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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교육에서의 인성교육

by Lanie

2016년 교육학과 학부시절 작성한 글입니다. 당시 3페이지짜리 학술레포트을 쓰는 과제였는데 저 혼자 에세이 형식으로 제출했고, 제 글을 보신 교수님은 "이 친구는 말은 못해도 글은 잘 쓴다."라고 하셨습니다. 그간 교수님 질문에 얼마나 멍청하게 대답을 했던 걸까요? 그래도 이 때를 계기로 에세이를 쓰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될 수 있겠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던 거 같습니다. 고로, 교수님 감사합니다. 그리고 이 글에 등장하시는 저의 귀감이 되어주신 모든 선생님들, 감사합니다.




나는 나의 국어선생님으로 인해 건강한 인격체로 성장했다.


중학교 체육시간, 학생들은 45분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운동장을 서성인다. 풀꽃을 가만히 바라보기도 하고 신문지 한 장을 깔고 누워 하늘을 바라보다 잠이 들기도 한다. 이 수업 이름은 자연과 대화하기, 한 시간은 연습을 하고 한 시간은 실전에 들어간다. 수업이 끝나고 소감문을 써서 제출하는 것이 수행평가이다. 결국 이 침묵의 시간을 얼마나 가치 있게 보냈는가가 평가의 기준이다. 이 시간을 통해 학생들은 쉼과 여유를 배운다. 평소 시간이 없이 생각해보지 못했던 것들에 대해 깊이 생각해볼 기회를 갖는다. 화가 났던 것들에 용서하는 법을 스스로 터득하고 사소한 것들의 소중함과 아름다움을 느낀다. 궁극적으로 자신들의 삶을 더 아름답게 사는 법을 배운다.


이 선생님은 다음으로는 마음껏 춤추기 수업을 한다. 정해진 틀은 없다. 선생님이 아무 음악이나 틀어주면 한명 씩 나와 마음껏 춤을 춘다. 이 수업을 하기까지 선생님은 몇 차례 수업을 통해 아이들을 설득한다. 이러한 생소한 수업방식에 거부감을 가지는 아이들을 위해 왜 이런 수업을 해야 하는지, 결국은 왜 살아가는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대한 이야기들을 한다. 선생님의 진정성 있는 이야기를 들으며 아이들은 점차 마음이 열린다. 이 수업의 목적은 진정한 자유를 느끼는 것, 반 친구들 앞에서 자유롭게 춤을 추며 그 시간만큼은 내 자신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나로서 자유로워지고 남의 시선 앞에서 자유로워진다. 처음에는 서로가 춤추는 모습에 민망해하던 친구들은 점차 진지한 태도를 가지고 그 자리에 임한다. 같은 과제를 해내고 나서 서로가 동등함을 느끼고 위축되어있던 아이들은 자신감을 갖는다.


기말고사 시험에는 “우리는 왜 체육을 하는가?”라는 서술형 한 문제가 나온다. 시험 보기 일주일 전 선생님은 문제와 함께 선생님의 전화번호를 준다. 시험보기 전 미리 서술해보고, 자신이 써본 것을 선생님에게 메일로 보내서 전화를 걸면 선생님이 첨삭을 해준다. 선생님이 첨삭 해 준 것을 바탕으로 시험 시간에 왜 체육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서술하면 된다. 평소에 선생님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고민해본 학생이라면, 선생님께 개인적으로 전화 한 통만 걸었다면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다. 평소 생각하지 못하는 것을 고민해보도록 하는 시험이 진정한 시험이 아닐까. 학생들을 조금이라도 더 생각하는 선생님이었기에 단순한 암기를 하게 하기보다는 그 귀중한 시간에 좀 더 가치 있는 고민을 해보게끔 하는 것이 학생들을 위하는 길임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생각보다 학생들은 선생님의 마음과 정성을 빨리 알아차린다.


고등학교 국어시간, 시 낭송 수업이다. 시를 한편씩 준비해 와 매 수업마다 한 명씩 자신이 준비해 온 시를 친구들 앞에서 낭송하고 그 시를 자신의 삶과 관련지어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생각보다 자신의 이야기에 공감해주는 친구들이 많다는 걸 발견한다. 여고라서 그런지 꽤 많은 친구들이 이 시간마다 함께 눈물짓는다. 자신이 살아오며 겪은 아픔을 시를 통해 한 번 공감 받고, 친구들을 통해 한 번 더 공감 받는다. 학생들은 누르고 있던 감정을 승화시키는 법을 배우고 보다 건강하고 성숙한 인격체로 성장한다.


