot)"라는 슬로건이 우리나라에서는 아직까지 대중적인 것 같지는 않다. 아기를 데리고 문화센터, 어린이집, 키즈카페, 동네 또래 친구집 등을 가보면 모든 곳이 너무나도 화려한 장난감과 온갖 산만한 자극이 넘쳐나는 게 눈에 보이며, 대부분의 엄마들도 교사들도 이에 딱히 경각심을 갖는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미권에서 시작되었다면 곧 우리나라에도 알려지겠지. 이런 유행이라면 더 빨리 전해져 오기를 바란다. 우선 나와 나의 아기부터 좀 썩어져야겠다.
https://www.youtube.com/watch?v=2FZw92IrEVQ&list=WL&index=39&t=14s
한편 나도 마찬가지지만 특히 젊은 세대에게 있어 그저 가만히 무료함을 견디며 썩히는 것은 쉽지 않다. 다행히 여기에는 양질의 대안이 있다. 우리의 무료한 시간을 우리의 두뇌를 망가뜨리지 않으면서 채워줄 수 있는 것에는 무엇이 있을까?
요컨대 오락용 사이트가 지닌 중독성 강한 인력을 제거하려면 두뇌에 양질의 대안을 제공해야 한다. (p. 201)
다음은 자연의 효과에 대해서 입증해 주는 실험이 소개되고 있는 구절이다. 주의 회복 이론(attention restoration theory)에 의해, 자연에서 시간을 보내고 나면 더욱 집중력과 성과가 향상된다는 것이다.
한 집단은 연구가 진행된 학교 캠퍼스 근처에 있는 수목원의 숲길을 걸었다. 다른 집단은 혼잡한 도심지를 걸었다. 뒤이어 두 집단은 역순으로 숫자를 외우는 실험을 치렀다. 실험 결과 숲길을 거닌 집단이 20퍼센트나 더 높은 성적을 기록했다.... 이 실험은 자연 속에서 시간을 보내면 집중력이 향상된다는 주의 회복 이론(attention restoration theory)을 뒷받침한다.... 집중하려면 이른바 지향성 있는 주의(directed attention)가 필요하다. (p. 140)
자연 속을 걸으면 마크 버먼이 석양을 예로 든 "본질적 매력을 지닌 자극제"에 노출된다. 이 자극제는 "주의를 약하게 끌어내서 초점 주의 기제(focused attention mechanism)를 재충전한다." 다시 말해서 자연 속을 걸을 때는 (횡단보도 건너기처럼) 신경 쓸 일이 거의 없어서 주의를 유도하지 않아도 되며, 흥미로운 자극제에 정신이 팔려서 적극적으로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없다. 이런 상태는 지향성 주의를 재충전할 시간을 준다. 그래서 50분 동안 숲길을 거닐며 재충전을 한 피실험자들의 집중력이 향상되었다. (p. 141)
나는 때마침, 최근 산동네(북한산자락에 위치한 강북구의 한 동네)로 이사를 왔다. 나는 이곳에 오기 전, 동네에 경사가 많다는 점에 걱정을 사실 많이 했는데 웬걸, 요즘에는 이 동네의 매력에 빠져들고 있다. 정말로 산에 둘러싸여 아파트 단지들 뒤편마다 등산길로 연결되는 그런 동네인데, 산길을 걸으며 맑은 공기를 마시고, 여느 때보다도 계절의 변화를 세심하게 목격하고 느낄 수 있는 것이 너무 좋은 것이었다. 산에는 정말로 사람도, 간판도 없어 자극은 없지만 길이 다이내믹하여 한 걸음 한 걸음에 집중하게 되는데, 맑은 산공기의 영향도 있겠지만 그렇게 걸음 자체에 집중하고 나면 머리가 몹시 맑아지는 게 느껴졌다. 특히 아침에 등산을 하게 되면 그 하루에 대한 자신감이 충만해졌다. 안 그래도 아침마다, 주말마다 산을 즐기며 이 몸과 마음이 건강해지는 감각을 즐기고 있었는데, 이 책을 읽고 그것이 내가 딥워크를 수행하는 데에도 좋은 영향을 줄 것이라고 알게 되니 더욱 좋은 일이 되었다.
