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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학을 공부하는 이유

by Lanie

중고등학교시절 주어진 공부를 열심히 하면서도 마음속으로는 '나는 비정상 적인 교육 상황에 놓여 있다'고 생각했다. 어린 마음으로도 진짜 공부가 아닌 시험 요령을 기르기 위한 반복 작업을 하고, 하루에 15시간씩 앉아있도록 하는 게 결코 정상이 아님은 알 수 있었다. 정상적인 교육 상황은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교육으로 충분한 학습이 이루어지고 방과 후에는 자유로운 시간을 보내며 개성을 키워나가고 창의적인 생각을 마음껏 하는 상황이라고 당시에도 어렴풋이 생각했던 거 같다.


국제적인 경험들은 이런 나의 생각을 더욱 공고화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여름방학 기간 동안 뉴질랜드의 학교에 교환학생을 갔었다. 한국학생들은 그 한달 남짓한 기간에도 공부를 놓칠까 다음학기 선행학습을 위한 수학 문제집을 챙겨갔는데, 그곳 현지 친구들은 마치 천국에서 살고 있는 것 같았다. 학교에 가서 아침에 잠시 공부를 한 뒤 모닝 티 타임을 가졌다. 간식을 나눠 먹으며 온 학교를 뛰어 다녔다. 교복은 추리닝이고, 교실도 네모반듯하지 않고 기울어진 모양이었다. 모여서 이야기 할 때는 책상을 뒤로 하고 교실 바닥에 철푸덕 앉았다. 학교가 끝나면 아무도 학원에 가지 않았다. 나는 매일같이 친구 집에 가서 놀곤 했다. 그리고 귀가해서 저녁을 먹고 8시면 잠에 들었다. 하루에 12시간씩 충분하고도 남게 잠을 잤다. 12살의 나는 그 여름방학 동안 하루 12시간을 꼬박꼬박 채워 참 잘도 잤다.


고등학교 때도 옥스퍼드로 여름 영어캠프에 참여한 적이 있었는데, 영국 친구들을 만난 것은 아니지만 전 세계 청소년들이 영어를 배우고자 몰려들었고 유럽 학생들이 많았다. 그 친구들의 용모는 우리가 보기에 벌써 성인 같았다. 우리는 공부에 집중한답시고 외모 관리라든지 노는 일은 다 성인 이후로 미뤄두었는데, 그 친구들은 마치 벌써부터 하고 싶은 걸 다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매주 디스코 파티에서 춤을 추며 놀았다. 우리에겐 그런 것이 처음이었다.


청소년들이 마음껏 화장을 하고 어른 같은 옷을 입고 디스코파티를 하며 놀아야 한다는 말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왜 우리는 책상 앞에서만 온종일을 보내야 했던 걸까? 왜 매일 잠을 줄여가며 이미 머리가 포화되어 더이상 들어가지도 않는 수업 내용을 꾸역꾸역 우겨 넣으며 갑갑한 생활을 해야 했던 걸까? 이게 옳다고 생각하지도 당연하다고 생각하지도 않았지만, 이에 대한 내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는 당장은 현재의 체제에 순응하고 이 사회에서 인정하는 높은 자리에 올라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고등학교 시절 인생같지도 않은 인생을 견딘 이유였다. 공부같지도 않은 공부를 오기로써 한 것이다.


