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에게 주어진 시간은 고작 백년 내외로 한정되어있지만, 그 시간동안 지혜로운 삶을 누릴 수 있는 것은 수만 수천 년 동안 축적되어 온 인류문화유산 덕분이다. 교육 문제에 있어서도 선현들의 교육적 예지를 통해 우리는 지금의 교육의 지침을 얻게 되었고, 그 덕에 지금과같이 다행스러운 삶을 살 수 있는 것이다(한기언, 1996). 고전이란, 오랜 시간 동안 읽히고 공감을 얻어 현재까지도 살아있는 문헌을 일컫는다. 어떤 책들은 한 시대에만 소용이 있고 시간이 지나면 더이상 읽히지 않지만 어떤 책들은 시간이 오래 지나도 두고두고 읽혀 새로운 세대에 지혜를 전해준다. 즉, 고전이란 우리의 윗세대, 그 윗세대, 또 그 윗세대를 통해 거듭 검증되고 검증된 지혜의 보고라고 할 수 있다. 학문 후속세대로서 갈 바를 알지 못할 때, 혹은 점차 좁아지는 연구주제에 매몰되고 전체를 보기가 어려워질 때 우리는 고전을 펼쳐보며 다시금 중심을 잡을 수 있다.
여기서는 교육과정의 고전으로 꼽을 수 있는 5권의 책 및 문헌이 현대 우리나라의 교육에 지금까지도 주고 있는 시사점이 무엇인지 고찰해보고자 한다. 교육과정 고전 5권으로는 허버트 스펜서(Herbert Spencer, 1820-1903)의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Education: intellectual, moral and physical)>, 존 듀이의(John Dewey, 1859-1952)의 <민주주의와 교육(Democracy and education)>에 수록된 ‘나의 교육신조(My pedagogic creed)’, 프랭클린 보비트(Franklin Bobbitt, 1876-1956), <학교에서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가(The curriculum)>, 랄프 타일러(Ralph W. Tyler, 1902-1994)의 <교육과정과 수업지도의 기본원리(Basic Principles of Curriculum and Instruction)>, 제롬 브루너(Jerome S. Bruner, 1915-2016)의 <교육의 과정(The Process of Education)>를 꼽을 수 있다.
각각의 고전에 대한 글은 다음에서 볼 수 있다.
https://brunch.co.kr/@lanie/61
https://brunch.co.kr/@lanie/69
https://brunch.co.kr/@lanie/70
https://brunch.co.kr/@lanie/71
https://brunch.co.kr/@lanie/72
교육과정 고전이 우리나라 교육에 주는 시사점 아홉가지를 꼽아보았다. 첫째, 학생들의 삶이 좀더 학생들의 자연스러운 발달이 존중받는 방향으로 교육과정과 교육과정이 실현되기 위한 제반 여건이 개선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 교육은 지나치게 경쟁 상황에 놓여 있는 탓에 부모들은 아이들의 발달을 기다리고 존중하기보다는 또래를 능가하고 학교교육을 앞서가는 데에 힘쓴다. 이는 어린 아이들 기르는 부모가 일시적으로 안심할 수 있도록 해줄 지는 몰라도 교육적으로, 그리고 개인을 위해 결코 좋은 일이 아니다. 어릴 적 지나치게 소진된 학생들은 점차 생기를 잃어가고 성인이 되어서 온전하고 건강한 삶을 누리기보다는 이리저리 휘둘리는 삶, 겉으로만 번지르르한 삶, 자신을 위하기보다는 타인에게 보이기 위한 삶을 살아가기 바쁘다. 그러나 부모, 개인의 욕심은 올바른 교육과정이 부재한 데에서 비롯한다. 개인은 주어진 시스템에서 생존전략을 취할 뿐이기 때문이다. 교육과정 개발자들은 스펜서가 지적했듯이 인간의 정신과 사회적 관계와 사물과의 관계의 자연스러운 변화와 섭리를 이해해야 할 것이고, 이를 교육과정에 잘 녹여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올바른 교육과정이 그 목적과 취지에 맞게 잘 실현될 수 있는 제반 여건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둘째, 스펜서가 지적한 ‘덕’교육, 즉 ‘부모교육’의 방법에 따라 교육과정에는 부모교육-인내의 기술과 감정을 다스리는 기술에 대한 교육이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교육과정은 학생 자신이 올바르게 성장하는 일에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자손과 후대또한 올바르게 성장할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을 수행하도록 하는 것까지 고려할 필요가 있다. 좋은 선대가 될 책임은 교사에게만 있는 게 아니라 모든 사회 구성원에게 있기 때문이다. 그중에서 태어나자마자, 성격이 막 형성되는 시기에 마주하는 부모의 영향이 가장 막강한 것 뿐이다. 자녀와의 상호작용에 있어서 부모의 올바른 대응은 인위적 개입이 아닌 자연이 알아서 대응하도록 그대로 두는 것이다. 이는 부모의 역할을 축소시키는 것 같지만 가장 어려운 기술-인내의 기술을 요한다. 학교 교육과정에서는 모든 이들로 하여금 타인을 타인이 처한 상황에서 이해하고 함부로 개입함으로써 혼란에 빠뜨리지 않도록 하는 기술을 교육받을 필요가 있다. 그것은 또한 감정에 대한 교육이기도 하다. 외부의 자극에 따른 감정을 그대로 표출함으로써 타인을 공격하지 않고, 자신의 내면에서 감정을 다스리며 타인과는 돈독하고 유쾌한 관계를 형성해갈 수 있는 기술을 가르치는 것이다.
