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주초달 Jan 02. 2021

1997, 악몽으로 변한 첫 해외출장

부부행세를 하라니요? 칼 맞겠습니다!

기획실에서 2년여를 근무하다 보니, 어느덧 나는 내 평소 능력의 60% 정도를 사용해도 모든 일에 막힘이 

없는 직장의 신이 되어갔고, 곧 매너리즘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이쯤 되면, 그냥 편하게 직장 생활을 하다가, 어느 정도 나이가 차면 결혼을 하고 그리고 직장인의 삶에서

벗어나, 가정주부로서 가족에게 헌신해야 하는 것이 그때 보통 내 또래 여성들의 삶이었다.

그런데, 나는 그게 이상하게도 싫었다.

결혼이 싫은 것도 아니고, 이 직장을 그만두면 무엇을 해야 할지도 몰랐지만

내 마음속에서는 꼭 이 길 밖에 없나라는 의문이 늘 있었다.

게다가 나는 친구들의 주 관심사였던 화장품이나, 옷. 헤어 스타일,

 요리 그리고 멋내기 등의 대화가 정말 따분했다. 그런 류의 대화는 한번 듣고는 곧 잊어버리곤 해서,

친구들이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사냐고 종종 나를 놀리곤 했다.


직장에서 더 이상 올라갈 수 없는 벽에 다다르고 나니,

나는 솔직히 업무에 흥미를 잃어버리고,

대신 남아도는 시간에 무엇인가를 배워야겠다고 생각하다가, 영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영어를 배워 무얼 할지도 몰랐지만, 가끔 회사에서 해외 영업팀이 외국 바이어와 미팅하는 걸 볼 때,

그게 그렇게 멋있어 보였기에,  혹시나 어쩌면 내게도 저런 기회가 주어지지 않을까라며 상상을 하곤 했다.

영어를 유창하게 잘하는 커리어우먼이라... 얼마나 멋있을까... (주간지...)

나는 VOA(Voice Of America)의 스크립트를 달달 외우다시피 하면서 영어에 빠져 들었다.

지금까지 배우고 경험을 쌓았던 일과는 많이 다른 분야였지만, 내 상상 속에선 이미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며 외국인과의 비즈니스에서 승승장구하는 내 모습이 있었기에, 미래에 대한 두려움은 없었다.

그렇게 일 년이 지났고, 나는 영어로 겨우 내 소개 정도 할 수 있는 수준이 되었다.

그렇게 일 년 동안의 준비를 마치고, 그동안 익숙했던 모든 일과, 쥐꼬리 같았지만 안정적인 소득을 버리고,

 과감히 퇴사를 했다.

나의 이런 결정에, 많은 사람들이 내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얼마나 나를 막으려고 시도했는지 

이루 다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 새로 들어가서 직장생활을 해봤자 몇 년을 더 다닐 건가

- 결혼은 언제 하고 아기는 언제 낳나

- 또 아기를 낳으면 직장생활은 끝이다

- 여자가 직장에서 승진해봤자 얼마나 올라가겠나

- 여자가 벌면 얼마나 번다고


그 당시의 나는, 진짜 젊으니까 할 수 있는 무모하면서도 용기 있는 여러 가지 시도를 했고,

그 당시 여성으로서는 조금은 갖기 힘든 배짱으로 가득 차 있었다. 

다만 가진 것도 없고 배운 것도 부족하지만 내가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지 

보통보다는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을 뿐이었다. 


그렇게 이직을 하고 들어간 무역회사에서, 내가 하는 일은

- 아침 점심 사무실 남자 직원들에게 커피 돌리기

- 아침에 해외에서 온 팩스 과장님 대리님 책상에 갖다 놓기

- 서류 정리 및 전화 응대였다.


일 년이 넘은 말단 직원이었던 내게, 드디어 해외 출장의 기회가 주어졌다.

내 생전 처음으로 한국을 떠나 외국을 나가는 일이기에 

여권을 만들고 비자를 받으면서도, 꿈이 아니길 얼마나 빌었는지 모른다.

내가 외국에 갔다 오기 전까지는 절대로 그 어떤 이유로도

아무 일이 생겨선 안된다고 얼마나 되뇌었는지..


나는 영업부 과장과 함께 중국 상해에 도착해서, 상해 시내에서 유서 깊은

상하이 맨션 호텔에 2개의 싱글룸으로 투숙했다.

고풍스러운 외관에다가 창 밖에는 황푸강이 흐르고 있어서 굉장히 운치 있었고,

특히 밤에는 강에 놓인 다리를 비춘 여러 조명으로 인해

얼마나 멋지고 예쁘던지.. 나는 이게 꿈이냐 생시냐 소리를 지르며

침대 위에서 펄쩍펄쩍 뛰었었다.

