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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니 Oct 27. 2024

왜 나를 선택했어?

한국어를 배우는 당신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내가

어제오늘, 새로운 학생들과 수업을 했다. 한국어를 같이 공부하고 싶다는 연락을 받을 때면 설렘과 동시에 긴장이 된다. ‘이 사람은 누구일까? 어떤 이야기를 나누게 될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 한국어를 배워서 함께 대화를 나눌 준비가 되어 있다니, 정말 고맙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왜 나와 수업을 하고 싶었을까? 내가 이 학생의 기대를 충족시킬 수 있을까? 혹시나 이들의 열의를 꺾지는 않을까? 한국에 대한 나쁜 이미지를 주는 말과 행동을 하지는 않을까?’ 등의 생각도 하게 된다.


내가 한국어를 가르친 지 이제 고작 3년 차이지만, 그동안 만난 외국인 학생들의 수는 50명을 훌쩍 넘는다. 꾸준히 공부한 학생뿐만 아니라 스쳐 지나간 학생들까지 모두 합치면 100명이 넘는다고 말하고 싶지만, 다소 과장된 인상을 줄까 봐 참아본다. (하지만 결국 이렇게 쓰고야 말았다.) 50명을 기준으로 할 때, 학생들을 만날 때마다 내가 꼭 하는 질문이 있다. “많은 선생님들 중에 왜 굳이 저와 수업하고 싶으셨어요?” 그럴 때면 학생들이 조금 당황하거나 멋쩍은 웃음을 짓는다. 목적이 그들을 난감하게 하려는 게 아니기에 나는 항상 이렇게 덧붙인다. “개인적으로 궁금해서 그래요! 대답 안 하셔도 돼요. 하지만 알면 제가 00 씨가 어떤 걸 기대하는지 더 쉽게 파악할 수 있어서요. 더 잘해보고 싶어요.” 그러면 학생도, 나도 한숨 돌린 후 “진짜”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알아가는 대화를 나눌 수 있다. 목적을 정확히 파악해야 학생의 기대에 부응하는 수업을 해나갈 수 있다. 학생이 시간과 돈을 투자해 한국어를 공부하는 이 순간에 조금 더 책임지고 싶은 마음이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내 소개 글이 인상 깊어서 나를 선택했다고 말한다. 지금 보시다시피, 나는 글 쓰는 것을 좋아하기에 내 소개 글도 열심히 또 길게 작성했다. 한 학생은 너무 길어서 이틀에 나눠 읽었다고도 했다. 대충 훑어보려 했는데, 내가 쓴 긴 소개 글을 보고 ‘이거 좀 여유가 있을 때 집중해서 읽어야겠군’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조금 민망했지만, 이 구구절절한 소개 글을 흥미롭고 인상 깊게, 궁금하다고 생각해준 학생들 덕분에 부끄러움을 곧 잊고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일 용기를 얻는다.


아래는 내 소개 글의 일부를 발췌한 것이다.


그 이유가 무엇이든, 한국어 공부에 관심을 갖고 저를 찾아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합니다. 제 소개 글에 덧붙이고 싶은 말이 있어 추가합니다. 어쩌면 이건 정말 개인적이고 지나치게 감성적으로 보일 수 있겠지만, 저를 잘 보여줄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저는 한국인으로서 한국어를 잘하는 것이 자랑스러운 일이라는 것을 최근에서야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한국 사람이라면 당연히 잘해야 하는 한국어지만, 어느 순간부터 국어 능력은 사회에서 외면받는 현실에 직면했고, 저의 능력은 빠르게 돌아가는 현대사회에서 ‘무가치한 것’으로 치부되곤 했습니다. 이는 불평이 아니라, 제가 자라온 환경에서 느낀 그대로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K팝이나 한국 드라마 덕분에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많은 외국인 학생들이 한국어를 찾고, 그 덕분에 몇몇 한국인들은 한국 내에서가 아닌 외부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아갑니다. 이는 내가 가진 능력이 결코 ‘무용한 것’이 아님을 확인할 수 있는 감동적인 순간들입니다.


프랑스의 상황이 어떨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언어 능력이 가끔 당연한 것으로 치부되거나, 뛰어난 문학 애호가들의 전유물로 여겨지는 경우가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상황에 의문을 품었습니다. 누구나 자연히 갖게 되는 ‘모국어’ 덕분에 우리는 소통할 수 있지만, 단순히 언어를 할 수 있다는 것이 ‘진정한 소통’은 아니니까요.