수능 국어영역의 성적이 좀처럼 오르지 않은 한 고3 학생이 이 선생님에게 학업상담을 요청한다. 학생은 그동안 들어 본 적이 없는 공부 방법을 접한다. 그간 들은 공부방법은 기출문제를 많이 풀어야 한다, 문제를 유형 별로 접근해야 한다, 하루에 비문학 지문과 문학 지문을 각각 세 개 이상씩 문제를 풀고 정리해야 한다, 개념을 외워야 한다, 등이었다. 완전히 시험 중심의 공부였다. 그러나 선생님은 국어를 글 자체로 받아들이도록 한다. 시 문제를 풀기 위해 시를 삶으로 느끼도록 하고, 문학 지문을 풀기 위해 고3이지만 책을 읽도록 한다. 더 나아가서 영화를 감상하도록 하고 선생님과, 친구들과 대화를 하도록 한다. 국어는 우리들의 언어이며 이를 받아들이는 연습, 깊이 이해하는 연습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것이 결국 진정한 국어 공부이며 학생은 수능 국어 성적을 올릴 뿐만이 아니라 즐겁고 여유 있게 공부하는 법, 문학 작품들을 통해 인생을 더 풍요롭게 만드는 법을 배운다.


우리네 교육은 지나치게 목적 지향적이다. 국어 시험을 잘 보기 위해서 진정한 국어 공부를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목적 지향적 교육으로 인해 학생들의 인성이 무시되었고, 학교 폭력과 같은 비정상적인 현상들이 학교 내에 발생했으며 이를 감지하여 인성교육진흥법을 제정하고 인성교육을 추가적으로 하도록 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인성교육은 따로 하는 게 아님을, 이미 우리가 배우고 있던 국어과목이, 체육과목이 그 자체가 우리의 인성과 우리의 삶을 위한 것임을 보여준 선생님들이 있다. 또한 진정성 있는 교사를 만남 자체가 인성 교육이 이루어지는 출발점임을 보여준 선생님들이 있다.


위에서는 경험한 바를 바탕으로 인성교육을 포함하는 진정한 교육이라고 받아들인 교과활동 중 체육교과와 국어교과에서의 이야기만을 했다. 그러나 어느 교과든 마찬가지이다. 각 교과를 입시의 수단으로 전락하도록 하지 않고 그 교과의 고유특성을 잘 살리도록 노력할 때 인성교육은 저절로 이루어지게 된다. 인성교육이 새로운 교과 영역이 아니라 우리의 교과에 이미 내재하여 있다는 것은 우리 교육과정에 명시되어 있는 교과의 성격과 각 교과의 교육과정 목표만을 살펴보아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과학교과의 경우 2009개정교육과정에 따르면 과학교과는 비판적이면서 합리성을 중시하는 과학적 태도, 자연의 진실을 추구하는 성실성, 자연으로부터 배우는 정직성, 동료를 배려하고 후진을 양성하는 협동정신 등을 함양할 수 있는 교과이다(홍혜정, 윤회정, 우애자, 2012)라고 명시되어 있다.


인성교육에 대한 요구가 대두되자, 학계에서는 인성교육이 무엇인지와 인성의 요소들이 무엇인지를 먼저 알고자 했다. 인성교육이 무엇인지 정확히 정의하고 인성 요소들이 무엇인지를 파악해야 인성교육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인성의 정의와 요소가 너무 모호하기 때문에 사실상 인성교육은 학교에서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라고 여기는 입장도 있다. 인성이란 주어지는 인간 고유의 특성이지 교육되거나 만들어질 수 없는 것이라는 입장이다. 그러나 교육계에서 말하는 인성은 그 의미가 넓은 만큼 주어지는 인간 고유의 특성만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한 인간으로서 보다 더 긍정적이고 건강한 인격체로 살아가기 위한, 더불어 살아가기 위한 삶에 대한 태도와 마음가짐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인성교육이 입시를 준비해야 하는 현실에 맞지 않다는 입장도 있다. 그러나 인성교육이 학업성취나 입시와 절대 동떨어진 것이 아니다. 인성교육은 한 편으로는 학생들이 자신의 삶에 대해 보다 올바를 태도를 갖게 하는 것으로, 올바른 인성교육이 이루어지는 교육 환경과 분위기 속의 학생들은 자연스레 자신의 인생에 진지한 태도를 가지고 삶의 의미를 찾으려 하며 이는 자신의 미래를 위한 현재 삶의 신중한 자세로 이어진다. 지식 전달과 문제풀이 위주의 수업이 성공적인 입시를 위한 길이 아니다. 경쟁사회가 조장하는 불안감과 조급함에 대한 위로일 뿐이다. 인성교육이 물들어 있는 진정한 교육이야 말로 학생들의 현실적인 진로와 입시를 위한 정도이다. 자신에 대해 성찰해볼 기회가 없이 입시만 파고든 학생들은 설사 좋은 대학을 가더라도 결국엔 공허함을 느끼게 된다.


