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장산, 원스 어픈 어 타임 인 서머

by 꿈꾸는 시시포스


잠깐 장마가 주춤하며 물러났다. 그 틈새 오랜만에 원정 산행을 위해 이른 아침에 집을 나섰다. 목적지는 문경에 위치한 황장산이다. M의 차량에 친구 셋이 탑승하여 목적지로 출발했다. 넥소는 서울에서 경기, 경기에서 강원, 강원에서 충북, 충북에서 경북으로 경계를 넘으며 거침없이 달린다.

산행 날머리인 해발 625미터 골재에 차를 세워두고 우리 일행을 기다리는 H를 픽업해서 산행 출발점인 생달리 황장산 주차장으로 이동했다. 퇴직 후 고향인 단양으로 내려와서 노모를 돌보고 있는 H 덕분에 금수산 월악산 등 이 근처의 여러 산들을 함께 둘러볼 수 있었다.

해발 480미터쯤에 자리한 생달 2리에 도착하여 산행을 시작한다. 마을 뒤로 백두대간을 잇는 황장산과 그 능선이 하얀 뭉게구름을 머리에 이고 있는 모습이 수려하다. 산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시원하고 계곡 물소리는 경쾌하다. 날씨는 흐리지만 일기예보와는 달리 비가 내릴 기미는 없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을 뒤로 이어진 경사진 포장도로를 따라 산행 들머리로 향했다. '오미자 희망마을'이라는 이 마을의 별칭처럼 좌우 산비탈에 작은 포도알갱이처럼 수북하게 열매를 맺은 오미자나무 밭이 눈에 들어온다. 길이 다하는 곳 들머리에 닿아 숲으로 들어 이슬 맺힌 풀숲을 뚫고 능선을 오르기 시작했다.

향도 M이 정상 등로를 조금 벋어나 왼편 능선 아래 골로 방향을 잡고 앞장서 간다. 황장산 정상과 다른 방향인 왼쪽으로 올라 능선을 휘돌아가는 조금 더 연장된 길이다. 예전에 H와 둘이서 백두대간 길을 걷다가 중도에 탈출한 지점을 염두에 두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요즘은 '이 시대의 주인공은 모범생이 아니라 모험생'이라는 모토가 대세이니, 정해진 등로를 벗어나 새로운 길로 들어서 보는 것도 괜찮을 듯도 하다.

두 발과 스틱 하나, 이렇게 삼각(三脚)에 의지하여 비탈진 사면을 한참 동안 올랐다. 얼굴과 온몸은 어느새 땀으로 흥건하지만 길이 폭신한 흙길이고 햇빛이 들지 않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 시간여 만에 안생달에서 1.3km 작은 차갓재에 도착했다. 차갓재에서 황장산 정상으로 가는 길 초입에서 쭉쭉 뻗은 솔 숲이 맞이한다. 솔숲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이 에어컨 바람보다 서늘하다. 정상까지 1.8 킬로미터 가파른 능선길 우편으로 골짜기에 안긴 생달마을이 한눈에 들어온다.

해발 860여 미터 평평한 능선마루로 올라서니, 만수봉 포암산 등 주변의 준봉들과 앞으로 오를 정상이 조망된다. 두 번째 능선마루에 걸터앉아 허기를 달랬다. 정상까지는 500여 미터로 너설바위 능선이 이어진다.

능선마루에 올라서서 정상까지 이어지는 능선길은 좌우로 준봉들을 내놓으며 감탄사를 토해 내게 한다. 능선을 넘는 바람은 가을바람처럼 서늘하기까지 하다.


능선 우측 가파른 암벽에 노송들이 아찔하게 자리 잡고 서있고 그중 몇 그루는 암벽 옆으로 난 데크길에 바짝 붙어 있다. 황산의 영객송은 멀찍이서 산객을 맞이하지만 이곳 황장산의 소나무는 등로 옆까지 마중을 나와 친히 산객을 반겨주니 동방 예의지국의 소나무라 할 만하다.