그래도 만약, 그렇게 하루 열 몇시간을 공부해서 그만큼의 효과가 있었더라면 좋았겠지만 독일 교환학생으로 파견되어 1년 간 독일 대학 생활을 할 때 역시나 그것이 소용 없는 일이었음을 다시한 번 깨달았다. 한국의 초중고 학생들이 외국으로 조기유학을 가면 누구나 수학 천재가 된다, 영재가 된다,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고등교육 장면으로 넘어왔을 때는 결코 적용되지 않는다. 독일 교육에 대해 잘 아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그동안 들은 내용에 따르면 우선 독일은 선행학습 금지법이 있어서 결코 선행학습을 해서는 안 되고, 그러니 이를 위한 학원도 없을 테고, 교사가 숙제도 30분~1시간 이상의 분량을 내서도 안 되며 아비투어(독일의 수능) 준비 기간에도 하루 서너시간 이상 공부하지 않도록 권고한다고 하였다. 그러면 독일 청소년들의 절대적인 공부 시간은 학교 수업시간과 조금의 숙제정도일 것이다. 그러면 그보다 두배 세배 이상을 공부시간으로 투자한 한국의 청소년들은 훨씬 더 똑똑한 성인이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지금 생각해보면 가당치도 않지만 나는 그것을 살짝 기대했다. 독일 대학생들 사이에서 똑똑한 아시안을 보여줘야지, 생각했다. 거기다가 내가 한국에서 다니던 대학의 세계 랭킹이 교환학생으로 가는 대학의 세계 랭킹보다 높으니 더욱 기대했던 것도 있다. 그런데 왠걸, 독일에서 만난 대학생 친구들은 나보다 훨씬 더 똑똑했다. 나보다 상식도 훨씬 많고, 사고도 깊었고, 자신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이야기했고, 당연히 영어는 나보다 훨씬 잘했을뿐더러 저마다 영어뿐 아니라 몇 가지의 언어를 구사하곤 했다. 독일 대학에서의 교환학생 경험은 독일 대학 교육 자체를 겪어보는 것에 대한 의미도 있었지만, 독일의 대학생들을 사귄 것이야말로 독일의 초중등교육에 대한 결과물을 직접 대면해보는 일로서의 의미가 있었다. 하루하루를 미래를 위해 다 희생하면서 청소년기를 보냈는데, 즐겁고 자유롭게 청소년기를 보낸 친구들보다도 책도 많이 못읽어 지식도 별로 없고, 영어도 못하고, 내 생각을 제대로 표현하지도 못한다니 나의 청소년기가 억울하게 생각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러한 삶이 청소년기에서 마무리된다면 좀 덜 억울했을까, 그런 희생적인 인생은 청년기, 성인기에도 끝나지 않았다. 나의 독일 단짝 친구는 당시 나처럼 사범대학에 다니고 있었고 교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나보다 나이가 2살인가 더 많아 내가 2학년 때 그 친구는 벌써 졸업반이었고 교사가 되기 위한 국가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우리나라로 치면 임용고시 준비생인 건데, 그 친구는 매번 외국인 친구인 나를 놀아주었고 우리 가족이 놀러왔을 때도 자신의 집에서 우리 가족을 호스팅 해주었고 여기저기 데려가주며 함께 시간을 보냈다. 우리나라 임용고시생이라면, 지구 반대편에서 손님이 왔다고 할지라도 마음껏 시간과 사랑을 내어줄 수 없었을 것이다. 교육의 시간은, 미래를 위해 희생되는 시간이 아닌 그 자체로 즐거울 수 있고, 그렇게 즐기면서도 충분히 실력을 쌓고 성장할 수 있으며 오히려 더 효율적이고 효과적일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고, 그런 인생을 후대가 누릴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마련해주고 싶었다.


안애경(2015). 소리 없는 질서. 서울: 마음산책.


그러나 교육은 정말 어렵고 무거운 주제이다. 한 번 뿐인 사람의 인생을 다루는 일이기 때문에 마음껏 실험을 해볼 수도 없다. 그만큼 깊이 있는 공부와 올바른 생각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항상 교육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지만, 공부를 철저히 하지 않고는 함부로 목소리를 낼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교육학 30년의 여정에 발을 들였다. 지금까지 거의 10년, 그리고 앞으로 20년 더 교육 현상을 보다 깊게 고찰하고, 생각을 글로써 정리하고, 교육학 스승, 동료, 선배들과 또 독자들과 끊임없이 토론하며 교육에 대한 생각을 올바른 방향으로 잡아나가다 보면, 그 때는 이 아이디어들을 실현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을까? 그리고 그 때는 실현해보아도 되지 않을까?



배경사진 출처 https://quotefancy.com/quote/1161975/John-Dewey-Education-is-life-itse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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