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때부터 독일어를 배우며 독일어 선생님들의 독일에 대한 이야기들을 들어왔고 또 학부시절에는 독일 대학교에 교환학생으로 다녀왔기에 그래도 독일 교육에 대해서는 다른 나라들보다 들은 바가 많았다. 독일 교육에만 관심이 있었을 때는 잘 몰랐지만 핀란드, 스웨덴, 영국의 교육을 살펴보고 다시 독일의 교육을 보니, 우리나라를 기준으로 보았을 때 독일은 그 어느 곳보다도 다른 곳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교육은 크게 보편교육과 진로교육으로 나눌 수 있고, 언제까지 보편교육을 받도록 하고 언제부터 진로교육에 투입시키는가는 각국의 교육을 크게 특징짓는다. 우리나라 교육의 특징은 대학 갈 때까지 진로선택을 미룰 수 있다는 점이다. 이는 (이론적으로) 진로 고민의 시간을 길게 가질 수 있다는 장점을 갖는 동시에 많은 아이들에게 희망고문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스웨덴과 영국은 중학교를 마치고 후기중등교육, 즉 고등학교과정을 시작하면서 진로계열을 정하도록 한다. 그리고 독일은 그 어느 국가보다도 가장 이른 시기인 나이로 보면 11세, 즉 초등학교 4학년의 나이에 이를 결정하도록 한다. 이때부터 대학 진학을 준비하는 김나지움(Gymnasium), 좀 더 실무교육을 받는 레알슐레(Realschule), 그리고 완전히 직업교육이 이루어지는 하웁트슐레(Hauptschule)로 나뉘게 된다. 이는 매우 현실적인 교육 시스템으로 평가받는 반면 아직 잠재력이 발휘되지 않은 어린 아이의 기회를 일찍이 제한해버리는 잔인한 시스템으로 문제시된다.
조기 진로 설정이 가능하게 하기 위해 독일의 초등학교에서는 4년간 담임교사가 바뀌지 않는다. 한 명의 교사가 담당 학생을 쭉 관찰하고 그 결과에 따라 어떤 학교에 가도록 할지를 제안한다. 교사가 전문성을 발휘하여 아이의 개성과 재능을 잘 판단하여 진로를 제안해주는 이상적인 시스템으로 보이지만 결과적으로는 부모의 사회적 계층을 그대로 따라가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또한 이는 사회의 피라미드 구조를 안정적으로 유지시키는 데에 기여하고 개인의 시간뿐만 아니라 국가 재정의 낭비를 최소화하는 효율적인 시스템이다. 우리나라의 희망고문식 교육에 반해 독일식 교육은 가장 현실적이라고 볼 수 있다.
교육에 대해 논의할 때 흔히 교육은 계층이동의 사다리로서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는 주장이 우세하다. 부모가 가진 것에 상관없이 재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회계층구조의 유지는 과연 사회악이고 무너뜨려야 할 적폐인가? 권력을 부당하게 이용해 계층을 유지하는 것은 분명 잘못된 것이지만 가정에서 주어지는 문화자본에 의한 학습, 자연스러운 학습환경 등으로 인해 발생하는 차이는 어떻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가정의 경제적, 문화적 자본으로 뛰어난 기량을 발휘할 수 있는 인재들을 평등이나 공정이라는 명목 하에 학교교육을 수단 삼아 끌어내려 국가 전체를 하향평준화 시켜서도 안 될 것이다.
