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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니 Oct 27. 2024

행동이 곧 웅변이다

당신의 좌우명은?

“좌우명이 무엇인가요?” 누군가 이런 질문을 한다면?


참으로 곤란하다. 나 역시 그러했다. 좌우명이 없을 수도 있고, 좌우명이 있다고 하더라도 뭔가 있어 보여야 할 것 같은 불안함이 들 수도 있다는 점에서 더더욱. 그렇다면 다행인 것일까? 지금은 하나의 문장에 천착했으니 말이다.


처음 만난 이들과 나의 대화는 보통 이런 패턴을 따른다.

  

    어디 사세요? 저요? 룩셈부르크에 살아요.  

    무슨 일 하세요? 한국어를 가르쳐요.  

    어디서요? 집에서요. 카페에서요. 학교에서요.  

    누구에게요? 주재원 자녀들에게요? 아니요. 외국인들에게요.  


룩셈부르크에도 한국어를 배우는 사람이 있어요? 아, 그 전에, 룩셈부르크도 나라였나요? 크라잉넛 노래 말고는 아는 게 없어서. 룩룩룩셈부르크. 그러다 보면 예외없이 이 질문을 마주한다. 어쩌다 한국어를 가르치게 됐어요?


그 이야기는 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내 좌우명이 된 문장을 온몸으로 실현한 그날로 말이다.


룩셈부르크로 오기 전 1년 반 정도 프랑스에 살았다.


당시의 나는 서른 살을 앞두고 있었고 갑작스럽게 한국을 떠나, 갑작스럽게 프랑스로 왔다. 어렸을 때부터 항상 서른 살은 외국에서 보내야겠다는 막연한 꿈이 있었다. 잠깐의 시간만 외국에서 체류하는 게 아니라, 정말 서른 살 1년을 통으로 외국에서 보내야만 할 것 같다는 본능 때문이었다.


프랑스에 와서 6개월쯤 지났을 때였다. 자발적인 이방인이 마주한 고독감은 생각보다 상상을 뛰어넘었다. 프랑스어로 원활한 소통이 되지 않기 때문이었다. 갓난아이에 불과한 실력을 갖춘 성인이 설 사회의 자리는 쉽게 찾아지지 않았다. 그럴수록 나는 영어에 의지했고 프랑스어가 더욱 낯설어졌다. 모국어인 한국어가 사무치게 그리웠다.


그때의 나를 구제한 것은 하나의 행동이었다. 옷을 입고 현관 앞까지 가면서 그 짧은 순간에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지금 나는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 → 나아지고 싶다 → 해결하자.

그렇다면 생각해보자. 나는 언제 덜 괴로운가? 글을 쓸 때. 언어를 배울 때. 친구들과 대화를 나눌 때. 일을 할 때.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때.


그럼 프랑스에 사는 한국인으로서의 지금의 내가 지금 해낼 수 있는 건 무엇일까? 


한국어도 사용하고, 프랑스어도 활용할 수는 없을까. 도움이 되는 일은 없을까? 내 부족한 능력일지라도 필요로 하는 이가 있다면? 누구일까?


그러다 문득 나는 그래, 프랑스인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자, 고 다짐했다.


곧장 다시 방으로 돌아와 나를 소개하는 영상을, 코트도 벗지 않고 그 자리에 앉아 몇 시간 동안 찍었다. 행동으로 웅변을 펼치기까지 걸린 시간은 채 2분을 넘기지 않았지만 그 행동의 여파는 2년 이상 이어지고 있다.

언어로 인해 극심한 고독에 빠졌던 나를 구하기 위해서, 동시에 고맙게도 나의 언어를 배우려는 외국인들을 외롭게 두지 않겠다 결연한 사명감을 품었다. 밤낮없이 한국어를 공부하고 또 공부했다. 프랑스에 와서 한국어를 공부하고 있는 모습이 어쩐지 아이러니했지만, 어쩌면 이럴 운명일지도 몰랐다.



프랑스어를 배우고 한국어를 가르치며 두 언어를 오가는 일 말이다.


덕분에 모국어가 주는 커다란 해방감과 외국어가 주는 단단한 유대감을 느끼고 대화의 참맛을 느끼며 산다. 사람 사이에 놓인 관계가 말과 글로 인해 두터워지기도, 얇아지기도 하는 과정을 겪으면서 언어로 인한 기쁨과 슬픔을 예민하게 감각하는 일, 행동하지 않았으면 몰랐을 테다.


그렇기에 요즘의 내게 누군가가 좌우명을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답하곤 한다 "행동이 곧 웅변이다"

행동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행동이 최고의 말이다, 어쩌면 상투적일 수 있는 이 표현은 셰익스피어의 희곡 <헨리 8세> 에 등장한다. 나의 가장 친한 친구는 이 좌우명을 왼쪽 가슴에 새겼고, 나는 오른쪽 손목 근처에 새겨볼까 고민 중이다. 언제나 보고 언제든지 상기시킬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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