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안 마이산과 탑사
올림픽대로 암사역 부근에서 M의 차량에 올라탔다. 어둠이 채 걷히지 않은 도로에는 라이트를 켠 차량 행렬이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목적지는 진안 마이산. 말의 귀처럼 솟은 봉우리라 하여 붙은 이름, 그리고 돌탑의 전설이 깃든 산이다.
경부고속도로 대전 방향으로 향하는 도로 위에는 행락객들의 차량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통영대전고속도로로 갈아 탄 후 금산인삼랜드 휴게소에 잠시 들러 휴식을 취했다. 시나브로 절정으로 치닫고 있는 가을의 공기가 차고 상큼하다.
오도재 터널을 빠져나오자 덕유산이 품은 무주의 고원지대가 펼쳐졌다. 고속도로변 산하가 저마다 비단치마 같은 운무를 허리에 두르고 가을 아침의 찬공기를 호흡하고 있다.
장수의 경계로 들어서니 장수군의 농특산물 공동브랜드 이름인 ‘장수가 꿈’이라는 홍보탑이 길손을 맞는다.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라고 노래한 어느 시인의 시구절처럼, 이름 하나에도 저마다의 바람을 담고 싶은 것이 사람들의 마음이다.
새만금포항고속도로로 갈아탄 넥소는 진안을 향해 남하했다. 무주(茂朱), 진안(鎭安), 장수(長水) — 이웃한 세 고을을 이곳 사람들은 무진장이라 부른다. 이름처럼 산은 깊고, 골짜기는 말 그대로 무진장(無盡藏) 끝이 없을 듯하다. 우리는 덕유산과 장안산, 운장산, 구봉산이 병풍처럼 둘러싼 그 산중고원을 가로질러 달려갔다.
진안 IC를 빠져나오자, 멀리 두 개의 봉우리가 차창 밖에 나타났다. 마치 하늘을 찌르듯 솟은 돌귀, 말의 두 귀처럼 뾰족하게 서 있는 그 모습이 자못 신비롭고 장엄하다. 마이산관광단지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산행 채비를 했다. 진안역사박물관, 생태수변공원, 자수박물관, 닥종이박물관, 진안가위박물관 등이 자리한 마이산 북쪽의 이곳 들머리는 대부분의 행락객들이 주로 찾는 탑사와 은수사가 자리한 마이산 남쪽에 비해 한적하다.
가위박물관 건물 측면 뒤로 마이산 등로를 알리는 표지판이 눈에 들어왔다. 폭이 널찍한 나무 데크길을 따라 오르는 길, 등로 양옆 마이산 기슭의 단풍나무들은 아직 푸른 잎을 간직한 채 떠나려는 여름의 끝자락을 붙잡고 있다.
좌측 수마이산과 우측 암마이산 사이 안부로 오르는 나무계단은 안부까지 고도를 130미터쯤 높이며 끝이 보이지 않을 듯 이어져 있다. 천천히 앞서가는 M과 B를 쫓아 한발 한발 걸음을 옮겼다. 두 귀 사이, 말의 정수리 부분에 해당하는 해발 500미터쯤의 고개에 올라서자 땀이 이마에 흥건했다.
산객들 틈에 섞여 잠시 숨을 고르고 해발 687미터 암마이산 정상으로 방향을 잡았다. 나무계단에 이어 돌과 콘크리트를 버무려 타설 해서 굳힌 것처럼 단단한 역암 바위 비탈길이 거대한 원추처럼 우뚝 선 산정으로 인도한다.
두 개의 뾰족한 봉우리가 남녀인 양 부부인양 나란히 서있는 모습이 말의 귀를 빼어 닮은 산. 마이산은 그 특이한 모습뿐 아니라, 약 1억 년 전 자갈과 모래, 진흙이 쌓여 단단한 바위로 구성된 국내 유일의 역암 봉우리로 세계적 지질 명소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마이산(馬耳山)이라는 이름은 조선 태종 때 두 산봉우리가 말의 귀 모양을 하고 있다고 하여 붙여진 것으로, 신라 때는 서다산(西多山), 고려 때는 용출산(湧出山), 조선 초기에는 속금산(束金山), 또한 두 산봉우리의 모습에 따라 봄에는 배의 콧대와 같다고 하여 돛대봉, 여름에는 용의 뿔처럼 보인다 하여 용각봉(龍角峰), 가을에는 마이봉(馬耳峰), 겨울에는 붓끝처럼 보인다 해서 문필봉(文筆峰)이라 불리기도 했더란다.