주변에서 자연을 즐길 공간도, 여유도 없다고 해도 낙심할 필요는 없다. 다음 구절에서는 꼭 자연이 아니고서도 자연만큼이나 우리에게 정신적 휴식을 제공하는 "본질적 매력을 지닌 자극제"를 소개된다. 여기에는 친구와 담소 나누기, 음악 들으며 저녁 준비하기, 아이들과 놀기, 달리기 등이 예시로 등장한다. 비슷하게 저마다 즐기는 활동 중 이렇게 "본질적 매력을 지닌 자극제"에 해당된다고 생각되는 활동이 분명 있을 것이다.
우리의 논의와 관련하여 중요한 점은 주의 회복 이론을 적용하는 범위가 자연의 혜택을 넘어선다는 것이다. 이 이론의 핵심 기제는 휴식을 통해 주의를 기울이는 능력을 회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자연 속을 거니는 일은 이런 정신적 휴식을 제공한다. 비슷한 "본질적 매력을 지닌 자극제"를 접할 수 있고 지향성 주의를 소모할 필요가 없는 모든 여유로운 활동도 마찬가지이다. 가령 친구와 담소를 나누거나, 저녁 준비를 하는 동안 음악을 듣거나, 아이들과 놀거나, 달리기를 하는 등 일과 관련된 생각을 차단한 채 저녁 시간을 보내는 활동들은 자연 속을 거니는 것처럼 집중력을 회복시킨다.
나는 이 "본질적 매력을 지닌 자극제"라는 개념 자체가 매력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예시로 소개된 것들 중 "아이들과 놀기"는 현재 육아를 하는 상황에서 더욱 반가웠다. 집중력 있게 무언가를 하는 것은 육아와 살림을 하는 워킹맘에게 있어 가장 힘든 일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워킹맘들은 이 '딥 워크'라는 제목만 보고서 나와는 전혀 관련 없는 일이라고 넘겨버렸을지도 모르겠다. 초보 엄마 시절, 아기를 돌보면서 논문도 써야 하는 나는, 아기와 놀아줄 때 마음속으로 '아, 논문 써야 하는데...' 하는 생각이 맴돌곤 했다. 그러나 아기와 함께 노는 일이 오히려 나의 딥 워크를 훈련시켜 준다니! 그러니 나는 이 책을 읽고 공부뿐 아니라 아기도 더 잘 돌보게 되었다. 그러니 전체 삶의 질이 올라갈 수밖에. 요즘 나는 아기의 사랑스러운 모습을 집중해서 바라보며, "아, 나의 본질적 매력을 지닌 자극제!" 하고 감탄한다. ㅎㅎㅎ 예시에는 '저녁 준비하기'도 포함되어 있으니, 살림도 마찬가지이다.
그렇다면 이쯤에서 이런 질문이 등장할 수 있다. 아무리 아기와 놀아주고 저녁 준비하는 시간이 딥워크 수행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고 하더라도, 엄마에게는 딥워크에 할애할 수 있는 절대적인 시간이 부족하지 않느냐는 질문이다. 답은 그렇지 않다, 이다.