인성교육에 대해 반대하는 입장들이 있는가 하면 한 편 요즘 교육계에선 인성교육이 유행인 듯하다. 너도나도 인성교육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하고 교내외에서 각종 인성교육 프로그램들이 개발 되고 있다. 심지어는 인성교육 프로그램 자격증이 생겨 인성교육 전문 강사들까지 나오고 있다. 우리나라답게 사교육계에서도 이 유행을 파악하여 돈과 시간을 추가적으로 들여 인성교육을 받도록 하는 분위기를 조장하고 있다. 인성교육의 중요성에 대한 논의가 유행처럼 지나갈까봐 우려가 되기도 한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학생들이 교내외에서 부가적인 인성교육을 받아 건강한 인격체로 성장한다면 이러한 현상을 나쁘게만 볼 수는 없지만 인성교육은 결코 부과되어야 하는 교육은 아니다. 유행처럼 대두되었다 사그라져도 안 된다. 이미 다니고 있던 학교에, 내가 있던 교실에, 매일 마주하던 교사와 매일 배우던 교과들에 물들어야했던 교육이다. 이제야 시작되었다면 멈춰서는 안 될 이야기이다.


물론 교과 내 인성교육이 중요함을 인지한 교사들을 통해 교과 내 인성교육을 위한 학문 연구들이 이루어지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이러한 연구들은 대부분 인성 덕목을 쭉 나열하고 이를 교과 내용 요소와 연관시킨 후 본 교과가 인성 덕목 요소를 담고 있음을 증명하여 인성교육에 있어서 본 교과가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 재언하는 데에 그친다.


교과 내 인성교육을 위한 학문연구는 위와 같이 진정한 교육을 추구하는 교사들이 직접 나서서, 자신이 고민하고 시도한 경험론적 교육 방법을 구조화 시키고 이를 다른 교사들과 공유하고자 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미국의 교육자, 강연자 및 상담자인 제인 블루스틴(2003)은 교사가 학생의 삶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천천히 일어나며 이후의 다른 영향들과 뒤섞이기 때문에 교사가 뿌린 씨앗은 몇 년 동안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이러한 수업 및 연구를 시도할 때 교사들은 당장 눈에 보이지 않는 결과 때문에 무력감에 빠지기도 쉽다. 그렇지만 교사이기 때문에 믿음과 끈기를 가지고 적극적이고 확고한 태도를 지속할 필요가 있다.

인성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기 위한 첫걸음은 교사 개개인이 학생을 위하는 마음, 이 각박한 사회 현실에 놓인 학생들을 안타까워하는 마음에서 시작된다. 그렇게 안타까운 마음으로 고민하고 용기를 낼 때 진정한 교육이 이루어진다. 인성교육이 교사들의 의무나 책무라는 말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나 교사들은 부모 다음으로 학생들의 인생에 비교적 큰 영향을 미칠 권한과 기회가 있다. 아르헨티나 출생 미국의 작가인 마르셀라 코건은 제인 블루스틴의 책 『내 안의 빛나는 1%를 믿어준 사람』에서 선생님은 내가 갖지 못했던 훌륭한 부모님이라고 말했다. 훌륭한 부모님은 학업과 경쟁과 입시에만 매여 있는 자신의 아이가 안타까워 아이가 자신의 성적표가 아닌 자신의 삶을 바라보게 할 것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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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경식 (2016). 열 살까지는 공부보다 아이의 생각에 집중하라. 서울: 트로이목마

Jane B. (2003). 내 안의 빛나는 1%를 믿어준 사람 (도솔, 역). 서울: (주)도서출판푸른숲. (원서발행년 불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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