가파른 계단길을 따라 고도를 높여 갈수록 전망이 넓게 트이며, 옆에 마주 선 수마이봉이 점점 온전한 모습을 드러낸다. 그 중간에 설치된 두어 곳 전망대는 민간신앙의 기복처인 수마이봉 화엄굴을 조망할 수도 있고 산군에 깃든 진안의 여러 마을을 펼쳐 보이기도 한다.
정상에 오르자 많은 산객들이 표지석과 전망대 주변에서 저마다의 표정과 몸짓으로 감흥을 음미하고 있다. 공자는 "태산에 오르니 천하가 작구나(登泰山而小天下)"라고 했다던가! 해발 680미터 남짓이지만, 암마이산 정상에서 사방 아래로 깔리듯 펼쳐진 풍경은 웅혼했다. 맹자가 힘써 길렀다는 호연지기(浩然之氣) — '의로움이 쌓여서 스스로의 마음이 위축되지 않는 기개'가 절로 길러질 듯한 느낌이다.
말의 두 귀처럼 마주 보며 나란히 서 있지만, 건너편의 수마이산은 사람의 발길을 허용하지 않는다. 조금 높은 곳에 서면 자신을 돌아보지 못하고, 조금 나아지면 남을 깔보게 되는 세상 사람들의 오만함을 어리석음을 경계하며, 분별심을 일깨워주려는 듯.
하산길은 안부에서 탑사 쪽으로 이어졌다. 끝없이 이어지는 나무계단을 내려가자, 수마이산을 병풍 삼아 그 아래 자리한 은수사(銀水寺)가 맞아준다. 전설에 따르면, 이성계가 조선 건국을 앞두고 기도를 드렸던 절이라고 한다. 대적광전과 무량광전, 그 사이의 고루, 산신당 등을 둘러보았다. 국내 최대 크기라는 법고를 손등으로 가볍게 두드려보니, 낮은 소리와 함께 섬세한 파동이 문종이처럼 얇은 고면(鼓面) 전체로 퍼져 나간다.
태조가 심었다는 청실배나무는 600여 년의 세월에 아랑곳없이 건장한 모습으로 뜰을 지키고 서있다. 바닥에 수북이 떨어져 있는 상처 나거나 벌레 먹은 아이 손아귀만 한 열매 가운데 하나를 주워 주머니 속에 넣었다. 탑사로 향하며 돌배의 성한 쪽 한 조각을 칼로 베어 입에 넣으니, 새콤한 과즙이 600여 년 세월을 훌쩍 뛰어넘어 입안 가득 번진다.
은수사를 뒤로하고 내리막길을 따라가니 매표소에 이어 탑사가 나타났다. 암마이산이 아래 경사진 계곡 가득 돌로 쌓아 올린 원뿔꼴 탑들이 즐비하게 서 있는 압도적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이곳은 이갑룡 처사가 스물다섯 살 무렵 이 산에 들어와 솔잎으로 생식을 하며 수도하던 중, 신의 계시를 받고 돌을 하나둘 쌓기 시작해 만든 돌탑군이라 한다.
그의 마음속에서 피어난 작은 불씨는 흔들림 없는 불심과 꺾이지 않는 의지의 불꽃으로 타올라, 낮에는 돌을 나르고 밤에는 돌을 쌓는 각고의 세월 끝에 마침내 이처럼 장대한 탑들을 세웠다고 전한다. 사람들은 저마다 고개를 젖혀 하늘로 높이 치솟은 돌탑들과 아찔한 암마이산의 암벽을 올려다보며 연신 탄성을 쏟아낸다.
발길을 돌려 금당사 쪽으로 향했다. 탑사 아래쪽 계곡을 막아 조성한 탑영제(塔影堤)의 잔잔한 수면에는 탑 그림자는 보이지 않고, 오리배 하나가 잔잔한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탑영제 저수지 가장자리를 휘돌아 제방 아래로 내려서니, 도로 오른편으로 금당사가 눈에 들어왔다. 금산사의 말사인 금당사는 연개소문과의 불화로 고구려에서 백제로 망명한 보덕화상의 제자 무상(無上)이 그의 제자 금취(金趣)와 함께 의자왕 10년인 650년에 세운 절이라고 한다. 당초 동굴에 조성되었던 이 사찰은 임진왜란 때 불에 타 사라지고 숙종 1년에 이곳에 재건되었다고 한다.
