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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꽃 필 무렵

by 꿈꾸는 시시포스


짧았던 봄날이 끝나고 초여름으로 들어설 무렵이었다. 여느 날과 다름없는 출근길에 평소와 달리 본관 청사에 딸린 도로변 화단이 휑했다. 화단에 줄지어 서 있어야 할 4~5미터 높이 싱그러운 성년의 동백들이 모두 사라져 버린 것이다. 갑자기 마음이 퀭- 해졌다.


사실 내게 동백은 '동백 아가씨'나 '돌아와요 부산항에' 등 노래에서나 들어본 낯선 꽃이었다. 동백꽃을 처음 가까이서 보게 된 것은 구 년 전 겨울 발령을 받아 부산으로 내려온 때부터였다. 본관 건물 화단의 동백을 처음 만난 것도 그 해 겨울이었다.


사실 부산 시내의 도로변 여기저기에 눈에 띄던 빨간 립스틱 빛깔의 동백들은 어딘지 흐트러지고 조금은 헤퍼 보이기까지 했었다. 그와 달리 청사 화단의 동백들은 연분홍빛 단아한 모습이 고왔다. 망월산 기슭 충렬사에서 만난 껑충하게 큰 키의 동백이 중년의 여인이라면 청사 화단의 동백은 청순하고 발랄한 처녀의 모습을 닮았었다. 가수 조영남이 부른 노래 '모란 동백' 속 상냥한 얼굴의 그 처녀처럼...


동백은 벌써 지고 없는데
들녘에 눈이 내리면
상냥한 얼굴 동백 아가씨
꿈속에 웃고 오네
세상은 바람 불고 덧없어라
나 어느 바다에 떠돌다 떠돌다
어느 모래뻘에 외로이 외로이 잠든다 해도
또 한 번 동백이 필 때까지 나를 잊지 말아요
- 이제하의 <모란동백> 中 -


그 해 일월에 눈이 드문 부산에 제법 많은 눈이 내렸다. 발령으로 다시 부산으로 내려오던 날이었다. 삼월이 중순에 접어든 춘분 날에도 눈이 내렸다. 내가 보기에는 '폭설'까지는 아닌 듯 보였는데 따뜻한 남쪽 부산 사람들은 '폭설이 내렸다'라고 온통 호들갑스러워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아침마다 출근길에 만나는 화단의 동백은 봉오리를 야물게 다물고 있었다. 그러던 동백이 동지섣달 꽃 본 듯이 몇 년 만에 내리는 서설이 반가왔던 것일까. 바다 내음 가득한 훈풍에 겨울이 기를 펴지 못하자 언제 그랬냐는 듯 잔뜩 움츠렸던 꽃봉오리를 무성한 잎사귀 사이로 빼꼼히 내밀었다. 여느 동백과 달리 더 천천히 더디게 핀 화단의 그 동백들은 봄비가 촉촉이 내리고 완연한 봄기운이 돌 때까지 출퇴근길마다 나를 반겨 맞아주었다.


품을 수는 없지만 마음속으로만 애지중지 하던 그 동백들이 무슨 연유로 사라졌는지 자세히 알 수는 없다. 무참히 뽑혀나갔을 동백을 생각하니 애통한 마음뿐이다. 누군가는 뚝뚝 하루아침에 꽃을 떨구는 동백이 상스럽지 못하다고 트집 아닌 트집을 잡기도 한다.


어떤 꽃인들 아름답지 않고 무슨 꽃인들 한 번 피면 언젠가는 지는데 피고 지는데 이유가 있으랴! 꽃잎을 흩뿌리며 요란스럽게 지는 벚꽃이나 꽃잎이 시들시들해질 때까지 구차하게 연명하려 애쓰는 여느 꽃들도 있지만, 제 몫의 시간을 채우고 갈 때는 아무런 미련도 없이 무심히 밤새 꽃을 떨구는 동백의 초탈과 결기가 가상하지 않은가.


봄날 떨어지는 모란을 보며 '삼백예순 날 하냥 섭섭해 운다'라고 했던 시인처럼, 웃는 얼굴로 객수를 달래주던 동백이 뿌리째 뽑혀 하루아침에 사라져 버렸으니 애통하고 서운한 마음이 적지 않았다.

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 내 한 해는 다 가고 말아
삼백예순 날 하냥 섭섭해 우옵내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기다리고 있을 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 김영랑의 <모란이 피기까지는> 중 -

영랑의 모란은 매년 봄이면 봄마다 그 어디에서 다시 피어날 것이다. 그렇지만 겨울이 꼬리를 감출 즈음 화사하고 우아한 연분홍 꽃봉오리를 터뜨리며 수줍게 맞아주던 청사 화단의 동백은 더 이상 볼 수가 없을 터이다. 오가며 스마트 폰 카메라로 담아 둔 몇 장의 사진과 기억을 더듬어 추억할밖에...


그 동백을 기억하던 이들은 영영 '찬란한 슬픔의 봄'을 잃어버린 셈이다. 하루아침에 도둑맞은 것처럼... 오호 애재라, 동백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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