1077미터 황장산 정상에 올라섰다. 나무에 가려 조망은 없지만 올라오면서 펼쳐 보인 황홀한 전경으로 충분히 보상을 받은 셈이다.


정상 등정의 환희는 짧기만 하다. 정상에서 내려가는 길은 너덜 바윗길로 올라오던 길과는 판이하다. 정상에서 300미터쯤 점진하여 감투봉 바로 아래에 도착하자 이정표가 안생달 2.2km라고 알려준다.

안부에서 에너지를 보충하고 산행을 이어갔다. 바야흐로 절기는 여름이 지나고 가을로 들어선다는 입추다. 등로 옆 나뭇가지에 앉은 매미 울음소리가 더욱 맹렬하고 처연하기까지 하다. 수시로 잽을 날리듯 온몸을 스치고 모자를 걸어서 벗기곤 하는 관목을 헤치고 전진하는 등 우여곡절 끝에 벌재로 내려서며 다섯 시간이 넘는 산행을 마쳤다.


월악산국립공원에 속하는 황장산은 그 능선을 따라 백두대간이 지나는데, '산양과 생태 복원'의 명분으로 2008년부터 중간중간 통행을 제한하고 있다. 감투봉에서 벌재까지의 구간도 마찬가지인데, 그 구간은 궁금증으로 남겨두기로 한다.

황장산은 산림청에서 지정한 한국의 100대 명산에 속할 만큼 명산으로서 손색이 없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뿐 아니라, 그 능선 위에 서면 사방으로 월악산 천주산 공덕산 도락산 황정산 주흘산 등 준봉들을 조망할 수 있으니, 자신뿐 아니라 남을 돋보이게 하는 미덕도 갖춘 산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생달리로 회귀하여 땀을 씻고 옷을 갈아입은 후 막걸리로 유명한 지척의 단양군 대강면으로 향했다. 밀려드는 허기를 은은한 맛으로 기억되는 대강막걸리를 겸하여 채우기로 한 것이다.

벌재를 힘겹게 넘은 H의 오래된 소나타는 방곡 도깨비마을을 지나 도락산과 황정산 사이로 깊은 골을 따라 느긋하게 달렸고, 조금 늦게 출발한 M의 차량은 어느새 후미에 따라붙었다.


사인암로로 들어서자 남한강으로 흘러드는 죽령천의 지류인 남조천이 계류 옆에 병풍처럼 기암절벽을 펼쳐 놓은 사인암(舍人巖)이 차창으로 스쳐 지난다. 고려 때 사인(舍人) 벼슬을 지낸 유학자인 우탁(禹倬, 1262-1342)의 행적을 기려 이름 붙였다는 사인암은 단양팔경의 하나이기도 하다.


막걸리를 팔지 않는다는 식당의 여주인에게 양해를 구하고, 식당 지척에 자리한 대강양조장에 딸린 매장에서 막걸리를 공수해 왔다. 뜨끈한 소머리국밥에 대강막걸리를 한 잔씩 나누니 헛헛한 허기가 금세 포만감으로 바뀌었다. 배낭에 M이 건네준 대강막걸리 한 통씩을 넣고 B와 나는 M의 차에 올라 귀로에 올랐다.

우탁의 탄로가 대신에 윌리엄 워즈워스(William Wordsworth, 1770-1850)의 송가 한 구절이 귓가에 조용히 들려오는 듯하다.


한 손에 막대 잡고 또 한 손에 가시 쥐고

늙는 길 가시로 막고 오는 백발 막대로 치렸더니

백발이 제 먼저 알고 지름길로 오더라

_우탁의『탄로가(嘆老歌)』


비록 풀밭의 찬란함과 꽃의 영광은

다시 돌아오지 않지만,

우리는 슬퍼하지 않으리,

남아 있는 것에서 힘을 찾으리.

Though nothing can bring back the hour

Of splendour in the grass, of glory in the flower;

We will grieve not, rather find

Strength in what remains behind.

_워즈워드의『송가; 불멸의 암시(Immortality Ode)』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새벽에 나선 멀고 긴 라이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