극락보전에 모셔져 있는 아미타불 등 목조삼존불상은 조각승 희장(熙藏)이 1650년에 좌대와 함께 조성했다고 한다. 고향 수다사의 삼존불을 조성한 희장의 또 다른 불상을 수백리나 떨어진 이곳에서 마주하게 되니 오랜 친구를 우연히 만나듯 반갑기 그지없다. 탑사로 난 도로에 접해 있지만 탑사의 그늘에 묻혀 찾는 사람이 거의 없는 모습이 조금은 쓸쓸해 보였다.
금당사 아래 도로 양편으로 줄지어선 사하촌 식당가는 행락객들로 제법 북적였다. 코끝을 자극하는 파전 냄새의 유혹을 물리치며, 해발 528미터 탄금봉(彈琴峰) 산정 바로 아래 자리한 고금당사(古金堂寺)로 향했다.
탄금봉 자락 고금당사로 오르는 초입에 석조 포대화상이 일주문 대신 나무를 기둥 삼아 걸린 플래카드와 함께 환한 미소로 산객을 맞는다. 계곡을 따라 잠시 오르다가 능선 쪽으로 오르는 산길로 접어드니 산죽이 숲을 이루고 있다. 산 아래쪽에서 마을 농악패의 징 꽹과리 장고 등이 어우러진 흥겨운 가락이 바람을 타고 번져왔다.
역암의 절벽 위로 난 가파른 계단을 밟고 오르자, 절벽 남쪽에 소담한 금빛 지붕에 일곱 개 구슬로 장식된 보륜(寶輪)을 올린 천상굴과 마이산 쪽을 향해 반듯하게 자리한 고금당 전각이 눈에 들어왔다. 웬만한 당우 못지않게 높은 천장에 내부가 널찍한 천상굴은 나옹화상의 득도처라 전해지는데, 인적은 없고 불상과 불전 등이 정적을 지키고 있다. 본당인 고금당(古金堂)의 금빛 나비경첩은 세월의 빛을 머금은 듯 고풍스럽고 아름다웠다.
고금당 뒤편 너럭바위에 앉아 배낭을 내리고 출출해하는 배를 달랬다. 파란 하늘에 목화처럼 희고 높게 피어오른 구름 아래 멀리 마이산이 신비스러운 모습으로 한눈에 들어왔다. 탑사 돌탑들의 기도 소리처럼 옅은 미풍도 스쳐 지났다. 붉게 타오르길 주저하고 있는 단풍이 그리 아쉽지만은 않은 멋진 가을 산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금당 뒤편 능선을 따라 저 멀리 멀찍이 우뚝 솟아 있는 나봉암으로 향했다. 고금당사로 향하는 적지 않은 산객들에게 등로를 비켜주며, 나봉암 위 비룡대 정자로 난 가파른 철계단을 힘겹게 올랐다. 해발 527미터 뾰족한 나봉암 정상의 비룡대(飛龍臺) 정자 위에 올라서자, 마이봉과 지나온 고금당사를 비롯해서 사방으로 장쾌한 파노라마가 눈앞에 펼쳐졌다.
마이산의 다른 쪽 모습을 온전히 보여주는 삿갓봉을 거쳐 차를 세워둔 주차장 쪽으로의 하산길로 접어들었다. 울창한 소나무숲을 지나자, 지난해 떨어진 낙엽이 두터이 깔려 있는 참나무 숲길이 나타났고, 이어서 밤송이와 밤톨이 지천으로 흩어져 놓은 밤나무 숲길은 짧은 임도를 만나며 뱀골마을 뒷길로 내려섰다.
여러 방향에서 마이산의 전경을 감상하며 네 개의 봉우리와 네 개의 사찰을 둘러본 12km 약 여섯 시간의 순례와도 같았던 멋진 산행이었다. 친구들과 마을 식당에 배낭을 내리고 마주 앉아, '마이산막걸리'를 반주 삼아 흑돼지 더덕구이로 지친 몸과 쓴 입을 달랬다. 상행선 고속도로는 차량 정체 없이 잘 뚫렸다. 가을 해는 짧아 도로변 산하에는 시나브로 어둠이 내려앉았다. 친구들과 작별하며 작은 돌 하나를 추억의 탑 위에 살며시 올려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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