셋째, 탄탄한 진로교육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듀이는 교육과정은 심리학적 측면과 사회학적 측면을 모두 고려해야 한다고 하며 이 두 측면이 같은 목표를 지향하면서 나아가는 것이 이상적인 교육이라고 하였다. 교육과정의 사회학적 측면은 교육의 결과가 사회적으로 유용한 것을 의미한다. 즉, 학생들이 능력을 개발함에 있어서 자신의 능력이 사회에서 어디에 어떻게 쓰일 것인가를 알 수 있는 것을 뜻한다. 이러한 사회학적 고려 없이 일단 능력을 키워놓고 보자는 식의 개인적 측면에 치우친 교육은 공허한 것이 되고 학생들은 효율적으로 자신의 능력을 개발하기보다는 공허하게 된다. 진로교육이란 바로 듀이가 이야기했듯 자신이 개발하고 있는 능력이 사회에서 어떻게 쓰일것인가를 알 수 있도록 해주는 일이다. 교육 결과의 쓰임을 강조하는 교육은 개인을 경시하는 일이 될 수도 있다는 지적도 있다. 진로교육은 바로 그 쓰임이 개인의 자아실현과 인격형성과 그 방향이 같을 수 있도록 길을 잡아주는 일이다. 이런 이유를 들면서 진로교육을 경시하고 교양교육, 개인의 성장과 발달만을 강조하는 교육은 반쪽짜리 교육이라고 할 수 있다.
넷째, 진로교육의 의미가 확장되어야 한다. 앞서 진로교육이란 학생들이 자신의 능력의 사회적 쓰임을 예측할 수 있고, 사회적 쓰임과 개인의 자아실현 및 인격형성의 방향이 같을 수 있도록 해주는 일이라 하였다. 그러나 듀이는 이에 그치지 않고, 20년뒤의 사회를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아동을 엄밀하게 규정된 상황에 준비시켜준다기보다는 스스로 통어할 수 있도록 하고, 아동이 자신의 능력을 어디서나 발휘할 수 있도록 훈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는 진로교육에서의 또 다른 심리학적 측면을 고려하는 것이며, 능력을 길러주며 그것의 쓰임은 알 수 없다고 무책임하게 방치하는 것과는 다르다. 보비트는 진로교육의 의미를 추가한다 바로 일교육에 있어서 일을 할 수 있도록 대비하는 교육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일 자체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는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공통교육으로서의 진로교육에 해당한다. 현실적으로 학생들이 장차 종사할 모든 직업이 명예로운 것이 아니기에 개인은 어떤 일을 하든지 자신의 인생의 의미와 자신의 일의 의미를 해석할 수 있어야 할 것이고, 사회는 모든 직업에 가치를 부여하는 데에 힘써야 할 것이다.
다섯째, 학교와 지역사회는 더욱 밀접하게 협력하여 학생들이 실제적인 프로젝트를 수행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줄 필요가 있다. 또한 학생들의 삶이 미래를 준비하는 시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시간 자체가 삶일 수 있도록 보장해줄 필요가 있다. 듀이도 어린 시절은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 시간을 희생할 것이 아닌 그 자체로 살 가치가 있는 것이어야 한다고 하였고, 보비트 또한 아동들은 교육상황 하에서 환상적인 활동을 할 것이 아니라 지역사회의 활동의 일부를 실제로 위임받아 실세계에서 살아나고 책임을 실현할 수 있어야 한다고 하였다. 타일러 또한 학습경험 선정에서 학생들이 해당 경험을 통해 만족감을 얻을 수 있어야 한다고 했는데, 환상에 불과한 활동보다는 실제적인 활동에서 보다 큰 만족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지역사회의 활동은 타일러가 제시한 교육과정 준거인 ‘통합성’을 실천하는 중심이 될 수 있고, 브루너가 제시한 지식의 구조의 특정 단계가 될 수도 있다. 이는 북유럽 학교교육의 기본 가치이기도 하다. 노르웨이, 핀란드 교육에 대한 책인 <소리 없는 질서>(안애경, 2015)에서 저자는 북유럽 학교에서 학교는 학생들이 미래를 준비하는 곳일뿐만 아니라 지금이 얼마나 좋은 인생인지를 확인하는 곳임을 목격했다고 서술한다. 또한 이는 사회와 교사, 학생들에게 모두 도움이 되는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일일 것이다. 학생들의 기발한 아이디어는 종종 실제로 지역사회의 문제를 해결해주고, 교사들은 아이들에게 전달할 자극과 지침을 직접 계획하기보다는 실제 활동 중에서 선정하는 역할을 하면 되고, 학생들은 보다 즐겁고 효과적으로 학습하게 될 것이다.