... 초심자는 하루에 한 시간 정도 집중하는 것이 한계인 반면 전문가는 그 시간을 최대 네 시간까지 늘릴 수 있다. (다만 그 이상 늘리는 경우는 드물다.) (p. 143)
딥 워크는 능력을 한계까지 밀어붙이기 때문에 힘들다. 성과심리학은 하루 동안 이런 노력을 얼마나 오래 유지할 수 있는지 폭넓은 연구들을 진행했다.... 그들은 계획적 수련을 처음 하는 경우 (가령 전문가 수준의 기술을 개발하는 초기 단계에 있는 아동들) 하루 한 시간이 적정한 한계라고 말했다. 반면 계획적 수련을 오래 한 경우 네 시간까지 한계를 늘릴 수 있다. 다만 그 이상 가는 경우는 드물다. (p. 207)
어차피 딥 워크는 최대한으로 수행해도 4시간이라고 한다. 이를 인간의 한계로 받아들여 절망할 수도 있겠지만, 시간이 부족한 사람에게는 오히려 희망적인 사항이 아닌가? 육아와 살림을 병행해야 하는 엄마들에게는 더더욱. 주어진 시간과 나의 두뇌를 잘 관리해서 집중 시간을 4시간까지만 확보할 수 있다면,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하루 8시간, 10시간이 주어지는 사람보다 뒤처질 이유가 없다는 얘기가 된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으로 인해 대부분의 현대인들이 많은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는 사실은 경쟁 사회에서 오히려 반가운 소식인지도 모른다. 우리에게는 육아도 해야 하고 살림도 해야 해서 시간이 부족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스마트폰이 있으니 조금 안심해도 되지 않을까. 다만, 우리는 육아와 살림을 해야 하니 스마트폰을 더더욱 주의해야 한다는 조건이 생긴다. 스마트폰만 치워 놓고 자신감을 가져보자.
공교롭게도 <딥 워크> 다음으로 읽은 책은 <하루 3시간 엄마 냄새>라는 책이었다. (이 책의 독후감도 추후 써야지.) 요점은 엄마가 아기에게 하루 최소 3시간을 온전히 내어줄 때 아이가 안정적으로 잘 자란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하루 4시간 집중해서 딥 워크를 수행하고, 3시간 집중해서 아이와 온전히 놀아주어도 아직 17시간이 남는다. 그중 8시간은 잠을 잔다고 해도 나머지 9시간이라면 충분히 밥 먹고, 각종 집안일을 하고, 씻고, 외출 준비하고, 이동하고, 책도 읽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단, 스마트폰만 조금 멀리한다면 말이다.
사실 이 4시간에 관한 것은, 이미 경험적으로 느끼고 있던 바이기도 하다. 혹자는 이 대목을 읽고도 '아니 그래도 해야 할 것이 얼마나 많은데, 하루 10시간도 부족하지, 어떻게 4시간만 일(공부)하고 나머지 시간을 편안히 보낼 수 있겠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나의 한계는 4시간이라는 것을 꽤 오래전부터 느끼고 있었다. 참고로, 이는 보통의 한국 십 대 학생들의 문제풀이식 공부에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연구, 논문 쓰기, 글쓰기와 같이 지적 창조물을 생산하는 수준의 일에 해당되는 사항이다. 즉, 외부 지식 습득 수준을 넘어 아직 세상에 없는 지식을 내면에서 끌어내는 활동에 딥워크가 수행되고, 또 필요하다. 나는 이것을 학부 졸업 논문을 쓸 때 처음 느꼈다. 출판도 인정도 안 되는 고작 학부 논문이지만, 그래도 기존까지 해본 시험공부나 발표준비 따위와 같은 작업을 할 때와는 다른 수준의 뇌 활동의 강도와 그만큼 빠른 소진을 분명히 경험했다. 두어 시간 몰입하고 나면 머리가 지끈지끈해져 마치 뇌의 작동이 멈춘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후 직장에서 일을 할 때도 오전의 서너 시간은 효율적인 업무가 가능했지만 오후시간은 버티기 힘들었다. 그렇다고 내가 일을 게으르게 한 것은 절대 아니었다. 나는 나름 업무 속도를 내는 편이라, 동료와 동일한 업무를 배정받고도 훨씬 더 빠르게 처리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친한 동료에게 "아, 나는 하루에 4시간만 일하는 게 꿈이야." 하고 입버릇처럼 말하기도 했다. 그러지 않아도 <나는 4시간만 일한다>라는 유명한 책도 있지 않은가? 사실 이 책은 아직 안 읽어보았지만(추후 읽어볼 계획이다.), 이 4시간에 관한 감각은 그 책의 존재를 알기 전부터 느끼고 있던 바였고, 따라서 나는 직장에서 나와 자유롭게 일하고 공부할 때에도 하루 4~5시간 이상은 굳이 스스로를 밀어붙이지 않았다. 물론, 이는 집중하고 몰입하여 '딥 워크'를 했을 때의 시간이지, 단순히 책상에 앉아있는 시간, 중간중간 딴짓도 하면서 설렁설렁 보내는 시간, 이메일 확인 및 발송, 단순 서류 작업과 같은 피상적인 업무 등에는 해당되지 않는다.
