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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니그람 Jan 06. 2024

나는 '점순이'였다.

사람들은 왜 편의점에 갈까.


나는 편의점을 좋아한다. 요즘에는 거의 매일 한번씩은 집앞에 편의점에 들러서 간식거리나 급한 식재료를 구입하는 것 같다. 그외에도 편의점은 내가 하루 중에 아이들 등하원시간에 어린이집 선생님들과의 인사를 제외하고 누군가와 인사라도 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이다. 사실 '인사'를 하러 편의점에 가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늘, 항상 그곳에 열려있다는 것이 마치 나를 맞아주는 것 같이 느껴진다.



사람들의 나와 같은 이런 마음을 나는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나는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2년정도 했었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원을 다니면서, 그리고 대학원을 그만두었을때는 유학준비를 위해 독일어를 배우면서 편의점에서 일을 하였다. 공부하면서 돈을 버는 수단으로 편의점은 그리 좋은 선택은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다. 하루 7시간 주 5일을 한달 꼬박 일해도 60만원이 될까 말까 하는 돈을 받았으니 말이다. 서울에서 자취를 하던 내게 그돈은 방세와 생활비를 충당하기에 턱없이 부족했다. 하지만 그래도 나는 그 일이 좋았던 것 같다. 다른 이의 간섭 없이 혼자서 하는 일이었고, 처음엔 기대하지는 못했지만, 일하다보면 사람이 거의 오지 않는 시간이 적어도 총 근무시간의 1/3정도는 되었기에, 그시간에 책을 볼 수 있었다. 반은 일하고 반은 공부한다는 생각으로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매일 같은 시간대에 같은 장소에 7시간씩 서있다보면 자연히 방문하는 사람들, 그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관찰하게 된다. 기가막히게 같은 시간대에 같은 일이 벌어지고, 사람들이 들어찼다 비워졌다 하는 것이 마치 하나의 커다란 유기체같이 느껴지기도 했다. 마치 편의점이 심장이고 사람들은 심장을 드나드는 혈액처럼 물건을 받아들고 문밖을 나가 온 거리를 누빈다. 편의점은 그 주변의 삶도 마찬가지겠지만, 자신만의 리듬이 있었다.



처음에 일하던 곳은 어느 대학교 후문에 위치한 편의점이었다. 아침시간에는 출근하는 사람들과 등교하는 학생들로 북적였다. 그들의 발걸음은 빠르고 또각거리는 구두소리는 나의 계산을 재촉하는 듯했다. 학생들은 간식거리를 사는게 대부분이고 매일 담배를 사러오는 학생도 있었다. 얼마 후에는 지역을 옮겨서 내가 살던 곳 근처의 편의점에서 오후에 일을 하였다. 아마 독일어를 배우기 시작할 때였던 것 같다. 주택가 근처에는 좀 더 정기적으로 방문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거의 매일 같은 것을 사러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어떤 이는 매일 막걸리를 한병씩 사러오고, 어떤 이는 라면이나 삼각김밥을 사러온다. 고민없이 알고 있는 그 자리에서 물건을 집어오는 이가 있는가하면, 매일 같은 것을 사도 무얼 사야할지 고민하는 듯이 느긋한 발걸음으로 진열대를 훑는 사람들도 있다.



 고민하는 사람들을 보면, 그들이 무언가 자신도 알지 못하는 것을 찾고 있는 건 아닐까 싶기도 했다. 그저 누군가에게 자신이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하는 이들도 있었다. 어느 날은 어떤 아주머니가 교통카드가 잘 되지 않는다며 들고온 일이 있었다. 교대시간이 다 되어 나와 다음 차례의 알바생이 같이 있었다. 교통카드가 안되는 문제의 책임이 누구인지를 서로 따지고 들다가 아주머니와 알바생의 언성이 점점 높아지기 시작했다. 차분히 아주머니 이야기를 듣고 다시  설명을 드리니 금방 누구러지셨다. 말이 통하지 않았던게 답답하셨던 모양이다. 사실 교통카드가 되지 않는게 뭐 그리 중요한 문제겠는가.



가끔은 새롭게 퍼즐 조각 하나를 맞추는 듯 해서 재밌을 때도 있다. 매일 오는 사람 중에 나이든 할아버지가 있었다. 그분이 무엇 사갔는지 잘 기억은 나지 않는다. 어느 날 할아버지는 나를 붙잡고 답답한 심정을 토로했다. 자신은 한국전쟁에 참전했다며, 당시에 북한군과 대치하던 상황을 내게 이야기해주셨다. 교과서나 책에서만 보던 일을 실제로 겪은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니 매우 신기했다. 국가유공자인 그는 나라의 연금을 받으며 산다며, 그 연금 덕에 자신의 딸은 일도 하지 않고 집에서 용돈을 받으며 지낸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들으니 손님 중에 생각나는 사람이 있었다. 매일 강아지를 안고 물건을 사러오던 여자손님. 늘 막걸리같은 것을 사러오는데, 옷차림을 보면 일을 하지 않는 것 같고, 잘 씻지도 않는 것 같아보였다. 아마 그여자가 할아버지의 딸이었을 것 같다.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퍼즐조각을 맞추고 나니 할아버지의 심정이 이해가 되었다. 살날이 얼마 안남아보이고 그분이 세상을 떠나면 연금도 나오지 않을텐데, 일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아보이는 그 딸은 뭘 해먹고 살까. 쓸데없이 남의 걱정도 해보고 말이다.


 

편의점 일을 하는 초반에는 스스로 떳떳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최저임금을 받고 우스꽝스러운 옷을 입고, 오고 가는 사람들마다 기계처럼 인사를 해야하는 일이 하찮게 느껴졌다. 손님들도 나를 깔보고 무시하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 내가 자조적으로 스스로 붙인 별명이 '점순이'였다. 2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을 편의점에서 일하면서 느낀 것은, 사람들에게 편의점은 의미있는 공간이라는 점이다. 그들은 매일 필요한 것을 사러, 혹은 무언가 사고싶은 것을 발견하러 편의점에 온다. 어쩌면 나처럼 누군가와 말 한마디 섞기위해 오는 이도 있었을 것이다. 가끔 내가 화장실을 가서 편의점 문이 닫혀있으면, 돌아오는 내게 화를 낼만큼 그들이 편의점에 오는 것은 절박한 일이라는 것을 안다. 일하는 동안 사람들은 내게 개인적인 따뜻한 말 한번, 인사한번 해주지 않았지만, 어느 날 다른 사람이 그곳에 일하고 있으면, 매일 보던 내가 궁금할 것이라는 것을 안다. 사람이란 그런 존재이니까 말이다. 매일 보는 것, 늘 그자리에 있는 것, 그런 것에 마음을 주고 사는 존재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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