브로드웨이 맨션 상하이 (예전이름은 상하이맨션 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좋아했던 나의 생애 첫 해외 출장은 그다음 날 

안 과장의 말로 인해 악몽으로 변해버리고,

한국에 돌아올 때까지 얼마나 신경을 썼는지... 호텔방에서 한국으로 돌아가면

바로 퇴사를 해야 하는지 아니면 어떻게 이 상황을 극복해야 하는지 고민을 했었다.


출장에 동행한 영업부 과장이면서 팀장이었던 안 과장은, 평소 매우 부드러운 성격의 소유자였고

인상도 좋은 편이었기에, 사내 직원들에게는 좋은 상사였었다.


그런데 출장 이틀째인 아침, 조식을 하면서 그가 나에게 말하길,

- 중국에서는 미혼이라고 하면서 혼자 다니면 위험하니, 나랑 부부 사이라고 하고

부부처럼 행동하는 게 좋아요. 길거리에선 팔짱도 끼고요

-!!!!!!!!!!! 왜요?

- 중국은 공산 국가라 외국인 젊은 여자가 혼자 다니면 위험합니다. 

밖에서 칼 맞을 수도 있어요. 그만큼 중국은 위험합니다.

-..... 아 그래요? 저는 그냥 차라리 칼 맞겠습니다.


안 과장의 말은 내가 들어본 말 중에서도 완전 상식 밖의 소리였고 어이없는 요구였다.

진짜 사실이 이럴 거 같았으면, 한국에서 출발할 때 미리 귀띔이라도 해줬어야 하는 거 아닌가?

그랬으면 내가 대리님이나 다른 직원들에게 물어봐서 여러 가지로 대처 방안을 생각했을 수도

있었을 텐데, 이렇게 중국에서 말을 하니 나는 굉장히 당황하기도 했지만 너무 화가 났다. 

안 과장은 내가 영어도 짧고 해외 경험도 없다는 약점을 이용해, 이렇게 해외에서

돼먹잖은 수작을 부리는 거란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그 뒤로 나는 일이고 뭐고, 다 때려치우고 그냥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밖에 없었다.

하지만 겉으로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그날의 일정을 마치고 저녁식사 생각이 없다고 내 방으로

올라가려는데, 안 과장은 나와 같이 오해를 풀자고 했고, 혹시나 그가 내게 사과라도 할까 하는

기대로 근처 식당에서 같이 식사를 했다.

안 과장은 저녁식사를 하면서 맥주를 마셨고, 내게도 권했지만 나는 거절하고

 맥주잔을 뒤엎어 놓은 채,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


- 아니, 내가 미스주를 어떻게 할까 봐 그래? 나 결혼해서 애도 있어, 그거 몰라?

내가 지금 우리 애를 얼마나 보고 싶어 하는데... 내가 미스 주한 테 이런 오해받는 게

너무 억울하네

- 알고 있습니다. 뭐 특별히 그런 생각은 안 했어요 다만 제가 술을 잘 못 마시는 데다가

마시고 실수할지도 모르니, 그냥 안 마시는 게 나을 것 같아서요

그리고 아무리 위험하다지만, 부부행세는 제가 못할 것 같습니다.

차라리 저는 내일 한국으로 돌아갈 테니, 회사에 그렇게 통보를 해주시면 어떨까요?

- 아니, 회사에 이런 일로 우리가 일을 망쳤다고 하면, 서로 안 좋으니까, 

그러지 말고 이제 기분 푸세요

중국이 워낙 위험해서 서로 안전하려고 했던 말이지, 별 뜻은 없었으니, 

이제 그만하고 일이나 잘 마무리하고 갑시다


내 행동에 당황했던 안 과장은 자신의 발언을 합리화하기에 급급했고,

나도 이런 일이 회사에 알려지게 되면, 안 과장보다는 내가 회사를 나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더 이상 문제 삼지 않겠다고 말을 하고는 서로 잊기로 했다.


그렇게 큰 기대를 했었고 반짝거렸던 내 첫 번째 해외출장은, 안 과장의 말로 인해 한순간에 박살이 난 채로 

끝이 나버렸고, 억울하게도 내 귀국길은 마치 패잔병 같은 초라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한국에 돌아와 업무에 복귀를 하고 며칠이 지나자, 사무실 직원들이 나를 대하는 태도가

조금씩 이상해졌고, 근무 태도가 불량하다는 나에 대한 안 좋은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평소처럼 안 과장에게 아침에 해외에서 온 팩스 메시지를 전달해주고 돌아서는데,

그가 나를 불러 세웠다.