PISA 2000에서 독일 15세 학생들의 수학, 과학, 읽기 능력이 매우 저조하게 나왔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지만 그뿐 아니라 부모의 사회경제적 배경에 따른 학업성취도의 차이 또한 어느 나라보다도 크게 나타났다고 한다. 이는 독일의 학교교육이 부모의 배경과 관계없이 개개인의 재능을 발휘하게 하는 역할을 충분히 하지 못한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지만, 사실상 가정에서의 계층 이동의 의지가 없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위 계층, 노동자 계급의 부모가 그들의 삶에 충분히 만족해서, 나의 자녀들은 반드시 나와는 다른 삶을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은 아닐까? 우리가 밖에서 차별로 바라보는 것이 그들은 내부에서 차이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독일 교육의 특징으로 거론되곤 하는 홈스쿨링 금지법, 선행학습 금지법, 세계 최초의 공교육 제도 수립 등을 보면 독일은 학교교육의 중요성을 매우 잘 인지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동시에 학교교육의 한계도 분명히 인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독일에서는 전일제학교가 당연한 개념이 아니었는데 2000년대에 들어 전일제학교에 대한 요구가 생기기 시작했을 때 이에 대한 반대 근거들을 살펴보면 그렇다.
학교에 너무 오래 체류하게 되면 아이들의 생체리듬이 무시되어 아이들이 공격적이어 진다는 점, 학생들이 학교에서 제공하는 것과 다른 학생들의 결정에 의존하게 되어 자기주도성이 감소한다는 점, 학교 밖의 자유시간이 제한됨으로써 개성이 상실된다는 점, 학업성취가 낮은 학생들이 보살핌을 받는 동안 스스로 학습할 수 있는 학생들에게는 공허한 시간이 된다는 점이 정규학교 전일제화의 반대 근거 중 일부로 제시되었다. 이를 보면 독일은 "학교" 자체가 교육의 전부가 아님을, 오히려 반교육적인 영향을 줄 수도 있음을 인지하고 있다. 그러면서 전일제학교는 부모로 하여금 자녀의 교육보다 직업 활동에만 가치를 두게 하며 가정에서 보다 훌륭한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경우에 그것을 제한한다는 점도 반대 이유로 꼽았다. 학교의 한계를 인식하는 만큼 가정의 중요성도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인간의 생애에서 출세보다는 가정으로부터의 연결성과 안정감이 더 큰 행복감을 가져다줄지도 모른다. 아이가 태어났을 때 아이에게 부모는 자연적으로 절대자와 같은 존재이고 부모로부터 많은 것을 배우고 모방하고자 할 것이다. 그런데 학교교육을 논하다보면 그 영향을 쉬이 부정적인 것으로 간주하고 학교교육은 이를 타파시키는 역할로 보게 되는 것 같기도 하다.
어느 사회이든지 문제점은 존재하고,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그 문제에 대한 개혁 의지도 있다. 그리고 그 개혁은, 사람들의 삶이 불안하면 보다 움직이기 쉬울 것이고 이미 안정적이라면 움직이기 쉽지 않을 것이다. 영국은 정부가 강력하게 드라이브를 걸고 교육개혁 정책에 따라가고 있지만 독일은 그렇게 되지 않는 구조가 있다고 한다. 현재 독일 정치경제상황은 꽤 안정권인 것으로 보인다. 메르켈 총리는 무려 16년의 집권 후 80% 이상의 국민들의 지지를 받고 있고, 독일 경제의 최근 10년(2010~2020년)은 '황금의 10년'이라고 불리는 부흥의 시기였다. 다른 한편 독일은 유명한 철학의 나라, 사유의 나라기도 하다. 철학이란 이렇게 하기로 선택했을 때, 발생하는 문제가 분명히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해야만 하는 타당한 이유를 설명할 수 있는 근거라고 생각한다. 크고 작은 목소리와 움직임 속에서도 독일 교육의 큰 골자가 흔들리지 않는 것은 이러한 뿌리 깊은 철학, 훌륭한 정치, 안정된 경제에 기인하는 게 아닐까 싶다.
