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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초달 Dec 30. 2020

그녀... 피지 못한 꽃

그때 그 자리에 내가 나갔더라면, 그녀의 결말은 바뀌었을까..

벚꽃이 흐드러진 날, 회계팀에 경력직 여직원 미스 유가 입사를 했다.

사내 여직원 평균치를 훨씬 웃도는 키와 시원시원하게 뻗은 손과 발,

왠지 강해 보이는 체격의 소유자인 그녀는 호탕한 성격에다가 말을 함에도 거침이 없어, 

여직원들이 가까이 하기가 왠지 쉽지 않은 타입이었다.

게다가 그 당시 여직원으로는 유일하게 운전면허증을 소지했기에, 

회계팀의 차량을 이끌고 여기저기 다닐 수 있는 기동력이 있어, 

이로 인해 여직원들 사이에서는 부러움과 질투의 대상이 되곤 했었다.

('모 아니면 도'의 성격인 나 조차도, 그녀와의 부서 간 미팅을 별로 좋아하지는 않았다)


입사한 지 두세 달이 된 어느 날, 미스 유가 사고를 쳤다!

업체에서 결제대금으로 받은 자기앞수표를 분실한 것이었다.

물론 회계팀에서는 즉시 처리를 했지만, 그 일로 문책을 당하게 되자, 

그녀는 도리어 당당하게 혹시라도 문제가 생기면 본인이 그 돈을 배상했을 거였다라며

걱정하지 말라고 도리어 큰 소리를 쳤다는 소문이 회계팀에서 시작해서

결국은 사무실 전체에서 돌기 시작했다. 

(그때 사고 난 금액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 일로 인해 회사 내에서는, 그녀를 건방지다 또는 집안이 잘 살아서 저런다,

이번 일도 본인이 꾸민 거다 등의 루머들이 가지를 쳐 뻗어나갔고, 

여직원들은 점차 그녀와 불편한 거리두기를 시작했다.


하지만 여직원들과의 사이가 소원해지자, 미스유는 관계 회복에 적극적으로 나서기 시작했고, 

이런 행동은 미스유를 도리어 고립되게 만들기 시작했다.


(이때 내가 깨달은 것은, 무슨 문제가 발생했을 때 그걸 즉시 풀려고 조급하게 서두르는 것보다, 

조금 시간을 두고 인내하다 보면, 반드시 반전의 기회가 온다는 것이었다)


미스 유가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여직원들은 더욱더 그녀들만의 뒷담화로

미스유에 대한 오해의 골을 깊게 만들기에 이르렀고,

참다못한 미스유는 어느 날 인트라넷을 통해 전체 여직원들에게 사내 공지를 띄웠다.


이번 주 수요일에는 전체 여직원들과의 친목도모를 위한 회식을 하려고 합니다.

회식비용은 모두 제가 부담할 테니, 편히 오시면 좋겠습니다.

부디 한 분도 빠짐없이 나와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 회계팀 유 OO


나는 솔직히 저런 메시지를 받으니, 기분이 별로 안 좋았다.

안 좋은 소문이 도는 데다가, 돈이 얼마나 많길래 여직원 모두의 음식값을

자기가 부담한다고 하는 것일까, 괜스레 미스 유가 돈이 많다고 과시를 하려고 

우리를 부르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드디어 수요일, 나는 어차피 갈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퇴근 전에 미스유에게 인트라넷으로 

부득이한 일 때문에 참석을 못하니,  다음 기회에 같이 밥 먹자라는 내용의 메시지를 보내고 퇴근했다.

오전부터 메시지를 보내면, 그 날 하루 종일 미스 유가 나를 피곤하게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내 나름대로는 머리 굴려서 한 것이었는데....

이 일이 내 인생에서, 평생 마음 한 구석에 결코 풀 수 없는 죄책감으로 남게 될 줄을,

그때는 전혀 생각도 하지 못했다...


다음 날, 미스유는 출근을 안 했다.

그녀의 결근에 의아했던 우리들은, 참석했던 여직원들에게 전날의 상황을 전해 들었다.


그 전날 회식 장소로 돼지 고깃집을 예약을 한 미스유는,

여직원들이 적어도 8~10명은 올 거라며, 테이블을 2개를 붙여놓고

여직원들이 도착하기도 전에 미리 돼지 고기를 굽기 시작했었다고 한다.

그런데 참석한 여직원은 두 명.

