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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nie Jan 21. 2022

영국 교육에서 찾은 ‘솔직함’과 ‘책임-신뢰’

   영국의 교육을 공부하면서 인상 깊었던 것이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굉장히 현실적인 교육이라는 것, 둘째는 교육에 관련된 개별 기관들이 책임과 신뢰의 관계가 탄탄하게 구축되어 있다는 점이다.      


  영국의 중등 교육의 학제는 5-2년제인데  ‘Sixth form’이라고 불리는 마지막 2년의 후기 중등교육 과정에 모든 학생들이 진학하는 것이 아니다. 5년제 Secondary 학교를 마치면서 GCSE(General Certificate of Secondary Education)라는 국가 수준의 인증 시험을 보고, 이 시험에서 일정 수준 이상의 결과를 보여야지만 Sixthform에 진학하게 된다. Sixthform은  GCE A-level 시험으로 마치게 된다. A-level은 Sixthform의 졸업 시험이기도 하면서 대학 입시에 쓰이는 성적으로 A-level 자체가 하나의 교육과정이기도 하고 시험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A-level에서는 시험 선택 과목인 단 세 과목만 집중적으로 공부하게 된다. 즉, Sixthform은 2년동안 오로지 대입 시험을 준비하는 시간인 것이다. 쉽게 우리나라에 비추어 이야기해보자면, 중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을 갈 만한 아이들만 고등학교 진학 기회를 준 뒤 고등학교에서는 수능 준비만을 하는 것이다.      

   A-level 2년차에는 UCAS(Universities and Colleges Application System)의 도움을 받아 대학 입시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된다. UCAS는 원서접수 대행을 도와주는 대학들의 플랫폼일 뿐만 아니라 학생들에게 실질적인 진학 지도 관련 서비스를 제공하기도 한다. UCAS에서의 자기 테스트를 통해 적합한 진로 및 학과를 제안받은 학생들은 그에 이어 무조건 그 학과에 진학해야한다기보다는 실질적인 유의 사항을 안내받게 된다. 해당 학과의 수업 스타일이나 성적 부여 방식도 유의하도록 하며, 일부 진로에 대해서는 굳이 그 학과를 갈 필요가 있는 것은 아니므로 고려하도록 한다. 그리고 그 전공이 소수의 대학에서만 할 수 있는 것인지도 생각해보도록 한다. 수업 내용도 중요하지만, 그 내용을 다루는 방식이 자신이 즐기며 잘 할 수 있는 방식인지도 중요하다는 것이다. 책 읽는 것을 좋아하는 내성적인 학생이 세미나 수업이 주를 이루는 하는 학과에 가서 주구장창 발표하고 토론해야 해야 한다면, 배우는 내용이 아무리 관심 분야라도 쉽진 않을 것이다. 그리고 어떤 분야는 관련 학위가 필수는 아니므로 꼭 진로와 관련된 전공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그리고 아무리 잘 맞는 분야일지라도 수요에 비해 이미 공급이 너무 많이 분야라면 지양하도록 하는 것도 꽤 현실적인 조언들이다.      

   이상 종합해보면, 영국의 교육은 무작정 ‘너의 꿈을 펼쳐라’라고 하지 않는다. 공부에 재능이 없다면 굳이 하지 않도록 하고, 꿈이 있더라도 실현가능성을 염두에 두도록 한다. 그리고 학생 때의 인생을 미래를 위해 희생하도록 하지도 않는다. 단정 지을 수도 없고 시대도 조금 변했을 수는 있지만, 적어도 나는 공부는 노력하면 된다고 배웠고, 성인이 되었을 때 잘 살려면 학생 때는 많은 것을 참고 견뎌야 하는 줄 알았다. 어린 나이에 기회를 제한하는 해외의 교육 사례는 잔인한 제도로 여겨지기도 하지만 우리나라의 일반 고등학교의 장면에서 교육과정을 따라오지 못해 책상에서 잠을 자며 시간을 낭비하는 아이들에 대한 고민이 반드시 필요할 것이다.     

  나는 임용고시를 1년간 준비하고 실패한 경험이 있는데 1:10의 경쟁률(그나마 낮았던 해이자 전공이고, 당시 사립학교 채용은 135:1까지 경험해봤다.), 즉 정당한 자격을 가진 90%의 학생들이 탈락하는 구조였다. 대학 학과를 선택할 때 “현 시점에 교원 임용은 수요와 공급이 매우 안 맞는 시장인 것을 고려해 보아라.”라고 아무도 이야기해주지 않았다. 다만 사범대의 특정 전공교육과의 입결이 그나마 낮으므로 조금이라도 좋은 대학에 가고 싶으면 그 전공의 교육과를 지원하도록 지도받았던 거 같다. 물론 나도 대학 이후는 아직 모르겠고, 일단은 대학에 들어가야 한다는 것에 급급했다. 그리고 내가 졸업하고 일 년 후, 전국적으로 사범대 및 교육대학원에 대한 3200명 규모의 정원 감축이 시행되었다(장지훈, 2021). 그리고 이 정원 감축은 당분간 매해 지속될 것이다.     


