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양산, 햇빛처럼 빛나는 산

by 꿈꾸는 시시포스

이른 아침 배낭을 챙겨 전철역으로 향했다. 예정된 시각에 전철이 철로 위로 미끄러지듯 들어왔다. 채 여섯 시가 되지 않은 이른 아침의 전철 안은 예순을 훌쩍 넘어선 것으로 뵈는 나이 든 승객이 9할쯤을 차지하고 있다. 올해로 건국 77년을 맞은 대한민국은 바야흐로 고령화의 능선을 지나고 초고령화 시대의 능선으로 향하는 비탈을 오르고 있다. 숨 가쁘게 바삐 달려온 역사는 심한 피로감에 젖어, 숨을 고르며 평탄한 능선이 나타나길 간절히 바라는 산행자의 모습처럼 느껴진다.


암사역 부근 올림픽대로 이면도로에서 B를 픽업해서 달려온 M의 차량에 올랐다. 중부와 영동을 거쳐 중부내륙 고속도로로 들어서서도 차창 밖 산천은 여전히 흰 안개와 어우러져 몽환적인 산수화를 펼치고 있다. 괴산군 연풍 IC로 내려서서 연풍면을 감싸며 흐르는 쌍천으로 흘러드는 주진천 줄기를 거슬러 은티 마을로 향했다. 마을 주차장은 희양산 산행의 출발점인데, 주차장에서 마을 뒤 경사진 포장도로를 따라 1.5 km여를 걸어가야만 해발 410여 미터쯤의 산행 들머리에 닿을 수 있다.


마을 뒤 포장도로 좌우 산록의 과수원에는 홍조를 띤 탐스런 사과가 늦여름의 뜨거운 햇살에 농익어가고 있다. 과수원과 밭 가장자리에는 펜션과 농가들이 띄엄띄엄 들어서 있고, 경작한계선이자 숲이 시작되는 들머리 바로 옆에는 집터가 평토작업을 마쳐 반듯하게 자리하고 있다. 관계와 소통의 범위가 더없이 넓어진 이 시대의 사람들은, 도심을 벗어나 전원의 삶을 꿈꾼다. 그래서 도심을 조금만 벗어나도 ‘전원주택’이라는 인간의 욕구가 높은 산기슭과 깊은 골짜기로 파고들고 있는 것이다.


단양에서 먼저 도착한 H가 포장도로를 거슬러 내려와서 우리 일행을 반갑게 맞이한다. 키 높이 자연석 화강암에 ‘백두대간 희양산’이라고 쓰인 표지석 앞에서 인증 사진을 한 장 남기고 산행을 시작했다. 오늘 산행은 호리골재로 올라 능선을 따라 구왕봉을 거쳐 지름티재를 지나고 희양산 정상에 오른 후, 성터에서 계곡을 따라 원점으로 회귀하는 10Km여 약 6시간 코스가 될 것이다.

호리골재로 향하는 길은 아름드리 소나무가 숲이 이룬 잘 닦인 임도이다. 그 길에서 여섯 시경 산행을 시작해서 정상부까지 다녀온다는 젊은 산객 한 분과 반려견과 함께 산책을 다녀온다는 여성 한 분과 조우하기도 했다. 노송이 호위하듯 늘어선 평탄한 임도가 끝나고, 이끼 낀 바윗돌 위에 분홍빛 칡꽃이 수북이 떨어진 너덜바위 길이 나오는가 싶더니, 들머리에서 2km여 지점의 해발 약 610m 호리골재 능선에 닿았다.


능선의 서북쪽 방향에 자리한 악휘봉 쪽을 등지고 구왕봉 쪽으로 발길을 옮긴다. 숲 그늘 속 산들바람이 땀으로 세수를 한 목덜미를 시원스레 스친다. 등로 주변에는 이름 모를 잡 버섯만 자주 눈에 띌 뿐인데, 문외한의 눈에는 송이인지 능이인지 알 길도 없다. 은티 마을의 몇몇 가게 앞에 놓여있던 “송이 능이 싸리 등 버섯을 판매한다.”는 푯말처럼 이 일대는 각종 버섯의 산출지일 터인데, 소백산의 품에 안겨서 자란 H가 아직은 송이 철이 아니라고 귀띔해 준다.