여섯째, 학생들이 건강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 학생들은 어린시절 마음껏 뛰어다니고 힘들면 휴식을 취하기보다는 최대한 책상 앞에 오래 앉아있고 놀거나 휴식하는 것에 대해서는 죄책감을 느끼도록 훈련받는다. 스펜서는 이러한 것을 강요하는 것에 대해서 자연의 이해에 대한 무지의 증거라고 강력하게 말한다. 건강한 신체는 건강한 정신으로 이어진다. 보비트는 신체적 활력 수준이 높은 사람은 쉽게 흥분하지 않고, 차분하고, 안정적이고, 스트레스를 적게 받고, 탄력적이며, 회복력이 뛰어나다고 언급한다. 우리는 이러한 것을 교육으로 갖출 수 있는 면모라기 보다는 개인마다 타고난 것으로 간주하고 교육상황에서는 이러한 점을 무책임하게 다루는 듯 하다. 우리나라 학생들이 의미 없는 학습시간을 대폭 줄어들고, 신체의 요구에 따라 마음껏 뛰어 놀고 휴식을 취하며 즐겁게 공부함으로써 자신을 돌볼 줄 알아, 성인이 되어서도 오랜 시간 건강한 몸과 마음을 유지하며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교육받기를 소망한다.
일곱째, 효율적인 교육과정을 고안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 학생들은 어린시절의 장시간을 학습에 투자하지만, 이해가 결여된 채로 여러 지식들을 우겨넣는 공부를 하곤 한다. 이러한 지식은 학생들의 머릿속에서 확장되고 발전되기는 커녕 시험을 기점으로 사라지고 만다. 브루너를 공부한 교사와 교육과정 개발자들은 이제 아이들의 효율적 시간 활용을 위해, 그리고 그들이 소중한 어린 시절을 보다 의미있게 보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각 교과의 ‘원리/구조/개념아이디어’를 알아내고, 그것을 아이들이 스스로 발견할 수 있는 활동을 고안해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듀이의 조언에 따라 아동의 발달 순서에 알맞는 교육과정을 제시하고, 수업에서는 아동이 올바른 심상을 형성하도록 하는 일에 힘써 가르치고 배우는 일이 효율적으로 촉진될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다. 학습을 효율적으로 할 수 있을 때 학생들은 자신의 진로에 대해서도 생각하고 건강한 신체도 유지할 수 있도록 독려될 것이다.
여덟째, 이 모든 것에 있어 타일러의 교육과정 선정 원리를 활용할 수 있는데, 형식적인 절차가 아니라 진정으로 학생들을 위한 좋은 교육과정을 도출하기 위한 세심한 절차가 되어야 할 것이다. 교육목표 수립 시에는 학생, 사회, 교과에 대한 연구가 모두 이루어져야 하는데 실상은 그때그때 이슈를 잠재우기 위한 임시방편의 사회적 목표와, 자신의 밥그릇을 지키기 위한 교과의 입김에 의해 교육과정이 만들어지고, 이것이 실제 실현될 때는 교과교사들의 편의에 따라 교과 중심의 수업으로 이루어지거나, 애초의 교육목표는 사라지고 입시성적을 위한 훈련만이 남게 된다. 타일러의 교육과정 개발 원리는 현대 교육현장에서도 드러나기도 하지만, 진정성 있게 활용되는가는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아홉째, 학생들이 학교에서 겪는 평가는 학생들을 선발하는 것과 같은 형태로 시행되기보다는 타일러가 제시한 다양한 방법으로, 교육목표 달성 여부 확인 혹은 교육과정의 기능을 점검하는 용도로 활용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입시나 선발과 같은 평가는 타당성을 확보한 것이 되어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의 수학능력시험은 객관성이나 변별성 논의에만 치우쳐있고 정작 타당성에 대한 논의는 부족하다. 타일러는 평가도구가 객관성, 타당성, 신뢰도를 검토받아야 한다고 하였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민감한 것이 공정성인데, 공정성은 타당성이 전제되었을 때 가능한 것임을 인지하고 타당한 평가가 개발될 필요가 있다.
참고문헌
안애경(2015). 소리 없는 질서. 서울: 마음산책.
한기언(1996). 교육고전론 서설 - 교육고전의 성격 -. 교육철학, 14(2) : 115-134
Bobbit, Franklin(2017). 학교에서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가. 서울: 학지사.
Bruner, Jerome S. (Jerome Seymour)(2005). 브루너 교육의 과정. 서울: 배영사.
Dewey, John(1992). 민주주의와 교육. 서울: 교육과학사.
Spencer, Herbert(2016).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 서울: 유아이북스.
Tyler, Ralph W(1996). Tyler의 교육과정과 수업지도의 기본원리. 서울: 양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