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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초달 Oct 14. 2022

언니만 입 다물면 돼!

이게 무슨 의미일까

아직까지도 잊히지 않고 가끔 생각나는, 나와 같이 십여 년을 같이 근무했던 여직원이 있다.

그녀는 회계팀 직원이었다가 팀장으로 승진한 뒤로 회사 살림살이를 도맡아서 하는 여장부 같은

스타일이었고, 나한테는 무척이나 친절하고 상냥해서 나는 항상 그녀를 내 친 여동생처럼 생각하곤 했었다.

평소 남자가 90% 이상인 회사에서 일을 하다 보니, 내 성격도 상당 부분 남성스럽게 변해버려

무뚝뚝하고 할 말만 하는 스타일이 되어 버렸는데, 상냥한 그녀를 보니 나도 모르게 마음이

따뜻해져 있을 때가 많이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그녀는 회계팀 팀장으로 나는 구매팀 팀장으로 서로 십여 년을 같이 근무했는데,

언제 인지부터 그녀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금붙이가 몸에서 번쩍거리고 옷 스타일도 과감하고 화려해졌으며

머리며 화장이며 스타일을 확 바꾸고 여러 가지 명품으로 몸을 치장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매일 갖고 다니는 핸드백이 달라졌고, L백화점에서 그녀가 가기만 하면 VIP 대접을 해준다는 소문까지...

그리고 회계팀 여직원들에게 비싼 브랜드의 가방 선물도 수시로 해주고,

그녀는 씀씀이까지 크게 달라져있었다.

우리 부서 직원들은 그녀가 저녁에 따로 아르바이트를 하는 게 아닌가 의심을 했을 정도로

그녀는 내가 알던 예전의 그녀가 아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가 나한테 저녁에 차 또는 술이나 같이 했으면 좋겠다고 하길래

알았다고 하고 퇴근 준비를 하는데, 갑자기 우리 사무실에 와서 하는 말이

언니, 오늘 우리 호빠 가는 거 알지? 그러는 게 아닌가!

호빠? 거기가 뭐냐? 우리 왜 거기 가냐? 거기 돈 많이 드는데 아닌가? 라며 당황해서

주절거리는 나를 보고 웃으면서, 아니야~ 그냥 가서 남자들 들어올 때 너는 나가고 너는 내 옆에 앉아 이러면 되는 거야~! 그리고 그동안 언니한테 고마운 것도 많으니까 이번에는 내가 쏠게! 하는 것이었다.

아무래도 이건 아니다 싶어서 그녀에게 다음에 우리끼리만 만나자라고 거절했는데,

그녀는 괜찮다 이건 아무것도 아니다 자기 언니들도 다 같이 가서 놀았다라면서 별거 아닌 일이라는 듯이

자꾸 같이 가자고 부추기는 것이었다.

나한테 호의(?)를 베풀려는 그녀에게 계속 거절하긴 미안했지만 그래도 집에 남편도 있고 애들도 있는데,

아무래도 호빠를 간다는 게 께름칙해서 오늘은 말고 다음에 가자 다음에 생각해볼게라고 말하며

그 자리를 모면하고 그냥 집으로 퇴근해버렸다.


그런 일이 있은 날부터.. 나는 그녀에 대해 골몰히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우리 월급은 뻔한데, 그녀가 어디서 돈이 나서 그렇게 펑펑 써대는 걸까?

진짜 소문대로 저녁 아르바이트를 하는 걸까?

별의별 생각을 다하면서 조금 거리를 두어야겠다고 생각하며 그 이후로는 가능한 단 둘의 만남을 피했었다.


