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가 시작된 걷기 열풍이 사그라들지 않고 이어지고 있다. 도 시 군 등 지자체들도 관광객 유치나 지역 홍보 등을 위해 각종 트래킹 루트를 내놓고 있다. 둘레길, 올레길, 갈매길, 마실길, 누비길, 자락길 등등 그 지역마다 그 이름도 독특하고 다양하다.
시간 돈 일거리에 쫓기지 않는 느린 삶, 일과 여가의 균형을 중시하는 시류도 걷기 열풍에 한몫했을 것이다.
직장이 있는 인천에도 둘레길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내가 주도적으로 만든 동호회가 '파로스'다. 평일 일과 후 인천 둘레길 14개 구간을 차례로 탐방하면서 동료 간 친목도 돈독히 한다는 취지로 2년 전 인천에서 근무할 때 만들었다.
지난해 9월 하순 그 네 번째 탐방으로 회원 여덟 명이 인천 둘레길 8-1코스 문학산 구간을 걸었다.
선학역 부근 법주사를 출발 갈마산 문학산성을 거쳐 삼호현 고개로 내려섰다. 원점으로 돌아오는 길, 문학산 남쪽 기슭에 함지박처럼 움푹하게 들어앉은 함박마을을 지날 때였다.
어둠이 온전히 내려앉은 초저녁, 함박마을과 문학산의 경계를 따라 난 함박로 길가 쓰레기 더미에 버려진 액자 하나가 눈에 띄었다. 액자 주위 쓰레기를 걷어내고 그 속 그림을 살펴보았다.
낡은 액자 속 노란 국화 세 송이, 아래로 처진 가지 끝에 고개를 위로 꼿꼿이 세우고 있는 모습으로 보아 바위 절벽 틈새에서 자란 야생 국화일지도 모르겠다.
돌보는 손길도 없이 한여름 무더위를 참고 비바람도 견뎌내며 수수하나마 단아한 꽃을 피워낸 것이 대견스러웠다. 동료들과 교대로 액자를 들고 걸으며 둘레길 탐방을 마무리했다. 다음날 아침에 사무실에서 액자에 내려앉은 먼지와 오물을 깨끗이 닦은 후 벽에 걸어 보니 제법 기품이 있고 계절에도 참 잘 어울린다 싶었다.
둘레길 탐방길 쓰레기 더미 속에서 우연찮게 건져낸 그 아이는 지금도 인천항 사무실 벽 한쪽에 자리하고 있을 것이다. 두고 온 애인도 아닌데 구월이 오고 바람도 선선해지니 새삼 생각이 나고 보고 싶어 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