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0년 도읍 성곽을 걷다

한양도성 성곽길

by 꿈꾸는 시시포스

여섯 시 반이 조금 지나 집을 나섰다. 탄천변 가로등이 밝고 물속에 비친 등불도 반짝인다. 무악재로 향한다. 겨울 아침 어둠은 더디게 걷히고 주말 이른 시간 지하철엔 빈자리가 많아 여유롭다.

야탑에서 타고 수서에서 환승한 대화행 3호선은 대치 양재 고속터미널 신사 등 강남을 두루 거친 후 압구정과 옥수를 잇는 한강철교를 넘는다. 강북으로 들어서서 충무로 을지로 종로 등 도심 요지를 지나고 경복궁 독립문 무악재 구파발을 거쳐서 신도시 일산으로 빠져나갈 것이다.

무악재역에 약속시간보다 30여분 이르게 도착했다. 4번 출구 옆 편의점에 들러 생수를 사고 커피를 한 잔 하며 유리창 밖 거리를 지나는 행인들을 본다. 모두 두터운 외투 차림이고 장갑에 털모자까지 눌러쓴 이들도 있다. 바야흐로 계절은 겨울의 중심을 향해 바삐 잔걸음을 하고 있다.


8시 반경 친구 M과 H와 만나 무악재 서편 안산(鞍山) 기원사 쪽으로 길을 잡았다. 인왕산으로 직행하려다 H 의견대로 안산을 코스에 추가하기로 한 터이다. 안산 자락에 들어선 아파트 숲을 가로질러 기원정사를 경유해서 산정으로 난 길, 그 길 곳곳에는 내린 눈이 녹지 않고 쌓여있다.

무악산(毋岳山)으로도 불리는 해발 296미터 안산은 조선시대 위급한 소식을 실은 평안도 변방의 봉화가 이곳을 거쳐 남산으로 이어졌다고 한다. 봉수대가 자리한 정상에 서면 인왕산 북한산 남산 그리고 주말 아침 겨울 햇살에 눈 비비며 기지개를 켜는 육백 년 도읍 서울이 한눈에 들어온다.

맞은편 인왕산은 손을 뻗치면 닿을 듯 선명하고 북쪽엔 족두리봉 향로봉 비봉 사모바위 승가봉 나월 나한 문수 보현 등 북한산 준봉들이 줄지어 서있다. 남동쪽 남산은 안산 바로 아래 독립공원과 도심 빌딩 숲 너머 멀리 있지만 또렷하다.

통일로 무악재 위로 놓일 안산과 인왕산 연결로 건설작업이 한창인 공사장을 비껴 길고 완만하게 서대문 쪽으로 난 골목길로 내려와서 독립문 건너편 무악동 인왕산 자락으로 발길을 옮겼다.


인왕산 서쪽 가파른 계곡을 낀 자락에 들어선 인왕사는 조선 초 태조가 경복궁을 수호하는 호국도량으로 창건했더란다. 일주문과 비탈을 따라 촘촘히 들어선 암자들을 지나 국사당 뒤편으로 오른다. 숭숭 패인 구멍마다 비둘기들이 앉아 쉬고 있는 기묘한 모양새의 선바위 기도처를 지나고 그 우측으로 돌아 능선에 올라서면 한양성곽과 만난다.

숭례문에서 시작하여 경희궁 옆을 지나 사직터널 부근에서 인왕산 자락으로 들어선 성곽은 용트림하듯 산정 쪽으로 치고 올라온다. 우리 일행은 한양도성 제4코스 인왕산 구간의 중간쯤으로 들어선 셈이다. 남으로 길게 뻗은 성곽과 하늘을 찌를 듯 곧고 높게 솟은 N타워를 머리에 인 남산, 그리고 푸른빛 연무에 갇힌 서울의 빌딩 숲이 신비로움을 더하며 장관을 펼친다.

해발 338미터 인왕산은 서울 진산의 하나로 화강암질의 바위산이다. 북악을 중앙으로 좌청룡 격인 낙산과 더불어 우백호를 이룬다. 그 정상에서는 백악산 아래 자리한 청와대와 경복궁을 비롯한 옛 한양의 중심부를 조망할 수 있다.