능선이 급작스레 경사를 높이며 우악스러운 면모를 드러내는가 싶더니 홀연히 구왕봉이 정상이 나타나며, “구왕봉 879M"라고 쓰인 아담한 표지석을 내놓는다. 표지석 뒷면에는 “산을 좋아하고 산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백두대간 종주를 마치고 대간길 구왕봉 정상에 발자취를 남기다. 2011. 03. 19. 정운산악회 백두대간 등반대”라는 글귀가 적혀있다.

간혹 만나게 되는 이정표에는 악휘봉, 시루봉, 희양산 등 봉우리 앞에 “괴산의 명산”이라는 수식어가 붙어 있는데, 이는 백두대간의 일부 구간이기도 한 희양산의 주 능선이 충북 괴산과 경북 문경의 경계를 이루기 때문이다. 희양산 능선은 백두대간의 중추로서 험준한 암릉과 소나무 숲이 어우러져 웅장하면서도 수려한 산세를 자랑하는데, 은티 마을 북쪽에 둘러선 성황당 봉우리 아래 산기슭은 채석의 흔적인지 기계충 자국처럼 흉물스러워 보인다.


깊은 골 너머 멀찍이 흰 암벽을 군데군데 드러내며 소나무와 어우러진 희양산 봉우리가 손을 뻗치면 닿을 듯 위풍당당하게 우뚝 솟아 있다. 구왕봉에서 희양산으로 가는 안부로 향하는 등로는 급전직하 바윗길로 군데군데 걸려있는 밧줄에 매달리듯 의지해서 내려가야만 했다.

천신만고 끝에 구왕봉보다 고도가 240여 미터나 낮은 해발 약 640미터 지름티재에 닿아서야 숨을 고를 수 있었다. 지름티재에는 문경시장 명의의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 안내’ 표지판이 서있다. 그 구역은 장성봉에서 시작해서 악휘봉, 구왕봉, 희양산, 시루봉을 거쳐 이만봉에 이르는 백두대간 능선의 남쪽을 넓게 포함하고 있다. 그 옆에는, 희양산 봉암사 주지 명의로 “희양산 및 봉암 용곡 일원의 사찰 경내지는 스님들의 참선 수행 장소로 등산객과 관람객의 출입을 일제 금한다.”는 엄포성 안내문이 서있다. 봉암사는 이에 더하여 지름티재에서 희양산 너머 능선까지 튼튼한 목책을 등로 오른편에 바짝 붙여 출입을 단속하는 치밀함마저 보이고 있다.


희양산 정상으로 가는 길은 구왕봉에서 안부로 내려온 것만큼이나 힘들고 위험한 등로가 기다리고 있다. 정상까지 1.5km의 거리 중 능선마루까지 올라야 할 약 1km의 거리는 고도를 약 330여 미터 높여가는 가파른 직벽이 기다리고 있다. 바위에 박은 철심에 연결된 밧줄 구간들을 연속해서 오르다 보니 팔에는 힘이 빠지고 디딤 발은 습한 암벽에서 미끄러져 위험하기 짝이 없다. 단양에 내려와 노모를 돌보고 있는 H는 최근 연이어 소백산을 오르내린 탓인지 험한 등로에도 아랑곳 않고 멀찍이 앞서 가서, 쉴만한 곳에서 후행을 기다리고 있곤 했다.


