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맞춤형에 주목해야하는 이유
“선생님, 우리 무슨 책 쓸 거예요?”
수업이 시작될 때마다 받는 질문이다. “쓰고 싶은 책이 있어요?” 하고 물어보면, 대부분의 학생들은 “아니요, 아무거나 괜찮아요.” 혹은 “저 이 책 있는데요.“라고 대답한다. 하지만 학생들의 반짝이는 눈빛을 보면, 그들이 새로운 교재 혹은 자료집을 기대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이 지점에서부터 교재 선택의 고민이 시작된다. 나는 교재를 수업의 길잡이로 삼되, 수업의 전부가 되지 않도록 애쓰고 있다. 수업에 들어갈 때마다 오늘의 학습 목표와 학생들의 필요를 어떻게 결합할지 고민한다. 예를 들어, 오늘은 이 챕터를 끝내야 하니 특정 문법과 어휘를 가르쳐야겠다고 마음먹는다. 책에 있는 기본 어휘는 학생들이 자습할 수 있도록 하고, 그 어휘들과 관련된 더 많은 표현을 한꺼번에 익힐 수 있도록 따로 자료를 제작해 수업 시간에 함께 다룬다.
나는 수업 시간 내내 정말 바쁘다. 학생들이 던지는 질문을 귀담아 들으면서 동시에 타자를 치고, 적절한 자료를 검색하며 필요한 예문과 설명을 찾아낸다. 그래서 매 수업마다 남기는 메모와 노트가 몇백 페이지에 이를 정도다. 그때마다 이런 자료들을 모아서 교재로 만들어 볼까 생각한 적도 수없이 많았다. “이 자료들을 모으기만 해도 교재가 되겠는데?” 하고 생각한 적도 있다. 하지만 문법 내용은 같을 수 있어도, 모든 예문이 각기 다른 학생에게 맞춤화되어 있다. 한 학생에게는 흥미로운 예문이 다른 학생에게는 전혀 공감되지 않을 수 있다. 그래서 잠시 반짝였던 아이디어는 힘을 잃고 만다. 더불어 일반적인 교재가 단순한 구조를 가질 수밖에 없는 이유도 이해하게 된다.
세종학당 교재를 최우선으로 두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그 교재들은 전문가들이 오랜 시간 동안 고민하고, 다양한 학습 환경과 학습자를 고려해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그들이 가진 경험과 노하우가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까지 내다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세종학당 교재가 모든 학생에게 맞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더 나은 교재를 찾아 나서면서도, 동시에 완벽한 교재는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 깨달음은 나를 마음 편하게 만든다. 내가 모든 학생을 절대적으로 만족시킬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나면, 오히려 더 자유로워진다. 내 부족함을 받아들이고, 그 빈틈을 채우기 위해 노력할 수 있게 된다. 남들이 닦아놓은 길의 소중함을 알게 되고, 그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찾게 된다.
모든 이의 기대를 충족시킬 수 없다는 점을 받아들이면 마음이 오히려 가벼워진다. 나 역시 모든 학생을 완벽하게 만족시킬 수 없음을 인정하면서, 그 한계 속에서 최선을 다하는 방법을 모색하게 된다.
그래서 내 학생을 위한 맞춤형 자료를 만든다
얼마 전, 슈퍼마켓에서 장을 보다가 예상치 못한 경험을 했다. 계산대에서 물건을 담으며 “아우, 무겁네…” 하고 혼잣말을 했더니, 점원이 “무거워요? 어떡해요?”라며 한국어로 말을 건넸다. 깜짝 놀라 “한국어를 어떻게 배우셨어요?” 하고 물었더니, 드라마를 보면서 배웠다고 했다. 학원 수업은 재미가 없었고, 개인 수업은 적합한 선생님을 찾기가 어려웠다고 말했다. 그 이야기는 내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나 역시 단체 수업과 개인 수업을 하면서 양쪽의 한계를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문득 학생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수업의 한계가 분명한데도 나와 함께해주는 학생들이 있다. 그들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그날 밤, 학생들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00 씨, 오늘 뭐 했어요?” 그러면 하루가 지나기 전에 학생들이 저마다의 하루를 담아, 때로는 오탈자가 섞인 문장을 보내온다. 그 모습이 흐뭇하고, 귀엽고, 대견하다. 그래서 더 잘해주고 싶은 마음이 든다. 그들이 “이 선생님과 공부하면서 시간 낭비나 돈 낭비를 하고 있지 않다”는 확신을 갖고, 성인이 되어 제2외국어로 한국어를 선택한 그들이 그 결정을 후회하지 않도록 해주고 싶다. 그래서 자꾸 뭐라도 하나 더 해주고 싶은 마음이 드나보다.
사실 지난주와 이번 주는 몸이 좋지 않았다. 그래도 침대에 누워 어제의 수업을 곱씹으며 학생들의 질문을 떠올렸다. “한국 선수들은 왜 양궁을 잘해요?”, “한국 사람들은 왜 이렇게 빨라요?”, “한국에는 왜 샤머니즘이 많아요?” 학생들이 던지는 이런 질문들은 나에게 큰 자극이 된다. 그들이 궁금해하는 주제들을 자료로 만들어 정리하고, 교재 목록을 다시 손보며, 원고를 써 내려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