사람들이 늦게 오는 걸 거라며, 괜찮다며 애써 감정을 숨기려고 했다고...


상황을 전해 들은 나를 포함한 여직원들은, 미스유에 대한 너무나도 미안한 마음에.. 

우리끼리.. 앞으로 미스유를 조금 이해해주고, 잘해주자고 서로 다짐을 했었다.


하지만 그다음 날도 미스유는 출근을 안 했고,

나는 기획실 팀장이 타 부서 팀장과 비밀을 말하듯 누군가의 죽음을 조용하게 말하는 내용을 얼핏 듣고,

흠칫 놀라서 그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는데, 곧 큰 충격으로 인해 몸이 얼어붙고 말았다.


미스 유가 교통사고로 죽은 것이었다...

미스유는 회식이 있던 그 날 저녁에, 친구를 만나러 간다고,

아빠 차를 운전하면서 늦은 밤 시간에 나갔다가,

매립공사를 하던 지역에서 덤프 트럭과의 교통 사고로,

그대로 그 자리에서 이 생을 마감했다..


정말 믿을 수 없는 소식이었다.

그것도 하필 그녀가 나를 초대한 회식에 응하지 않고,

그녀를 외롭게 놔두었던 그 날..


우리 여직원들은 모두 그녀의 장례식장에서 통곡을 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가 있나.. 정말 너무나도 미안하고 마음이 아팠다.

단 한 치 앞도 모르고, 교만했던 우리 인생이 너무 한심했고,

꽃다운 나이에 불의의 사고를 당한 그녀가 너무 안타까웠다.


사무실 직원들은 모두 그녀의 죽음을 애도했지만,

미혼인 그녀의 불행한 사건이 별로 좋은 소식은 아녔기에,

회사에서는 생산 현장에 그녀의 죽음을 밝히지 않고 비밀로 했다.


미스 유가 그렇게 떠나고 한 3달쯤 지났을까...

2 공장에 있던 외국인 수습생이 미스 유가 저녁에 회사로 찾아와서 배고파하는 걸 봤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고, 구내식당 아줌마는 저녁마다 식당 문 앞에 된장하고 

밥 한 공기를 내어 놓는 일이 발생했다.

급기야 생산이사께서 외국인 수습생을 불러놓고

그 사건을 물어보기 시작했고, 그의 말은 우리 모두를 충격에 빠뜨렸다.


3층 기숙사에 살고 있는 외국인 수습생은, 저녁 9시경에 야간 근무를 하다가

휴식 시간에 매점에 들러 빵 하고 삶은 달걀과 우유를 사서

3층 기숙사에 갖다 두려고 계단을 올라가는 중에, 2층 식당 앞에 서 있는 미스유를 발견했다.

미스 유가 그를 보고 배고프다고 했고, 그가 들고 있는 먹을 것 등을 바라보길래

그는 삶은 달걀을 한 개 주었는데, 이상하게도 약간 쌀쌀한 날씨에 미스유는 까만 나시를 입고 있었고,

몸은 여기저기 상처가 나 있어서, 그는 그녀에게 왜 이러고 있냐, 어디 아프냐 등을 물어봤고,

그녀는 괜찮다고 했지만, 수습생은 아무래도 이상한 생각이 들어, 

현장으로 내려가 한국인 반장을 데리고 왔는데, 미스유는 어디로 갔는지 없었다고 했다.

(한국말이 서툰 외국인 수습생은, 미스유의 죽음을 몰랐다고 한다. 

그리고 외국인 수습생의 말이 믿어졌던 결정적인 이유는, 미스 유가 사고 당시 입었던 옷은 까만색 나시였고, 

그 사실은 사무실 직원들도 모르고 임원들 몇 명만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회사에서는 미스유의 집에 이런 사실을 알렸고,

그의 가족은 근처 지역에서 찾아낸, 총각으로 생을 마감한 어떤 청년의 혼과

그녀의 혼을 달래주는 영혼결혼식을 올려주었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나는 가끔씩 그때의 일이 꿈에 나타나기도 한다.

만일 내가 그때, 그녀가 청한 회식장소에 참석해 그녀와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냈었다면,

이런 미안함과 꽃다운 그녀에 대한 연민은 지금보다 훨씬 줄어들었을까...

아니, 어쩌면 그녀는 자신만의 인생을 힘차게 살아가고 있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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