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분 짜리 영상으로 얼리어답터가 된 사연
3개월 전쯤이었을 것이다. 문득 노션(Notion)이라는 도구를 배워보고 싶어졌다.
노션이 생산성과 조직력을 높여준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지만, 막상 써보려고 할 때마다 뭔가 모호하고 답답했다. 이번에는 제대로 익혀보리라 결심하며 스케줄러에 ‘노션 배우기’를 적어놓고 며칠을 묵혀두었다. 그러다 기분이 꽤 괜찮은 하루의 끝에 노션을 켜고 손을 대기 시작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니 일단 해보는 게 낫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여러 유튜브 영상을 보고, 노션으로 제작한 샘플들을 훑어보다 보니 점점 아득해지기 시작했다. 잠깐 재미를 느끼기도 했지만, 쏟아지는 낯선 용어들과 ‘쉬워 보여 더 당황스러운’ 조작법에 심장이 쿵쿵대고, 손끝은 차가워지기 시작했다. 결국 노트북을 덮으며 혼잣말을 했다. “맞아. 나는 원래 기술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지.”
마음에 돌덩이가 짓누르는 듯해서 답답했다. 몇 번의 가벼운 시도 끝에 금방 포기했던 과거, 노션과의 악연이 다시 떠올랐다. ‘맞아, 그때도 비슷했을 거야. 그래서 그만뒀었지.’라는 생각이 스쳤다. ‘그냥 구글 Docs나 더 잘 활용할 걸. 괜히 생산력을 높이겠다고 하다가 시간도, 에너지도, 의욕도 전부 다 잃어버린 것 같군.’ 자책하며 눈을 감았다. 남들은 다 잘하는데, 왜 나는 이렇게 어려운 걸까? 속상했던 밤, 아마 나는 살짝 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노션으로 대표되는 ‘기술’과 나 자신에게 져버린 분노로 점철된 밤이었다.
나는 아날로그를 좋아하는 사람, 종이와 펜을 들고 수기로 글을 쓰는 나 자신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더 깊이 들여다보면, 사실 나는 기술에 가까워지고 싶은 욕망에 조바심을 내고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아마도 그래서 더욱 성급히 판단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기술과는 거리가 멀다.”고. 한계를 지음으로써 그 안에서 편히 머무를 수 있었으니 말이다.
나는 익숙한 것을 더 잘하려는 주의였다. 편하고 익숙한 것에 안주하면서 그것을 잘 해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여겼다. 그러나 동시에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더 다양한 결과를 내고 싶어하기도 했다. 그 마음을 과연 언제부터 외면해 왔을까?
기술에 대한 관심이 지하실에서 걸어나와 지상에서 따뜻한 햇살을 쬔 날을 돌이켜본다. 지하실의 문은 “노션을 사용해볼 생각이 있어요?”라는 말에 곧장 열렸다. 엘리엇 팀원인 토리가 내게 건넨 질문에 나는 “해보려고 했는데 잘 안 되네요.”라고 답했다. 그러자 토리는 “생각보다 간단해요. 제가 알려줄게요!”라며 흔쾌히 나섰다. 나는 깜짝 놀랐다. 지구 반대편에 사는 탓에 나는 잠들었지만, 토리는 여전히 같은 날에 노션 사용법을 찍어 보내왔다. 이렇게 곧바로, 정성껏 애써서 알려줄 줄은 상상도 못했다.
토리가 보내준 영상은 자신이 자주 사용하는 핵심 기능들만 뽑아낸 2분 남짓한 짧은 영상이었다. 그걸 눈으로, 머리로, 손으로 익히는 데는 2일, 아니 2주 정도가 걸렸다. 인트로의 첫 문장, “안녕하세요, 보니님” 하던 목소리의 톤과 리듬이 생생하게 떠오를 정도였다. 이제 나는 노션 없이는 못 사는 상태가 됐다.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다. 챗GPT나 유튜브, 검색엔진을 통해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정보를 찾을 수 있다. 그래서 나를 ‘핑거프린세스’라고 놀릴 수도 있을 테지만, 핑거프린세스는 혼자서 손가락을 놀리다 지쳐버려, 눈과 귀밖에 남지 않은 상태였다. 그런데 그 눈과 귀로 담을 정보의 대상이, 나를 알아주고, 나의 상황을 이해하며, ‘시도부터 해보자’라고 말하는 사람이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점에서 나는 참 운이 좋았다. 주변에 늘 도움을 주는 사람들이 있으니 말이다.
또 다른 팀원 타로도 노션 사용법을 글로 정리해 공유해 주었다. 노션을 사용하다가 고민이 될 때마다 나는 타로의 노션 사용법 노트를 참고한다. 팀원들이 작성해 놓은 노션 문서들을 돌아보며 내 것으로 소화시킨다. 그러면서 우리 팀에서 시도해볼 만한 다양한 프로젝트 아이디어를 놓치지 않고 잘 정리해 팀원들에게 공유한다.
