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인산 Aug 31. 2020

장엄하게 때론 우아하게

매화와 영종도 낙조

봄의 전령이 찾아왔다. 사무실 옆 화단의 키 큰 매화나무가 꽃망울을 활짝 터뜨린 것이다. 매화는 봄을 시샘하며 추근대는 꽃샘추위를 이빨 빠진 호랑이 보듯 아랑곳하지 않고 우아하기만 하다.

퇴근 후 숙소로 돌아와서 고구마를 씻어 가스레인지 위에 얹었다. 그렇지만 일몰을 보고픈 마음이 고구마가 다 익기를 기다리지 못해 레인지 불을 끄고 서둘러 밖으로 나섰다. 스카이빌 옆 산책로를 따라 흰바위로, 영종대로, 신도시 북로 위로 놓인 육교를 차례로 건너며 앞마루 공원과 영마루 공원을 가로질러 순식간에 앵두 공원에 닿았다.


백련산 자락에 접한 앵두공원에서 영종 해안북로 위 육교를 넘으면 해안이다. 찬 바다 바람이 온몸으로 확 불어 닥치며 모자챙을 들춘다. 장봉도에 딸린 작은 섬 '사염' 옆 수평선 밑으로 막 모습을 감추려는 태양이 바람에 일렁이는 바다 위 하늘에 낙조를 드리웠다.

황금빛의 황홀한 노을 속에 귀항하는 어선들이 수평선에 걸려 있고, 활주로에서 이륙한 여객기 한 대는 제 고도에 진입한 듯 낙조의 오라를 벗어나 하늘 높이 떴다.


태양이 바다 아래로 모습을 감추자 어둠이 내리기 시작한다. 해는 졌지만 낙조는 한참 동안 바다 위에 머물렀다. 허리 굽은 할머니 한 분이 지팡이를 짚으며 내 옆을 스쳐지나 노을 진 쪽으로 걸어간다. 나무데크 계단을 올라 500미터 남짓 거리의 백련산 정상으로 발길을 옮긴다. 간간이 뒤돌아서서 바다 위 낙조를 보며 오롯이 혼자 걷는 운치가 남다르다.

정자가 자리한 백련산 정상에 순식간에 도착해서 능선을 따라 발길을 옮긴다. 숲 사이로 비집고 들어오는 붉은 낙조가 세찬 바람에 거세게 타오르는 산불처럼 강렬하다. 백련산 자락으로 내려서서 더러 텃밭이 딸린 저마다 독특한 모습의 집들이 자리한 단독주택 단지를 구경하며 천천히 지났다.


앵두공원을 지날 때 어둠이 온전히 대지를 점령했다. 깊고 검푸른 하늘 높이 곧 상현으로 부풀어 오를 달이 떴고 겨울 별자리 오리온의 별들이 빛난다. 베텔기우스와 리겔을 축으로 그 가운데 오리온의 허리띠라 불리는 세 개의 별, 그리고 그 아래 대성운까지 선명하게 눈에 들어온다.

연인 아르테미스 여신이 쏜 화살에 맞아 죽은 뒤 별자리가 되었다는 사냥꾼 오리온, 하늘 한가운데를 널찍이 차지하고 있는 모습이 신화가 얘기해 주고 있듯 뭇 여신들이 흠모하던 거인의 풍모답다.

새해 초 찾았던 속초 바다의 일출이 연출하던 노을은 장엄하고 화려했었다. 그에 비해 같은 태양이지만 영종도 바다 일몰이 드리우는 저녁노을은 사랑스럽지만 한편으론 애잔한 느낌을 자아낸다. 매일 변함없이 같은 모습으로 뜨고 지는 태양과는 달리 계절을 쫓아 흐드러지게 핀 매화는 봄비가 내리면 금세 지고 말 것이다.

낙조에 애잔함이 스며드는 마음, 낙화에 아픈듯 아련해 가슴. 떨어지는 것들은 다 애잔하고 아프고 슬픈가 보다. 봄비에 떨어지는 꽃처럼 사랑도 인생도 세월 따라 흘러갈 터이지만 저녁노을처럼 때론 장엄하게 때론 사랑스럽고 우아하게 저물기를 바랄 뿐이다. 사무실 화단의 매화가 더디 지면 좋겠다. 그해 늦겨울

매거진의 이전글 함지박에서 건져 올린 국화 세 송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