그래서인지 독일은 외부의 잣대에도 크게 요지부동하지 않는다. PISA 2000의 결과는 독일 교육에 충격을 주고 그로 인해 많은 움직임이 시작된 것은 사실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독일인들은 15세 학생들의 수학, 과학, 읽기 성취도가 모든 것을 보여주지 않는다는 것도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독일의 교육방식 중 또 유명한 것이 처음에는 굉장히 느리지만 그걸 기다려줌으로써 자신만의 방법으로 효율적인 학습이 나중에 폭발적으로 이루어지도록 한다는 것이다. 즉 고기를 잡아다주지 않고 고기 잡는 법을 터득하게 하는데 스스로 고기 잡는 법을 한 번 터득하면 그 후로는 누구보다도 고기를 잘 잡게 된다. 그러나 고기 잡는 법을 터득하게 하는 것보다 잡아다주는 것이 훨씬 빠르다. PISA 테스트는 어린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기에 누구의 점수가 높게 나올지는 쉽게 상상할 수 있다. 독일 수학교육에서 두 자리 수 이상을 계산할 때 세로식으로 푸는 법을 절대로 알려주지 말도록 한국 부모들에게 주의를 주곤 한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우리나라 15세 학생들의 성취도는 훨씬 뛰어나지만 독일의 노벨상 수상자가 총 102명인 데에 반해 우리나라는 고작 1명에 불과하다.
그렇다고 독일 교육이 고집을 부리며 정체하고 있는 것만은 아니다. 하웁트슐레, 레알슐레, 김나지움을 통합하는 종합학교에 대한 논의가 나왔고, 그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였다. 급한 전면 개혁이 아니라, 일부 인정을 해주고, 천천히 지켜보고자 하는 식으로 기존 3가지 학교에 종합학교를 더해 4가지 학교 체제로 운영하고 있다. 종합학교 논의가 처음 나온 것은 1960년대 초였고, 계속되는 논의 끝에 1969년 비로소 종합학교 설치가 가능해졌으며 거의 10년 이상의 시험기간을 거쳐 1982년 종합학교도 시험학교가 아닌 정규학교의 지위를 획득하게 되었다. 그리고 기존의 세 학교는 현재까지도 지속되고 있다. 정책은 그 속도보다 방향이 중요하다고 하는데, 독일의 종합학교 정책은 방향보다 속도에 눈이 간다. 무엇보다 한 가지 문제가 제기됨에 따라 다른 문제를 살피지 못하고 충분한 논의 없이 정치적 성과를 위해 정책을 섣불리 진행시켜버리는 것이나, 2~3년의 시범학교, 연구학교 운영으로 교육의 결과를 결론짓는 일은 지양해야 할 것이다.
독일의 교육은 그 어디보다도 우리나라와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어, 도대체 독일이 어떤 나라인지 즉, 어떤 철학이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는지가 더욱 궁금해지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앞으로의 교육은 우리나라만의 고유한 정체성을 인식하는 것, 그리고 어떻게 나아가는 것이 마땅한지에 대한 철학에 근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희망고문식의 이 시스템을 고수한다면, 이 방향을 선택했을 때 이렇고 이런 문제가 발생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스템을 고수해야하는 이유를 우리 사회와 민족의 개성과, 우리의 철학을 통해 누구나 이해하고 설명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독일은 나에게 특별한 나라이다. 교환학생으로 1년간 지내는 동안 독일인들은 정말 순수하고 따뜻했으며 어디서든지 인격적으로 존중받았다. 외국인으로서 겪는 행정 절차들도 참 간편했다. 외국인은 한 사회에서 주류가 아닌데, 독일은 이방인으로 살아도 참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게 한 나라였다. 개인의 여가나 휴식에 대한 진정한 존중도 처음으로 느껴보았고 인간다운 삶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보게 했다. 대학 졸업 후 우리나라에 과연 내가 설 자리가 있을까, 싶었을 때 나를 받아줄 것 같았던 사회이기도 하다. 학문적 접근으로 객관적인 자료에 근거한 건조한 해석이 중요하겠지만 개인적 경험들로 인해 아무래도 독일 교육은 좋게 해석되는 것 같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