두뇌는 우리가 관심을 기울이는 대상을 토대로 세계관을 형성한다...
... 딥 워크에는 중요성에 대한 인식과 감각이 내재되어 있다.... 몰입 상태로 충분한 시간을 보내게 되면 우리의 정신이 세상을 의미와 중요성이 넘치는 곳으로 이해하게 된다고 말해준다.
일에 몰입하는 태도를 기르는 데는 숨겨져 있지만 중요한 다른 혜택이 있다. 몰입은 주의를 관장하는 기관을 장악하여 불가피하고도 끈질기게 우리의 삶을 찾아오는 사소하고 불쾌한 여러 일들을 인식하지 않도록 만든다. (pp. 78-80)
지금까지 딥 워크를 위한 4시간과 나머지 딥 워크를 위한 훈련을 위해서도 충분히 삶의 질을 높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위의 구절은 딥 워크의 더욱 본질적 혜택을 말해준다. 딥 워크는 단순히 생산성을 높이는 도구가 아니라 우리의 세계관이 형성되고, 삶의 의미를 만들어내는 방식에까지 영향을 준다. 사실 우리의 세상은 우리가 무엇에 주의를 기울이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그래서 니체도 "늘 자신을 보라. 바깥을 보면 분노할 것만 보이지만, 자신을 보면 바꿀 수 있는 것들이 보인다. 세상은 그렇게 나로부터 조금씩 나아지는 것이다."라고 말했나 보다. 니체와의 대화를 통해 쓴 책인 <한 번 사는 인생,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의 저자 김종원 작가도 책에서 환경과 상관없이 고마운 마음으로 살면, 모든 것이 사랑스럽고 감사하여 경기도, 입지도 별로 상관이 없다고 하였다.
정말로 그렇다. 파편적이고 자극적인 정보에 주의를 기울이면 세상은 혼란스럽고 의미 없는 곳으로 보인다. 반면 중요하고 의미 있는 일에 깊이 몰입하면 세상은 의미와 중요성이 넘치는 곳으로 보인다. 나는 가끔 그런 생각이 든다. 아름다운 자연을 감상하고, 한적한 거리를 걷고, 가족과 하하 호호 웃다 보면 '유튜브 피드만 보지 않는다면 세상은 참 평화롭다'라고 말이다. SNS를 하다 보면 남과 비교하게 되고, 부정적인 뉴스에 노출되며 쓸데없는(순간적으로는 쓸데 있어 보이고 내 삶에 영향을 줄 것 같지만, 조금만 더 깊게 생각하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걱정거리들이 머릿속을 가득 채운다. 그러나 중요한 일에 몰입하면 그런 것이 들어올 틈이 없게 되고, 그날만큼은 가능성과 자신감과 희망이 넘치게 된다. 따라서 딥워크는 오히려 사소하고 불쾌한 일들로부터 우리를 보호해 주는 것이다. 이는 딥 워크가 주는 부가적인 혜택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나는 사실상 이것이 가장 본질적인 혜택이라고 본다. 왜냐하면 사실상 인생이란 어떠한 큰 결과물보다 하루하루에 대한 감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무료한 시간보다 일하는 시간이 실제로는 더 즐기기 쉽다. 몰입 활동처럼 일에는 목표와 피드백, 과제가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모두는 일에 몰두하고 집중하여 무아지경에 빠지도록 한다. 반면 무료한 시간은 체계가 없어서 즐길 만한 대상으로 구체화하는 데 훨씬 많은 노력을 들여야 한다. (p. 84)
어쩌면 SNS와 스마트폰의 온갖 파편적 자극들은, 앞서 등장한 '무료함 견디기 실험'의 전기충격기와 같을지도 모른다. SNS나 부정적이고 자극적인 뉴스들은 당장은 자극을 제공하지만, 결과적으로는 박탈감, 분노, 걱정거리 등만 남게 된다. 마치 무료함을 견디는 것이 힘들어 차라리 스스로에게 고통을 주는 격인 것이다. 그래서 무료한 시간보다 일하는 시간이 사실 더 즐기기 쉽다는 말이 나온다. 무료할 때마다 스스로에게 고통을 주는 인간이니, 차라리 일 하는 게 나은 것이다.