   그렇다면 앞서 언급한 A-level 시험이라든지 대입에 대해 현실적 조언을 해주는 UCAS라는 기관은 누가 운영하는 것일까? 영국 정부? 적어도 A-level 시험은 당연히 영국 정부에서 일괄적으로 운영하는 줄 알았다. 놀랍게도 A-level 시험은 영국자격시험감독청(Ofqual; Office of the Regulators of Qualifications)의 인증을 받은 여러 외부 평가기관에서 출제 및 평가를 진행한다. 대표적인 평가기관에는 AQA, OCR, Edexcel, WJEC, CCCEA가 있으며 각 기관별로 관장하는 과목들은 상이하다(강태중 외, 2013; 김순남 외, 2014; 김천홍, 홍수진, 2018에서 재인용).     


   A-level의 성적 결과가 오랜 기관 대입에 직접적으로 활용되고 있는 것을 보면 각 민간 기관들에 대한 사회적 신뢰도가 매우 높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실지로 각 기관은 하나의 검사지를 개발하기 위해 18개월 이상의 시간을 소요하고, 평가 기획, 개발, 채점의 각 과정 마다 개별 분야의 전문가들이 투입된다(시기자 외, 2018). 수능의 경우 한 달 만에 문제를 출제하고 문제의 예측가능성을 줄이기 위해 출제진 중 30%는 한 번도 수능을 출제한 적이 없는 사람으로 구성한다고 하는데 난이도 맞추는 데에 매년 실패하는 것은 당연한 일인 듯하다. 전체 객관식 시험으로 채점은 OMR스캐너가 할 것이기에 채점 전문가는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전문 기관이 하는 것과 국가의 예산으로 하는 것은 그 차이가 클 것인데, 과연 시험의 전문성을 도모하기 위해 출제를 민간 기업에 맡긴다면 우리는 그 시험을 신뢰할 수 있을까?     


   UCAS는 민간 비영리 기관이다. 우리나라에 UCAS와 비슷한 기관으로는 한국대학교육협의회(이하 대교협)가 있다. 대교협은 대입 업무를 포함하여 대학 관련 제반 업무를 담당한다. UCAS는 원서접수 대행 사업을 진행하면서 학생들과 대학들에 수수료를 받아 운영되고 대교협은 회원 대학들의 회비와 교육부 위탁 사업들에 대한 정부의 보조금으로 운영된다. 사용자 입장에서 수수료를 지불하는 것은 내가 직접적으로 받는 서비스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는 것이다. 반면 회비는 서비스를 받기 전에 지불하는 것으로, 비용을 지불하는 입장에서는 과연 응당한 비용인지에 대한 의심이 들게 되고, 비용을 받는 입장에서는 비용을 지불한 대상의 목소리를 (그것이 좋은지 나쁜지 판단하기도 전에) 들어주어야 하는 입장이 된다. 수익을 낼 수 있는 원서 접수 대행 사업은 대교협의 관할 하에서 IT기업이라고 할 수 있는 유웨이와 진학사가 담당하여 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자체 수익을 내는 UCAS는 사용자(학생) 중심의 제공하는 훌륭한 서비스로 평가 받고 있고 대교협은 대학들과 국가의 눈치를 보느라 진짜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감시 받는 상황에서 공부나 업무를 해 본 사람은 이해할 것이다. 눈치를 보면서 하는 척만 하거나 눈에 보이는 결과물을 만들어내게 되고, 사실상 집중이 잘 안 된다는 것을 말이다.     


   민간 기업은 사회를 위하는 사업을 하고, 국민들과 정부는 민간 기업을 신뢰하는 상호 책임과 신뢰 관계에서 영국식 자유주의가 실현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민간 기업이 할 때 보다 더 전문성과 실효성이 있게 운영될 수 있는 사업들이 분명히 존재한다. 물론 책임과 신뢰라는 밑바탕이 먼저 탄탄하게 깔려 있어야 할 것이다.


참고자료

김천홍, 홍수진(2018). 영국 대입제도 분석 및 시사점. 교육종합연구, 16:1, 65-94.

시기자 외(2018). 세계 각국의 대학입시제도 연구.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장지훈(2021). 부경대 교육대학원 등 4곳 폐지…한국외대 사범대 '정원감축'. 뉴스1코리아. 2021.02.22. 기사     

참고사이트

주영한국교육원. http://www.koreaneducentreinuk.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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