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읽고 쓰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라니그람 Jan 16. 2024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는 어떻게 독일문학 비평가가 되었나

유명 비평가의 삶과 나.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사람은 누구나 방황을 하게 된다는 것, 적어도 길을 잘못 들어 헤매는 시간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헤매던 그가 어떻게 자신의 길을 찾았는지를 보면 진행 중인 우리의 인생에서도 힌트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전쟁이 끝나고 독일에 대한 공포가 차츰 사그러들고, 유대인들이 서서히 자유를 되찾아갈 무렵, 작가는 그토록 좋아했던 독일 문학과 관련된 일을 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폐허가 되어버린, 그것도 독일과 적대감정이 있고, 사상적으로 공산주의가 지배적이었던 폴란드에서 독일문학과 연관된 일을 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그가 전쟁 직후 폴란드 군인이 되었던 것은 이해할만한 일인 것 같다. 먹을 것도, 입을 것도 없어 굶주리던 때에 적어도 군인이 된다면 생존해나갈 수는 있었을테니까 말이다. 그리고 그는 독일에 맞선 행동을 하는 것이 최소한의 도리라고 여겼다고 한다.


그렇게해서 그는 군인이 되고, 독일어라는 외국어 능력을 갖추었기에 그는 해외에서 활동하는 비밀요원이 되었다고 한다. 여기서 재밌는 점은, 그가 비밀요원으로 활동할 때에, 자신의 성이 '라이히Reich'라는 것이 '제3제국 Das dritte Reich', 즉 나치 시대의 독일을 연상시켜서, 라이히 뒤에 폴란드 느낌의 '라니츠키'를 붙여서 쓰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임시로 쓴 것이었는데, 그게 영영 그의 성이 되어버릴 줄은 몰랐다고 한다. 그의 성이 쓸때마다 참 길어서 좀 더 짧으면 좋았겠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사연이 있었다니 재밌다.


다시 비밀요원이야기로 돌아가서, 전쟁이 끝난 뒤였기에, 군인으로서도, 비밀요원으로서도 특별히 중요한 할일은 없었다고 한다. 영국 런던으로 파견되어 그는 오랜만에 연극과 음악회를 볼 수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특별히 자신의 임무가 있는 것 같지 않았기에 그 일을 그만둘 것을 요청하고, 그것으로 당에서는 변절자로 찍혀서 감옥에 가기도 한다.  그는 감옥에 수감되어 있었던 시간 동안에 생각할 시간을 갖고, 오랜만에 독일문학을 읽게 된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이 진정 무엇을 좋아했는지를 다시금 되새길 수 있었다고 하는데, 그것이 바로 독일 문학이었다.  