소통은 언제 이뤄지나요? 그것은 내가 생각하는 바를 편안한 환경에서 적확한 언어로 표현할 때 가능해집니다. 물론 비언어적인 표정과 몸짓도 포함됩니다. 여기서 제가 프랑스어를 배우게 된 이유를 조금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지금까지는 아마 합리화를 하려고 이유를 만들었을지도 모릅니다. 발음이 예쁘다거나, 영화를 전공한 학생으로서 프랑스 영화를 많이 봤기 때문에, 혹은 프랑스 여행을 자주 하면서 문화에 빠졌기 때문이라는 등의 이유들입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니, 저는 꽤나 철학에 관심이 많은 학생이었습니다. 한국의 대학교에서 공부할 때 우연히 프랑스에서 박사 과정을 마친 철학자를 만났고, 그 선생님의 수업을 3년간 들었습니다. 그 청산유수처럼 흘러나오는 말,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논리적으로 전개되는 사고과정, 그리고 적확하게 내뱉어지는 단어들이 저를 설레게 만들었습니다. 이후 선생님과 여러 차례 수업 후 개인적인 이야기를 나누었고, 20대 초반의 학생들이 그렇듯 저도 고민 상담을 자주 했습니다. 선생님은 제게 항상 ’욕망을 포기하지 말고 쫓아라.’라는 말과 ’너는 프랑스와 잘 맞겠다.’라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그 말은 제가 졸업 후 회사 생활을 5년간 하면서도 내내 제 안에서 자라났고, 이를 이유로 삼아 프랑스어를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나는 한국이 많이 미웠습니다. 글 쓰는 것도 좋고, 어떤 주제에 대해 ‘그건 왜 그런지’,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나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등 서로 알아가고 싶었지만, 이런 모든 것들이 모국어인 한국어에서 일어나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내가 겪어온 30년간의 한국 사회에서는 ‘위계질서’로 인해 자유로운 소통이 불가능했습니다. 나이에 따라, 성별에 따라, 사회적 위치에 따라 마치 한국어는 화자에 따라 어체를 선택하듯이, 태도를 선택해야 하는 게 너무도 당연했기에, 나는 내 강점을 발휘하지 못하고 입을 다물어야만 하는 상황들이 자주 있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프랑스에 왔습니다. 물론 어느 정도 환상을 가지고 왔을 것입니다. 프랑스어를 잘하지 못하면서도 소통하고자 하니 쉽지 않았습니다. 언어를 이용한 소통을 그토록 중요하게 생각하면서도 말입니다. 처음 3개월은 많이 힘들었습니다. 저와 비슷한 이유로 한국에서 프랑스로 이주한 친구들과 비교도 했습니다. 대부분 목표가 있었습니다. 학교에 다니거나, 특정 직업을 구하려는 등.


반면 나는 참 모호한 목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내가 가진 이 거대한 의문을 풀고, 결핍을 해소하며, 프랑스어로 더 많은 사람과 소통하겠다!’라는 목표였습니다. 아마 ‘소통’과 ‘말하기’에 초점을 맞추었기 때문에, 비록 아직도 부족하고 문법적으로 실수가 많지만, 1년 사이에 비약적인 성장을 이뤘습니다. 그때 만난 친절한 친구들이 저를 많이 도와주었습니다. 말도 제대로 못하는데도 대화에 끼워주었거든요. 한국에서는 언어를 자유롭게 구사하면서도, 말하지 못했던 환경에서 온 저에게 그들의 호의와 도움은 큰 힘이 되었습니다. 덕분에 프랑스어 실력이 늘어가며, 그들과 다양한 주제로 소통할 수 있었습니다.


다양한 주제에 대해 내 시각으로 이야기한다는 건 정말 멋진 일입니다. 옳고 그름의 문제도 아니고, 내가 잘났느냐 못났느냐의 실력의 문제도 아닙니다. 내 시각은 분명 다른 사람과 조금이라도 다를 것이고, 특히 다른 문화권의 사람과 이야기할 때는 그 차이를 극명히 느낄 수 있습니다. 결국 나를 돌아볼 수 있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이질성만이 발전을 낳는다는 말처럼요.


이야기가 참 길었습니다.