"아닌데? 나는 무료한 시간을 즐길 수 있는데?"라고 한다면 축하드린다. 위 구절에서 무료한 시간을 즐길 수 있기 위해서는 훨씬 더 많은 노력을 들여야 한다고 했다. 나는 이를 신혼여행 셋째 날에 느꼈다. 아마 지금까지 살면서 진짜 "휴양" 여행은 신혼여행이 처음이었을 것이다. 결혼 준비로 매우 바쁘게 보냈으니, 진짜 푹 쉬어보자, 하고 숙소와 교통수단 외에 아무 계획도 예약도 없이 떠난 신혼여행이었고 정말 푹, 잘 쉴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겨우 셋째 날, '음... 오래 쉬는 것 또한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구나. 할 일이 없어도 시간을 보낼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하구나.'를 깨달은 것이었다. (그래서 아래 글에 그렇게 썼다.) 아마 무료함을 즐길 줄 안다면 꽤 경륜이 있는 사람일 것으로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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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를 키우는 대학원생 엄마로서, 나는 <딥 워크>를 읽고 나에게는 적용될 수 없는 전략이라고 절망하는 대신 오히려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게 되었다. 내가 하루 3시간 이상 아기가 놀고, 하루하루 자라나고, 수시로 엄마를 확인하다가 이내 한 번씩 안기는 사랑스러운 모습을 (논문 써야 한다는 생각은 접고) 집중해서 바라보고, 하루 최대 4시간만 집중해서 글과 논문을 쓰고, 산동네의 장점까지도 영위하면서 사는 것이 옳은 삶이라는 증명 해주었기 때문이다. 죄책감 대신 자신감이, 조급함 대신 여유가 생겼다. 그리고 운동선수가 24시간 외에 몸을 관리하듯, 지식노동자로서 24시간 두뇌를 관리해야 할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몇 달 전 나의 인스타그램 계정이 해킹당한 후 해결하지 못해서 인스타그램을 자의 반(차라리 잘 되었다고 생각하고 새로운 계정을 만들지도 않았으니) 타의 반으로 끊게 되었는데, 나는 이 일에 대해 신께 감사드린다. 그리고 이 책을 읽은 후 전화를 제외한 휴대폰의 모든 어플의 알람을 꺼놓았다. 그런데 유튜브와 쇼핑 앱은 아직도 조금 문제이다.
첨언하여 SNS, 스마트폰의 위험성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 보니 이 책에서는 특별히 언급되지는 않았지만 그중에서도 '온라인 쇼핑'에 대해 든 생각이 있다. 물건을 사기 위해 인터넷상에서 이 페이지 저 페이지를 탐색하는 것보다 그냥 한 번 나갔다 오는 게 차라리 더 빠르거나, 시간이 조금은 더 걸려도 뇌에는 더 낫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다. 온라인 쇼핑은 분명 편리성이 있지만 이상하게도 뭘 고를 생각을 하면 더 머리가 아파오곤 하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직관적으로 눈으로 보고 고르는 게 아닌 온갖 그림과 문자를 통해 예측하여 선택해야 해서 그런 것 같다. 게다가 선택지도 너무 많아 결코 그 속에서 시간도 적게 소비하지 않게 된다. 어쩌면 온라인 속 쇼핑몰은 공간만 차지하지 않을 뿐, 그것을 물리적으로 모아놓는다면 모든 작품을 다 보려면 몇 주가 걸린다는 루브르박물관보다도 더 크지 않을까. 실제로 온라인 쇼핑에서의 선택과부하에 의한 인지 부담에 대한 연구들도 있는 것 같다. 책에 나온 내용은 아니지만 왠지 온라인쇼핑보다는 시간도 들고 최저가도 아닐지라도 필요한 것은 직접 나가서 사 갖고 오는 것이 딥워크를 수행하는 데에 더 유리할 것 같다. 다음 무의식과 관련된 구절은 이에 대한 유추에 도움이 된다.