악전고투 끝에 해발 970미터 희양산 정상부 능선에 올라섰다. 그로부터 정상까지 500여 미터의 평평한 등로와 희양상 정상이야 말로 긴 산행의 고생을 잊고 희열을 안겨주는 백미라 할만하다. 노송과 어우러진 깎아지른 암벽을 끼고 걸으며, 월악산 조령산 주흘산 대야산 등 주변의 수려한 준봉과 늠름한 능선과 줄기, 이들과 어우러진 푸른 하늘에 피어오른 뭉게구름이 펼치는 장쾌한 파노라마를 마음껏 눈에 담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정상의 표지석의 앞뒤에는 각각 한글과 한자로 ‘백두대간 희양산 白頭大幹 曦陽山’이라 적혀있고, 한글로 적힌 앞면에는 ‘해발 999m’라는 표기도 함께 새겨져 있다. 멀리서 보면 정상부에 밝은 암벽을 훤히 드러내며 솟아있는 희양산은 ‘햇빛처럼 빛나는 산’이라는 의미에 걸맞은 이름이라는 생각이 든다. 정상부에서는 나이 지긋한 남성 두 분과 여성 한 분이 팀이 되어, 깎아지른 암벽을 이루고 있는 문경 쪽 정상부 가장자리에 펜스를 설치하는 작업에 여념이 없었다.


그 암벽 아래 희양산 남쪽 골짜기에 자리한 봉암사(鳳巖寺)가 한눈에 들어온다. 신라 헌강왕 5년(879년)에 선승 도헌 지증대사가 창건한 이 사찰은 구산선문의 하나로 희양산파(曦陽山派)의 중심 도량이었다. 앞서 지름티재의 안내문대로 지금은 ‘스님들의 참선 수행’을 이유로 일반인의 출입을 철저히 제한하고, 일 년에 석가탄신일 단 하루만 개방하고 있다.

중생 구제(衆生救濟)의 자비행은 뒤로하고, 일반 신도와 단절된 채 ‘수행’에만 치중하는 폐쇄성이 부처의 진정한 가르침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더군다나 봉암사 일대는 종교적 수행처를 넘어, 여러 왕조와 백성이 천년이 넘게 엮어온 역사가 깃든 곳이요 우리 모두가 함께 누려야 할 문화적 자산인 것이다.


희양산 정상을 뒤로하고 하산길에 올랐다. 시루봉 쪽으로 난 능선길 주변에 삼국시대 때 쌓은 것으로 알려진 옛 산성의 흔적이 곳곳에서 눈에 띈다. 이토록 험함 능선마루에 산성을 쌓아 올려야만 했던 옛 왕국의 백성들이 뿌렸을 피와 땀이 곳곳에 스며있을 것이다.

정상에서 약 1km 지점에 은티 마을로 내려가는 갈림길을 알리는 이정표가 서있다. 원점 회귀 지점까지 500여 미터 고도를 낮추며 약 2km 거리의 하산길로 발길을 재촉했다. 주위에 판석을 쌓아 올린 듯 암벽을 이룬 층층 암석 군과 물이 없는 계곡 사이로 이어진 가파른 너덜길이 끝이 없을 듯 이어지지만, 밧줄을 잡고 힘겹게 오르던 등로에 비하면 수월한 편이다.


날머리를 몇 백 미터쯤 남겨두고 가파른 경사가 느슨해지며, 계곡이 물 흐르는 소리와 함께 물웅덩이 두어 곳을 내놓는다. 메말랐던 계곡이 그 말미에 놓은 물웅덩이로 이번 산행의 백미라고 여겼던 희양산 정상부와 자웅을 겨누어보려는 듯. 누가 먼저랄 것 없이 계곡 물웅덩이에 뛰어들어 땀에 흠뻑 젖은 몸을 담갔다.

계곡을 벗어난 등로는 싸리나무 등 키 작은 관목이 무성한 평탄한 오솔길로 개운해진 몸과 마음을 가벼운 발길로 이끈다. 평평한 길이 이처럼 고맙게 느껴질 수가 없다. 우리가 고마움을 잊고 지내는 일상의 평온함도 이와 마찬가지일 것이다. 원점 회귀하며 산행을 마무리하고, 연풍면 소재지로 이동하여 어느 한적한 식당에 마주 앉았다. 허기 때문인지, 곱씹는 산행의 흥취 때문인지 여주인이 식탁에 올려놓는 반찬과 음식이 더없이 자미(滋味)롭게 느껴졌다. 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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