별다른 재판이나 수감생활 없이 풀려나긴 했지만, 그뒤에도 한번 변절자로 낙인찍힌 그는 사회생활에서, 그리고 직업적인 면에서 제약이 따랐다. 당에서는, 당을 떠나는 그였지만, 굶주리진 않게 하기 위해 최소한 직업을 가질 수 있게는 해주었다고 한다. 어떤 일을 원하느냐는 질문에 그는 독일 문학과 관련된 출판사에서 일을 하고 싶다고 하고, 이는 질문자를 황당하게 했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그는 국방부 소속이면서, 일반 대중문학도 출판했던 출판사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그가 그 출판사에서 일을 하면서 동료의 요청으로 독일작가에 대한 짧은 글을 쓸 기회가 있었는데, 그것을 읽은 동료는 그에게 왜 비평가가 되지 않느냐고 했다고 한다. 그 말을 듣고 그는 독일 문학에 대해 비평글을 써서 폴란드의 주간신문에 기고했고, 그 신문은 그의 글이 맘에 들어 계속 글을 실어주었다. 그렇게 그는 비평가로서의 글쓰기를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독일 문학에 대해 많은 글을 써나가던 그는 점점 독일 문학 비평가로서 명성을 얻게 되고, 그로 인해 어느 출판사로부터 독일문학을 담담하는 부서장으로 스카우트 제안을 받는다. 그리하여 그는 기존에 하던 일을 그만두고 이직을 결심하지만 이것은 공산당으로 부터 승인받지 못한다. 다시 기존의 직장으로도 돌아갈 수 없게 된 그는 결국 실직자가 되고, 직업이 없어진 상태에서 계속 기존에 하던 비평일을 계속 했다고 한다. 직업은 없지만 그는 결국 하고 싶었던 일을 하게된 셈이다. 아직 읽지 않은 부분이지만 독일에 적대적인 폴란드에서 그는 독일문학비평가로서의 삶을 오래 지속하기는 힘들었을 것 같다. 머지않은 미래에 그가 독일로 다시 돌아가고, 그곳에서도 비평가로 일을 계속해나갈 텐데, 그 일이 어떻게 풀렸는지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의 삶에서 보면, 하고 싶은 일을 꾸준히 하다보면 사람은 어떻게든 자신의 길을 찾게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꾸준히'이며, 좀 더 중요한 것은 그것을 아주 깊이 파고들어야만 한다는 점인 것 같다. 유년시절의 그가 어떻게 독일문학을 읽고, 독일 연극공연, 음악공연을 보았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 그는 마치 그에게는 독일 문학, 음악이 전부인 것처럼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그것들을 위한 시간과 기회를 마련했다. 그것은 그가 그것을 진정으로 좋아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그의 삶을 나와 비교하면서 읽을 수밖에 없게되는데, 나같으면 적당히 좋아하고 말았을 것을, 자신의 모든 총력을 동원하여 좋아하는 것에 집중하던 그를 보며, 어떻게 그것이 가능했는지 궁금해진다. 나는 나의 것을 충분히 좋아하지 않아서 잘 안되었던 것이었을까? 그래서 진정 좋아하는 것을 찾아야 했던 것일까, 아니면 나의 집념이 부족했던 것일까. 아니면 나는 내 주변의 어지러운 것들로 쉽게 방해를 받는 인간이어서 집중을 하지 못했던 것일까. 나는 책 읽고 글을 쓰는 시간도 좋아하기는 하지만, 한동안 이렇게 지내다보면 '밖에 나가고 싶다'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책을 통한 사유를 좋아하던 만큼, 세상과의 소통도 좋아하니까 말이다.


책상에서 책에 집중하고 있다보면 문득 예전에 한문학을 계속 공부하기 위해 대하교 졸업 후에 고전번역원에 다니던 때의 느낌과 겹쳐진다. 한학기를 다녔을 뿐이지만 성적이 좋았다. 그 일을 계속 했더라면 뭐라도 됐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책상에 앉아 있는 것이 갇힌 것만 같은 느낌이 싫었다. 내 마음 속에 출렁이는 무언가가 나를 사진으로 이끌었다. 결국 사진의 세계에서도 나는 '무언가'가 되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나는 한문을 좋아하던 만큼 사진이 좋고, 음악도, 춤추는 것도, 운동도 좋아하던, 나는 말하자면 잡다한 것에 관심이 많던 사람이었다. 좋아하는 만큼 나는 잘하기도 했는데, 그랬기에 나의 관심은 끊임없이 정적인 것에서 동적인 것으로, 동적인 것에서 다시 사람과의 관계로, 거기서 다시 나의 내적으로 향하면서 순환하였다. 그것은 어느 한 곳으로 집중되어 에너지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아직까지 나는 뭐가 문제인지 모르는 상태로 머물러 있다, 즉

난 아직도 '유보상태'이다. 아직도 뭘 좋아하는지 잘 모르겠다. 사실 좋아하는 무언가를 찾아야한다는 것이 피곤하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성공한 누군가와 평범한 나와의 삶을 비교하는 것 자체가 의미없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나는 그저 범인인 것을.


너무 넓고 깊은 것에 대해 생각하지 말고, 하루하루 내게 주어진 것에 집중하자고 다시 마음을 다독여본다. 나도 멀리서 보면 조금씩 작은 걸음을 만들어가고 있는 것인지 누가 알랴.


#나의인생

#독일문학

#독일어원서

#원서읽기

매거진의 이전글 그들이 나를 구한 것은 동정, 선의, 인간됨에 기인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