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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인산 Sep 26. 2020

서라벌 동궁과 월지

오후에 부산을 출발해서 일박이일 일정으로 열리는 워크숍 장소인 경주 K호텔로 향했다. 아침부터 오다 멈추다 추적대던 비는 오후 늦게부터 제법 굵은 빗줄기로 바뀌었다.

2016년 9월 12일, 지진 관측 이래 최대라는 리히터 규모 5.8 지진으로 적지 않은 피해를 입은 경주는 우리나라 최초로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되었었다. 그때부터 재난지역에 다소라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 취지로 많은 공공기관들이 경주에서 워크숍을 가졌었다. 그래서인지 K호텔은 2016년 워크숍에 이어 두 번째다.

첫날 업무토론 등 일정 후 저녁엔 첨성대와 안압지라 불리던 동궁과 월지 등을 둘러보는 문화탐방 시간을 가졌다. 우산을 챙겨 들고 버스를 타고 첨성대로 향했다. 버스 맨 앞 좌석에서 일어나 뒤돌아 선 문화해설사는 신라 흥망성쇠의 약사와 더불어 월정교, 동궁과 월지 등 탐방지에 얽힌 사연들을 누에가 실을 뿜어내듯 쉬지 않고 풀어놓았다.

버스 유리창 너머로 조명에 모습을 드러내야 할 월정교는 흘러내리는 빗물에 가려서 제대로 보이질 않는다. 월정교는 경덕왕 19년(760년)에 궁궐인 월성 남쪽 남천 위에 건립되었던 다리로 금년에 복원공사가 완료되어 개방되었다고 한다.

주차장에 멈추어 선 버스에서 내려 우산을 받쳐 들고 첨성대로 향했다. 어둠 속 너른 벌판 위에 홀로 우뚝 서서 조명을 받으며 빗줄기를 맞고 서 있는 첨성대, 천 수백 년 동안 크고 작은 지진을 비롯해서 폭풍우와 혹한 등을 견뎌왔을 터이지만 아무 일 없다는 듯 우아하고 기품 있게 서 있는 모습이 경이롭다.


천삼 백여 년 전인 7세기 선덕여왕 때 축조된 첨성대를 눈 앞에 마주하고 자세한 해설과 더불어 감상하는 경험이 색다르다. 여러 번 보았지만 비 오는 날 밤에 보는 첨성대는 더 신비롭고 먼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며 상상의 나래를 펴게 한다.

경주시 인왕동의 동궁과 월지는 신라의 별궁 터로 사적 제18호다. 폐허가 된 옛 궁궐 연못에 오리와 기러기만 오간다고 해서 조선시대 시인묵객들이 지어 불렀다는 안압지로 더 잘 알려져 있다.

문무왕 14년(674년)에 궁 안에 연못을 파고 산을 만들어 화초를 심고 진기한 새와 기이한 짐승을 길렀다, 동궁(임해전)을 중수했다, 연회를 가졌다 등의 기록이 <삼국사기>에 전한다고 한다.

신라 마지막 제56대 경순왕은 935년 고려의 왕건을 이곳 월지로 초대하여 연회를 베풀고 나라를 바쳤다고 한다. 왕건은 신라 왕이 나라를 바치고 귀의한 이곳이 '경사스러운 고을'이라며 '경주'라는 이름을 하사했더란다.

하루아침에 천 년 사직을 신생국 고려에 헌납하고 '서라벌'이라는 이름마저 사라지게 되었으니 당시 신라 백성들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신라인들에게 통한의 장소였을 동궁과 월지, 삼베옷에 지팡이 짚고 떠도는 마의태자 모습이 오버랩되며 황홀하게 아름다운 모습에 마음속에는 오히려 애잔함이 밀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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