그리고 얼마 뒤, 우리 부서와 회계팀 그리고 기술부 이렇게 분기별 회식을 하는 자리를 가졌다.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식당에서의 회식이 마무리가 될 무렵, 그녀가 회식에 참석한 모든 직원들에게

노래방을 가자고 제안을 했고, 사람들마다 노래방 갈 돈이 없다며 그냥 여기에서 끝내자라며 일어서려는데

그녀가 노래방비를 자기가 내겠으니 이왕 노는 김에 제대로 놀자고 하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좋다고 환호했고, 나는 집에 애들도 기다리고 있어서 2차 참석을 못하겠다 하고

그녀에게 돈이 어디서나 서 이러냐 그만하지라고 말을 건넸는데, 그녀가 나에게

'언니만 입 다물면 돼'라고 말을 이상하게 하는 것이었다.

그 말이 참 이상하게 생각되었지만, 나는 그냥 그대로 집으로 갔고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그녀와 함께 노래방을 갔다.


다음날 회사에서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녀의 말이 마음에 걸려, 회계팀 직원에게 어제 회식비 전표를

받아서 확인을 해보고 나서야 그녀가 무슨 말을 하는지 감을 잡을 수 있었다.

부서별 분기 회식비 전표에는 음식값 20만 + 노래방 (도우미까지 부름) 30만 + 아마조나 20만으로

총 70만 원이 지출된 것으로 되어 있었다.

어제 노래방을 같이 갔던 직원을 불러서 노래방에서 놀다가 또 아마조나라는 곳을 또 갔냐라고

물어보니 그는 어제 노래방에서 그녀가 도우미까지 불러주고 자기는 집에 가봐야 된다며 급히 나갔다고 했다.


그러니까 그녀는 회사 돈으로 호스트바를 다녔고, 자기가 호스트바를 갔다 온 날의 전표는 모두 부서 회식으로 결제를 올려버렸던 것이었다.

여태껏 타 부서 회식에도 모두 따라다니며 저런 식으로 다녔던 것인데,

더 기가 막혔던 것은 회사 사람들에게도 노래방에 도우미를 붙여주었으니, 자기 혼자만 벌인 일이 아니라

그때 같이 갔던 동료들 모두 그런 일에 공범으로 만들어버렸다.

실제로 회사 동료들은 자신들이 갔던 노래방과 도우미 비용 모두 그녀가 내서 문제없는 줄 알고 있었는데

이런 일이 있으리라고는 상상조차 못 했으니 말이다.


나는 그 내용을 조용히 확인하고는, 회계팀 여직원이 이런 사실을 모를 리가 없다고 생각해서

그녀 밑에 있는 회계팀 여직원을 불러 여러 가지 의심스러운 사안들에 대해 물어보기 시작했다.

그러자 갑자기 여직원이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자기는 진짜 무서웠다 그녀가 여러 가지

회사 돈을 사용하는데 어디 말할 데도 없고 무섭고 힘들었다고 하는 것이었다.

알고 보니 그녀는 호스트바 비용만 쓴 게 아니라, 회사 공금을 무지막지하게 빼서 쓰기 시작했던 것이다.


얼마 전에 내가 매입 거래처 전화를 받으면서, 업체 사장이 우리 회사 경리팀에서 자료 맞춘다고

세금계산서를 하나 끊어달라고 하는데라고 하길래, 왜 회계팀에서 내게 먼저 말하지 않았지

라고 생각하며 그냥 업체 사장에게 회계팀에서 해달라는 대로 해주세요라고 했던 일이

생각이 나는 것이었다. 부랴부랴 그 자료를 찾아보니 우리 회사에서는

자료 정리용으로 매입으로 끊은 세금계산서를 회계팀에서 결제대금을 지불했는데,

그 지불한 계좌번호가 이상했다.

이렇게 여러 업체들을 추적해 본 결과 그녀는 여기저기서 자료를 맞춘다는 명목으로 매입 세금계산서를

요구했고 그렇게 해서 모은 매입세금계산서의 대금 지불은 모두 그녀 통장으로 입금을 했던 것이었다.


