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와 계양산, 멀리하기엔 너무나 가까운

인천 계양산 야간산행

by 꿈꾸는 시시포스

어제와 오늘 연일 폭우 소식이 전파를 타고 들려온다. 폭우로 인해 충청지역 등에서 침수피해가 발생했다는 뉴스가 안타깝다.

인천에는 오전 한때 굵은 비가 내렸다가 오후에 그쳤다. 지난주 내내 장마 비에 갇혀 옴짝달싹 하지 못했다. 잠시 비가 그친 틈을 근질거리는 몸이 주체하지 못하고 쏟아져 나오는 즉흥 교향곡 선율처럼 밖으로 박차고 나서자고 아우성이다.


퇴근길 목적지는 숙소가 아니라 인천항과 인천공항을 오가며 거의 매일 잡힐 듯 가까운 거리에서 의연한 모습을 보여주던 계양산으로 잡았다.


얼마 전에 개통된 제2외곽순환고속도로 인천항 제3부두에서 북청라 IC 구간, 그 옆 동맥경화에 걸린 듯 느릿느릿 줄을 서서 진입하는 경인고속도로와는 달리 차량이 한산하고 흐름도 쭉쭉 빵빵 거침없이 뚫렸다. 아직 일몰시간까지는 남은 시간이 넉넉하지만 서쪽 하늘 태양은 영종도와 한 뼘 가량 거리를 두고 하루를 마감할 채비를 하고 있다.

북청라 IC를 나서서 계양로로 들어서자 도로 끝 편에 정상에 철탑을 이고 늠름하게 버티고 서있는 삼각 피라미드 모양의 계양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손을 뻗으면 닿을 듯 가까운데 계양로는 제2외곽순환도로와는 달리 차량 흐름이 더뎌 마음에 살짝 조급증이 인다.


회색빛 구름으로 휩싸인 하늘과는 달리 흡족히 내린 장맛비에 말갛게 씻긴 능선은 일몰 전 태양빛을 받아 짙푸른 색깔이 더욱 깊고 무거워 보인다.

전기현 진행 라디오 FM '세상의 모든 음악'이 엘가의 <사랑의 인사>와 푸치니의 <어떤 갠 날>을 연이어 들려준다. 아내에 대한 지고의 사랑과 떠나버린 남자를 기다리는 여인의 지순한 사랑을 동병상련처럼 서로를 위로하듯 바이올린 선율과 가냘픈 소프라노 목소리로 나직이 속삭이듯 들려준다.

이십여 년 전 일산에서 김포공항으로 출퇴근하던 길을 계양산은 항상 지척에서 지켜보고 서 있었다. 김포공항을 대신하여 2001년부터 우리나라 제1관문의 자리를 차지한 인천공항과 인천항을 일주일에 서 너 번씩 오가는 요즘도 계양산은 든든한 지기인 양 저 멀리 그 자리에서 나를 지켜보고 있다.


오래전부터 가까이서 지켜볼 뿐 한 번도 그 속으로 다가가지 못했던 계양산을 오늘 저녁 찾아가게 되니 마음이 설렌다.


원래 계수나무와 회양목이 많아 붙여졌다는 이름 계양산(桂陽山)도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전후 남벌의 수난을 겪어 그 이름의 의미가 퇴색되었다고 한다. 조림사업으로 참나무, 자작나무, 전나무 등이 계수나무와 회양목의 자리를 대신하게 된 것이 그나마 다행한 일이다.

해발 395미터 계양산은 도읍이나 고을의 중심이 되는 산, 즉 인천 고을의 진산(鎭山)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남쪽으로 펼쳐진 넉넉한 자락에 쾌적하고 잘 정비되어 이국적 정취마저 느껴지는 인천 계양 고을을 품고 있다.

계양산 공영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편의점에서 음료와 계란 등 요깃거리를 사서 배낭에 넣고 연무정 부근 들머리로 들어섰다. 달도 없는 저녁 청승맞게 혼자서 산을 오르게 되지 않나, 하는 걱정과는 달리 하산하거나 산으로 오르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계양산성 터까지 넓적한 돌로 폭이 넓게 다듬어 놓은 길이 오르기에 편하다. 두어 번의 내리막과 오르막이 있지만 정상까지 놓인 나무계단은 누구나 쉽게 오르내릴 수 있어 공원이나 다름없다. 실제로 산 전체가 인천시 지정 제1호 공원이다.

연무정에서 남북을 조망할 수 있는 능선에 올라서면 곧 이층 누각 계성정(桂城亭)이 맞이한다. 잠시 숨을 돌리고 정상으로 향한다. 계단을 오르는 길 좌우로 시야를 가린 나무 가지에 쳐 놓은 거미줄에 나비 한 마리가 걸려 파닥인다. 거미는 오랜 기다림의 보상을 찾았고 나비의 운은 오늘까지였나 보다.

능선 앞에 우뚝 솟은 계양산 정상 뒤로 석양이 불그스레하게 물들었다. 계단이 끝나고 짧은 돌길을 올라가면 계양산이 너른 정상을 허락한다. 사방으로 트인 정상은 서울, 인천, 고양 등 도시들과 영종도, 강화도, 김포공항 등 동서남북으로 저녁에서 밤으로 넘어가는 주변 모습을 파노라마처럼 펼쳐놓았다.

먼저 올라온 사람과 하나 둘 도착하는 사람들은 산정으로 불어오는 바람에 온몸을 내맡기고 좀체 자리를 뜰 생각을 않는다. 날이 어두워질수록 산 아래 세상의 거리와 동네들을 수놓을 황홀한 야경을 기다리는 것이리라. 어둠이 깔리면서 북으로 자유로의 차량 불빛은 혈관 속 동맥처럼 흐름이 선명하고 한강과 경인운하는 정맥처럼 희미하게 어둠 속으로 묻혔다.


계양공원 관리공단 쪽 하산 길에 바람 쐬러 나온 동네 아저씨 아주머니 학생 둘레길 동호회원 등등 남녀노소가 제각기 하나씩 머리에 쓰거나 손에 든 전등을 밝혔다. 도시는 저마다 집어등처럼 불 밝힌 배들이 이룬 거대한 선단이 되어 서로를 보듬고 별빛 없는 하늘 검은 밤바다를 항해하고 있다.

높은 아파트 나지막한 빌라 좁은 쪽방 그 어디에서라도 집으로 돌아가 하루를 마감할 이 시간, 엘가의 <사랑의 인사> 선율처럼 평온함이 그들 보금자리마다 깃들기를 기원하며 계양을 뒤로하고 숙소로 차를 몰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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