인왕산 정상에서 창의문까지는 약 1.65km 내리막 성곽길로 그 좌측으로 내리 뻗은 기차바위 능선 사이에 부암동이 안겨있다. 경복궁 북서쪽 청운동 뒤 청운공원에는 윤동주 문학관과 그의 시비가 서있다. 시비 앞뒤에는 그의 '서시'와 '슬픈 족속'이 각각 새겨져 있다.

시비에 나란히 등을 기대고 앉아 햇볕을 쬐며 언덕 아래를 내려다보시는 노부부, 할아버지는 22살 청년 동주가 시 <슬픈 족속>을 쓴 1938년에 이곳 서울에서 태어나셨더란다. 당신들도 "흰 수건 검은 머리를 두르고 흰 고무신이 거친 발에 걸리운" '슬픈 족속'으로 거친 질곡의 시대를 지나왔을 터이다.

청운공원을 자나 청암동에서 부암동으로 넘어가는 창의문로를 건너면 한양도성 4 소문의 하나로 서북쪽에 위치한 창의문과 만난다. 자하문으로도 불리는 창의문은 4대 정문의 하나로 북문인 숙정문이 항상 폐쇄되어 있어 그 구실을 대신했기에 북문이라 불렸더란다.

백악산 오르는 길을 창의문에서 출발한다. 그 입구 안내소에서 출입신청서를 쓰고 신분증을 제시해야 출입허가 표찰을 내어 준다. 백악산 반대편 능선 말바위 안내소로 빠져나오며 그 표찰을 반납하면 된다.

백악산은 해발 342미터로 창의문 쪽에서 오르는 성곽길 계단은 제법 가파르지만 그리 길지 않아서 지루하거나 힘들지는 않다. 그 아래 남쪽으로 조선왕조 정궁인 경복궁과 청와대가 자리하고 있다. 추위가 주춤한 겨울 낮 이 나라의 진산 중의 진산을 호젓이 걷는 즐거움이 남다르다.

68년 1월 청와대 습격과 정부요인 암살을 위해 세검정을 지나 자하문으로 침투하려던 북한 특수부대원들은 경찰 불심검문에 정체가 탄로나자 이곳 백악산 능선으로 도주를 시도했더란다. 백악산 정상에서 청운대로 가는 길 옆 노송에는 그날 피아간에 벌어진 총격전 때 박혔다는 총탄 자국을 알리는 표식이 있다. 그 총탄 자국들은 질기고 질긴 동족간 이념의 반목이 아직도 끝나지 않았음을 웅변하듯 붙어있다.

젊은 군인들이 순찰을 돌고 일정한 간격으로 초소가 설치된 북악산 성곽은 곳곳에 감시카메라가 지켜섰고 외곽에는 철책이 안쪽으로는 적외선 감지기가 불순한 통행을 가로막으며 감시하고 있다.


평창동을 좌측에 끼고 북동쪽으로 향하던 성곽은 남동쪽으로 숙정문 방향으로 꺾어져 말바위 안내소와 와룡공원을 지난다. 능선 위를 호기롭게 달리던 성곽은 와룡공원-혜화문 구간에서 높고 낮은 건물과 주택 사이에 묻혀 늠름하던 위용은 사라지고 성곽의 모습만 겨우 유지하고 있다.

혜화문에서 동대문인 흥인지문 사이에는 도심에 포위된 백악의 좌청룡 낙산이 공원으로 단장되어 시민들을 맞이하고 있다. 낙산 성곽 안쪽 공원 초입 이화동 벽화마을은 한복이나 학생복 등을 빌려 입고 추억을 담으려는 젊은이들의 공간이다.

낙산에서 완만하게 내리 뻗은 성곽은 꽃이 진 억새로 덮인 능선을 타고 빌딩 숲에 둘러싸여 외롭게 서있는 동대문으로 내려앉는다. 한양도성의 절반 북쪽 구간을 완주한 셈이다.

성곽은 여기 동대문에서 남쪽으로 남산을 경유하여 남대문인 숭례문으로 이어지며 정도 육백 년 우리의 수도 서울을 둘러 감싸 안고 있다. 허물어졌다 다시 세워지고 쓰러졌다 다시 일어서기를 반복하는 동서남북 대소문과 사람들의 역사를 말없이 지켜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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