이렇게 파고들다 보니 그동안의 상황이 대충 정리가 되고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 월간 전체회의에서 사장님께서 "복리후생비 중에서 회식비가 너무 많다. 조금 자중해주시라" 하셨는데

그때 우리 직원들은 모두 의아해하면서 우리가 언제 회식비를 그렇게 많이 썼다고 저런 말을 하시지

하면서 투덜거렸던 .. 알고 보니 그녀가 아마조나를 갔던 비용들

- 내가 회계팀에게, 어째 구매팀이 정리한 매입자료가 맞지 않는다고 원장을 뽑아본다고 무언가 요구할 때마다 그녀가 나한테 와서 언니는 바쁜데 이런 일 하지 마 이런 건 나시켜 내가 다 해줄게라고 너무 친절하게 말해서 내가 감동을 먹었던 일.. 이것도 알고 보니 그녀가 매입자료를 조작하고 다 자기 통장으로 돈을 빼돌리느라고 나한테 이런 과잉친절을 베풀었던 것

- 회계팀에서 집행하는 자금 명세서 금액의 합계를 틀리게 계산하고 그걸로 은행에서 돈 출금.. 만일 1000만 원이 합계라면 1500만 원으로 합계만 고쳐놓고 집행한 돈은 1000만 원이고 나머지는 자기 통장으로 출금

- 언젠가 들통날 것을 생각해서, 회계팀 여직원들에게 명품 가방들 한두 개씩 선물하고

- 남자들 회식자리에서 노래방에 도우미까지 붙여두고 자기는 빠지고 조나로 가서 놀고

- 매입자료를 손대서 결제대금으로 회사 돈을 횡령

- 그것만이 아니라 나한테도 호스트바를 가자고 하면서 내 발에 덫을 놓기까지 한 행동


이 일은 결국 보고되었고, 본사에서 감사팀이 내려와 내부 서류를 조사하기에 이르렀는데,

본사 감사팀은 어떻게 회계팀장이 혼자 이런 일을 할 수 있었을까라고 생각해서

나까지 감사를 했었고, 나는 억울했지만, 그녀가 매입자료를 갖고 장난을 쳤기에 매입자료를 철저하게 검토 안 한 내 잘못을 인정했다. 하지만 여러 가지를 조사했던 감사팀에 의해 결국 나는 결백이 증명되었다.


만일 내가 그녀가 호빠에 가자고 했을 때 갔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녀가 언니도 같이 호빠에 다녔다고 했을 테고 그러면 금액이 어찌 되었든 간에 상관없이

나도 공범이 되는 것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그렇게 나한테 친절하고 상냥하기만 했던 그녀가 그런 마음을 품고 나한테

일부러 접근을 했을 거라는 게 너무 소름 끼칠 정도다


본사 조사팀의 조사 내용으로는,

그녀는 6개월 사이에 1.2억을 집중적으로 현금으로 횡령했고,

일부는 호빠 선수와 살림을 차리고 그분에게 차를 사드리고 그리고 생활비용으로 들어갔다고 했다.

그리고 아무리 생각해도 이게 처음이 아니라 수년 전부터 횡령했을 거라는 결론에 이르렀는데..

바늘도둑이 소도둑이 된다고 어떻게 6개월 사이에 겁도 없이 현금을 그렇게 뺐을까..

그게 아니라면 그녀는 적어도 몇 년 전부터 지속적으로 횡령을 해오다가 감각이 무뎌지게 되고

그러다 보니 여기까지 오게 되었을 거라고 조사팀은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그 이전 자료까지 모두 감사를 하려던 그즈음에

그녀의 어머니가 나타나, 내 딸만 잘못한 게 아니다 혼자 돈 쓴 거 아니다

내가 입 열면 여기 사장부터 상무이사까지 다 걸린다 그러니 이쯤에서 합의하자라며

도리어 큰 소리를 쳤고, 결국에는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회사 측에서 7천만 원에 합의를 해주고 말았다.


그 일 이후로 나는 그녀를 못 보았고,

나랑 같이 십여 년을 근무했는데, 그녀가 나에게 했던 친절과 상냥함은

그냥 하나의 덫이었다는 사실이 아직까지도 너무 씁쓸하고 안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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