결론적으로 지금 하고 싶은 말은 저 역시 이유가 어찌 됐든 프랑스어를 배우기 시작해 1년 만에 원어민들과 최소한의 대화가 가능해졌고, 그 과정에서 참을성 있는 친구들을 만났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여러분을 만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2년 전에는 상상하지 못했던 일입니다. 물론 그때도 영어권 학습자들과 아시아권 학생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쳤지만, 프랑스어권 학습자들은 저에게 완전히 다른 의미입니다. 제가 뒤늦게 성인이 되어 자발적으로 선택한 언어를 모국어로 하는 이들과 수업 시간에 불어와 한국어로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은 저를 숨 쉬게 합니다. 이러한 감정이 저를 성장시킵니다.


여러분 중 누군가 저와 비슷하다면, 좋은 선택을 했다고, 공부하는 과정에서 어려움과 스트레스를 겪더라도 그 단계를 넘어서서 오래도록 끌고 갈 힘을 가질 수 있다고, 열렬히 지지하고 싶습니다. 할 수 있습니다! 동기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제는 그 동기를 가지고 시작해서 그 여정 중에 다양한 한국 사람들과 더 확장해 아시아 사람들을 만나면서, 그들의 모국어를 배우고 내가 당연히 여겼던 나의 사회와 가치들이 특별한 면을 지녔음을 발견하는 것이 참 즐거울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프랑스어 학습을 통해 생긴 의문을 해결하는 데 참고할 자료가 너무 많다는 것이 때로는 혼란스럽기도 합니다. 오늘날에는 인공지능 챗봇도 많으니 쉽게 정보를 찾을 수 있지만, 이게 맞는지, 정말 자연스러운지, 지금 이 시간에 집중해 내 언어로 흡수해도 되는지 고민하게 됩니다. 그러다 보면 시간이 훌쩍 지나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수업 시간에, 학생들 개개인이 얻고자 하는 요구에 더 빠르고 안전하며 집중할 수 있는 단순한 방법들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그것이 자료일 수도 있고 대화의 주제일 수도 있습니다. 이는 수업 시간에 이야기하며 정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언어는 사용하기 위해 존재하니까요. 실력을 떠나, 실수를 하더라도 대화를 시작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저에 대한 설명이 조금 더 되었기를 바라며, 한국어에 관심을 갖고 이 멋진 여정을 시작하려는 여러분께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여러분의 여정에 제가 작은 등불이 되기를 기대하며 응원합니다.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대개 나와 성향이 비슷한 학생들이 나를 찾는다. 그들과 나는 언어에 대한 공통된 관점을 공유하는 경우가 많다. 대화를 해보면 쉽게 느낄 수 있다. 모국어를 가진 이가 성인이 되어 자발적으로 외국어를 배우면서 겪는 혼란과 고통, 기쁨과 기대는 비슷하다. 모국어가 당연하지 않게 느껴지는 순간을 외국어 덕에 깨닫게 된다. 외국어를 배우면서 모국어를 되돌아볼 여유도 생긴다. 한국어를 배울지, 프랑스어를 배울지, 영어를 배울지, 일본어를 배울지는 사실 목표로 삼는 외국어의 종류만 다를 뿐이다. 이런 내 생각을 이해해주고 공감해주는 학생들과의 대화는, 과거의 나를 돌아보게 하고 오늘의 나를 성장시키며, 미래의 나의 삶을 일구는 데 큰 힘이 된다. 그들에게도 내가 비슷한 역할을 해줄 수 있기를 희망한다. 나를 찾아주는 학생들 덕분에, 한국어를 가르치면서, 한국어를 더 잘 가르치기 위해 한국어를 공부하면서, 더 잘 설명해주기 위해 영어와 프랑스어를 공부하면서, 결국 한국어에서, 프랑스어에서, 영어에서, 언어의 한계에서 벗어나는 게 가능하다는 걸 알게된 지금의 내가 건네줄 수 있는 것? 그것을 어떻게? 이건 이제 교사로서의 뾰족한 전문성을 발휘해야 하는 영역이다.


글을 마무리하며 스케줄러를 확인한다. 수업이 몇 개가 있는지, 누구를 만나는지 확인한다. 미소가 지어진다. 귀인을 만나러 간다는 생각으로 수업 준비를 한다. 서로가 서로의 언어를 통해 ‘언어’에서 해방될 시간이, 오늘도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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