네덜란드 심리학자인 아프 데이크스테르하우스가 이끄는 연구 팀은 일부 결정을 무의식에 맡기는 편이 낫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일에 나섰다. 다시 말해서 결정을 내리려고 적극적으로 애쓰는 것이 관련된 정보를 접한 다음 무의식이 작동하는 동안 다른 일로 넘어가는 것보다 나쁜 결과로 이어진다.
엄격한 규칙을 적용해야 하는 고차원적 결정에는 의식이 개입해야 한다.... 반면 대량의 정보와 모호하며, 심지어는 상충하는 복수의 제약을 수반하는 결정에는 무의식이 적합하다. 그 이유는 무의식을 담당하는 두뇌 부위가 더 넓은 대역폭을 지녀서 의식을 담당하는 두뇌 부위보다 더 많은 정보를 처리하고, 더 많은 잠재적 해결책을 살필 수 있기 때문이다...
.... 의식에 쉴 시간을 주면 무의식이 교대하여 대단히 복잡한 문제들을 처리한다는 것이다. (pp. 139-140)
즉, 왠지 2차원으로 정보를 습득해야 하는 온라인 쇼핑에는 의식이, 오감을 활용해 선택과 판단을 할 수 있는 오프라인 쇼핑에는 무의식이 더 강하게 작용할 것 같다. 무의식과 의식을 교대하며 사용하는 것이 좋은데, 복잡 다난한 일상생활에서 쇼핑이라는 항목은 의식보다는 무의식이 맡기는 편이 전체 삶의 질을 위해, 우리의 딥 워크를 위해서는 더 낫지 않을까?
(말이 길어졌다. )
이 책을 읽고 나는 일상에서 구체적으로 실천하게 된 몇 가지가 있다.
첫째, 양치할 때, 화장할 때, 요리할 때 등 지루하다고 여긴 시간들에 유튜브 시청하지 않기
둘째, 산동네의 장점을 활용하여 등산과 산길 산책 더욱 적극적으로 즐기기
셋째, 아기와 함께하는 시간에 더욱 아기에게 집중하기
넷째, 전화 외 스마트폰의 모든 알람 끄기
다섯째, 하루 딥 워크의 시간 측정하기(원칙 3. 딥 워크에 들인 시간을 눈으로 확인하라. (p. 134))
이 실천들은 꼭 딥워크를 위해서가 아니라, 삶 자체를 만족스럽고, 평온하며, 모든 순간을 더욱 질적으로 깊게 영위하게 해주는 실천들이다.
내가 이들을 곧바로 실천할 수 있는 이유는, 내가 마치 착한 어린이처럼 책에 쓰여있다고 해서 그 말을 잘 듣기 때문이 아니다. 책의 구절들이 하나하나 공감되고, 이미 내가 언어로서는 미처 표현하지 못하고 있었더라도 이미 직감적으로 체감하고 있던 바들이기 때문이다. 책의 구절들은 그 지점들을 더욱 명확하게 증명해 줄 뿐이고, 그 증명은 실천을 용이하게 해 준다. 왜냐하면 확신은 실행을 쉽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물론 책의 초반에는 딥워크를 수행한 이들의 예시를 들며, 시골에 오두막이라도 따로 빌려 은둔하면서, 혹은 딥워크의 완벽한 조건을 지닌 고급 호텔방을 빌려 딥워크를 수행한 예시도 등장한다. 그러면서 딥워크는 시간과 비용이 드는 일이라고 하기도 한다. 그러나 우선은 현시점에서 적용 가능한 지점만에 주목했다. 물론 환경이 허락한다면 그러한 종류의 딥워크도 추후에 해보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다. 나의 아기가 다 자라 더 이상 나의 돌봄을 필요로 하지 않고, 남편과는 함께 한 세월도 너무 길어 좀 떨어져 있고 싶을 때쯤? 너무 오래 살까 봐 걱정해야 하는 수명 연장 시대인만큼 언젠가는 분명 그러한 딥워크를 해볼 기회도 생기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