누군가에겐 별거 아닐 수 있는 일이다. 노션이 나온 지가 언젠데, 유저도 얼마나 많은데. 늦었다고, 하고 지나칠 수도 있다. 하지만 나 같은 사람도 있다. 아날로그를 좋아하고 잘하면서도 항상 기술적인 +1을 갈구하는 사람, 기존의 것을 버리는 게 아니라 그 장점을 더 극대화할 수 있는 기술을 원하는 사람 말이다.
관점에 따라 핑거프린세스로 불리던 누군가가, 이제는 유려하게 손가락을 놀리며, 스스로 ‘얼리어답터’라는 완장을 차고 다음 도약을 준비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완장을 찬 자, 다른이에게도 채워주자.
“이걸 할 수 있다면, 다른 것도 할 수 있지 않을까?”
노션 사건을 통해 ‘얼리어답터’라는 완장을 찬 나는 점점 더 다양한 도전들을 하게 됐다. 홈페이지 제작, 영상 마케팅, 프로그램 기획, 디자인 등 새로운 세계가 내 앞에 펼쳐졌다.
커리어적인 면에서도 수확이 뚜렷했다. 기존에 만들어 놓았던 많은 워크시트와 소교재들을 하나로 종합하고, 내 이름을 넣은 교재를 묶어냈다. 이 과정에서 계속해서 교재의 퀄리티를 높이기 위해 적합한 문장 데이터를 고민하며 기존에 나와 있는 교재들을 낱낱이 분석하고도 있다. 배움의 선순환이 발전으로 이어지고 있는 지금을 과거의 나라면 감히 상상이나 했을까? 선뜻 “네”라는 답은 나오지 않는다.
나와 같은, 혹은 비슷한 한국어 선생님들은 혼자서 일을 하는 경우가 많다. 자본력이나 커뮤니티의 부족으로 혼자 모든 걸 해결해야 하는 어려움에 직면한다. 이런 상황에서 도움을 구할 사람도 적고, 기회도 부족하다 보니, 나처럼 쉽게 지치거나 “내가 잘못하고 있는 건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하지만 내가 경험한 바에 따르면, 이런 흐름은 전혀 이상하지 않다. 모든 것을 혼자서 스스로 해결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단순이 나와 맞지 않는 것들이 있기 마련이다. 그것이 나의 능력 부족으로 직결되지는 않으며 그렇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럴 때일수록, 그 장애물을 치워줄 수 있는 사람들을 찾아 함께 해보는 것도 방법이다. 마치 내가 노션 사용을 여러번 시도하다 실패하고 좌절했을 때, 우연히 또 운명적으로 나타난 동료들의 선의에 한계를 부수고 나아가려고 노력해본 것처럼 말이다. 그들의 자상함과 나에 대한 믿음이 큰 차이를 만들었다. “어렵지 않으니 이것부터 해봐. 할 수 있어.” 그 따뜻한 말 한마디와 정성스러운 행동이 별 거 아니었다고 말하는 동료들에게 나는 이렇게 말한다. 네겐 작은 조약돌이었을지라도 내게는 커다란 디딤돌이 됐다고. 그리고 크기에 상관없이 무언갈 나서서 나눠줘서 고맙다고.
공교롭게 이번에 우리 팀에서 기획한 프로그램이 나의 상황과 맞아떨어졌다. 한국어 선생님들을 대상 기획한 ‘자신만의 교재 만들기 프로그램’에 벌써 몇 명의 한국어 선생님들이 모였다. 우리는 감동을 넘어서 감격했다. 그리고 우리가 가진 잠재력과 진심을 보여줄 수 있는 때가 온 것에 무한 감사를 보냈다.
우리 팀은 한국어 교사들이 자신만의 길을 찾고, 자신감을 가지고 나아갈 수 있도록, 그들이 전문성과 자부심을 느끼며 커리어를 확장해 나갈 수 있도록, 우리가 어떻게서든 도울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에 기반한 꿈을 품고 있다. 엘리엇을 통해 좋은 데이터 말뭉치를 기반으로 자신만의 교재를 만드는 데 선생님들이 더욱 자신감을 가질 수 있도록, 그동안 해보고 싶었는데 뭔가 어딘가에서 자꾸 막혀서 번번히 포기하다 역시 이길은 내 길이 아닌가? 나는 안 되나? 라는 편견을 가질 새도 없이 이게 되네! 하는 자신감과 함께 도약할 수 있도록, 옆에서 최선을 다해 도울 것이다
‘얼리어답터’라는 완장을 힘차게 두드리며 내가 해낼 수 있고, 해내야만 하는 일들에 더 큰 책임감을 덧대어본다. 동료들이 채워준 이 완장의 의미는 그런 것일테니까.
그리고 누구에게라도, 내 경험담이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