- 미스주, 해외영업부에 있은지 일 년이 넘었잖아, 이거 읽고 해석해봐

- 네? 여기서요?

- 이 정도도 해석 못하면, 곤란하지? 큰소리로 해봐.


사무실이 갑자기 조용해졌고, 모든 직원들의 귀가 나와 안 과장의 말에 기울이고 있는 게

확실하게 느껴졌고, 나는 어찌할 바를 몰라 그냥 선 채로 가만히 팩스메시지만 쳐다보고 있었다.


- 빨리 해봐, 이 정도는 기본이잖아!

- 땡스 폴 유어 리플라이... 회신에 감사합니다...

(그 뒤로는 정말 하나도 해석을 못했다. 눈에 글자가 들어오지도 않았다)

- 아니 뭐야, 겨우 그 정도만 해석하는 거야? 그 뒷문장 봐봐. 문제 있다고 되어 있잖아

'dwell' 이렇게 쉬운 단어를 몰라? 학교에서 그것밖에 안 배웠어?

아, 이거 곤란하네? 해외영업부에서는 영어가 기본인데.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도 나는 "dwell"이란 단어를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나는 아무 말도 못 하고, 그냥 풀이 죽은 채로.. 조용히 내 자리에 돌아와 앉았다.

모든 직원이 있는 앞에서, 나를 대놓고 모욕한 안 과장은 Y대 영문과 출신이었고,

해외영업팀에서는 안과장만이 그나마 유창하게 영어를 구사할 수 있던 유일한 사람이었다.


불현듯, 안 과장은 중국 출장에서의 그 일로 인해 나를 괴롭히는 게 분명했고,

내가 소문을 내기 전에 내가 스스로 조용히 알아서 나가 주는 게 좋은 거다란 생각이 들었다.


난 밤새 집에서 잠을 한 숨도 못 자고, 방안을 계속 왔다 갔다 서성거리며 흡사 비 맞은 중처럼 중얼거렸다.

- 당장 내일부터 나가지 않는 게 좋을 거야, 나가면 더 한 괴롭힘과 모욕이 있을 거야,

- 아니야, 만일 내가 여기서 안 나가면, 모든 사람들이 오늘의 모욕 때문에 내가 그만두었다고

생각할 거야. 내가 나가더라도 사람들이 오늘의 그 일 때문이 아니라

다른 개인적인 일 때문에 나가는 걸로 알아야 해.

- 하지만, 내일부터 어떻게 하지? 태연하게 지낼 수 있겠어? 그 인간성 쓰레기 때문에

어떻게 버틸 수 있겠어?


수십 번 나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고 반문을 하고 중얼거리면서 난 드디어 결론을 내렸다.


- 난 회사를 그만두지도 않고, 안 과장을 이기고 그 위로 올라설 거야!

절대 여기서 이렇게 지고 나가지 않을 거야!


그다음 날 나는 평소보다 한 시간 더 일찍 나가서, 해외에서 온 팩스메시지를 모두 가져다가,

사람들이 출근하기 전에 모두 읽고 해석을 해두었다.

그리고 평소처럼 직원들에게 팩스메시지를 전달해주고, 안 과장에게 다가가

모든 직원이 다 들릴 정도로 큰 소리로 말했다.


- 안 과장님, 오늘 아침에 온 팩스메시지입니다. 읽고 해석할까요?


쥐 죽은 듯이 고요하다 란 말은 이럴 때를 두고 하는 말인가 보다.

정말 모두가 조용했고, 안 과장도 놀란 눈으로 앉은자리에서 나를 올려다봤다.


잠시 침묵 후, 그가 한 말은 그냥 한숨을 내뱉는 것처럼 작았다.

- 아니 됐어. 그냥 책상 위에 올려놔.


그 날의 작은 승리는, 그 당시에 실력도 없고 경험도 없던 내가 얻어낼 수 있는

 최고의 승리였다.

날 모욕하고, 무시하고, 그냥 아무렇지도 않게 그만두게 하려고 했던 사람에 대한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반항이었고, 또 내 나름의 거절이었던 것이다.


나는 그 뒤로 매일 아침마다 해외에서 온 팩스메시지를 스스로 읽고 번역해서

사람들에게 넘겨줬고, 더욱더 영어공부에 매진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해외영업에 본격적으로 발을 들여놓기 시작했다.


안 과장은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한가?


안 과장은 과장의 직함을 끝으로 퇴사를 했고, 그의 전공을 살려 영어학원 강사를 하고 있다.

그리고 일 년 뒤, 난 다시 이직을 해서 진짜 본격적인 해외영업의 치열한 길로 들어섰다.




































         

이전 01화 1994, 첫 출근에 미운오리새끼로 전락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